전남도청

월출산 무위사 '시나브로 여행'

입력 2019.12.24. 10:29 댓글 0개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의 겨울은 달 밝은 월출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월출산은 한 폭의 산수화 같은 절경을 자랑해요.

특히 월출산 남쪽 기슭 따라 아름답게 펼쳐지는 강진다원은 백운옥판차의 차산지로 떫은 맛이 적고 향이 강해서 일품입니다.

넓은 차밭과 서리 방지용 팬이 있어 추운 겨울나기도 문제 없습니다.

강진다원 주변에는 볼거리가 많은데요, 다산 정약용 선생과 제자들이 월출산 등산 후 하루 묵었던 백운동 별서정원을 비롯해 금릉경포대, 무위사,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월남사지 삼층석탑, 이한영 생가 등 하루 정도 둘러볼 수 있는 코스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 월출산 골짜기 아래 첫 마을에 터를 잡은 천년고찰 무위사를 소개하려는데요, 

무위사의 겨울나기는 어떠한지 보러 갑니다.

무위사 일주문 앞에 목련이 꽃눈을 빼꼼히 내놓았는데요, 

기특하게 털모자 하나로 겨울을 나는 모습이 누가 무위사 목련 아니랄까 수행을 하는 듯합니다.

흡사 그 모습이 붓 모양 같은데요, 가리키는 곳이 북쪽이어서 북향화라고도 불립니다. 

꽃덮개가 양지바른 곳에 있으면 빠른 성장으로 북쪽으로 기울기 때문입니다.

월출산 무위사 해탈문이 보이고 속세의 번뇌가 들끓는 중생이지만 이 순간은 업보를 내려놓고 수행하듯이 예를 갖춰서 걸어봅니다.

사적기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고, 헌강왕 원년(875)에는 도선국사가 중창하여 「갈옥사」라 한 후, 고려 정종 원년 (946)에 선각대사가 삼창하고 「모옥사」라 개칭하였으며, 그 후 조선 명종 10년 (1555) 태감 선사에 의해 현재와 같이 「무위사」로 부르게 되었다 합니다. 

위쪽 '무위다원'에서는 덖음차와 불교용품을 판매합니다.

사천왕문은 느긋하게 걷기보다 걸음을 재촉해서 걷게 되는데 저만의 이유가 있답니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사천왕천(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인 존재들로 수미산(須彌山)의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을 모신 곳인데, 내가 쌓은 업보가 들통날까봐서 자연스레 걸음을 재촉하나 봅니다.

사천왕문을 지나서 무위사 경내로 들어가는 관문인 보제루가 보이는데요, 

극락보전을 마주하고 있는 강당으로 사찰에 가면 불교 법당 대신 설법을 하기 위하여 널리 중생을 제도한다는 숨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절마다 만세루, 구광루, 보제루라고 달리 부르는데요,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주로 보제루라는 명칭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겨울인데도 햇살 따라 양지바른 곳에 똬리를 튼 마삭 줄기가 생기가 넘치네요.

아름다웠던 시절은 가고 지나간 것은 아름답습니다.

겨울 꽃, 동백이 아름다운 계절이 왔습니다.

줄기에서 한 번 피고 땅에서 두 번 피는 동백이 애틋하네요.

겨울 표고의 갓 부위가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져서 화문을 만들었는데 예쁘네요.

추운 겨울을 잘 버텨내는 자연의 생명들이 장합니다.

파란 하늘에 쭉쭉 뻗은 가지들이 의연하니, 철이 빨리 들어선지 든든합니다.

한 해의 끝에선 나무줄기에 파란 연등은 뭘 밝히고 싶은 걸까요?

수령이 가늠이 안 되는 느티나무가 오랜 풍파를 이겨낸 산부처인 듯한데요, 

밑동에 동자승 기와가 익살스럽고 귀여워 저절로 미소가 번집니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그야말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자연과 하나 된 듯한 무위의 경지에 있는지 꾸밈없이 소박한 극락보전이라 더 무위할 수 있겠습니다.

극락보전은 1934년 일제에 의해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1962년 우리 정부에 의해 다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었는데요, 

1983년 해체, 복원 공사 중 중앙 칸에서 발견된 명문(名文)에 따르면 정면 3칸에 측면 3칸인 이 건물은 조선 초기인 세종 12년(1430)에 효령대군이 지었다고 쓰여 있으며 1950년대 극락전 수리 공사를 하던 중 본존불 뒤쪽의 벽화 아래 서쪽에 쓰인 기문에 따르면 성종 7년(1476)에 후불벽화(後佛壁畵)가 그려져 있어 600년이 다 되어가는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극락보전 내에는 조선 전기를 대표할 만큼 뛰어난 보물인 제 1312호인 아미타삼존불과 국보 제313호인 아미타여래삼존불벽화가 있습니다. 

극락보전 안쪽 벽에는 수많은 벽화가 있었지만, 1974년에 해체·보수하다가 벽화들을 통째로 드러내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국보와 보물 뒤에는 또 다른 보물이 있습니다. 바로 무위사 백의관음도인데요, 

보물 제 1314호로 1476년 아미타삼존벽화와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물은 여기가 있고 복사본은 성보박물관에 극락보존 내부에서 뜯어낸 벽화들과 함께 있습니다.

600살이 다 되어가지만, 건물의 형태는 변함이 없군요.

햇살 따라 그림자를 만들어가는 사찰 시계는 유유 자적 흘러가는데요, 겨울철 채비가 한창입니다.

극락보전 앞마당에 느티와 팽나무의 줄기가 금방이라도 극락보전 지붕에 닿을 듯한데요, 

극락보전이 늘 온화한 미소로 불심을 펼쳐니 같은 하늘 아래 호흡하는 미생들의 번뇌가 잠잠해질듯합니다.

어떤 부처님을 모셨냐에 따라 대웅전, 관음전, 약사전, 지장전으로 구분이 되는데요, 

보시는 지장전에는 중생구제의 큰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입니다.

왼쪽 산신각은 칠성전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고유하게 발달한 토속신인 산신과 호랑이를 모신 곳으로 사찰이나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외호신중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된 것으로 풀이됩니다.

오른쪽 미륵전은 미래에 출현할 미륵부처님이나 미륵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입니다.

산신각과 미륵전 뒤쪽으로 무위사 자연관찰로가 있어 한 바퀴 빙 둘러볼 수 있는데요, 

무위사에 오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 꼭 들러보시기 바랍니다.

나한전입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을 모신 곳으로 석가모니불의 직제자 가운데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16나한이나 경전 결집에 참여했던 500나한을 모시기도 한데요, 

나한은 부처가 되지 못했지만 이미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성자이므로 초자연적인 신통력과 더불어 독특한 표정과 자유로운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천불전은 부처란 진리를 깨달은 이를 의미함으로 깨달음을 얻으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각 천 불씩 존재한다는 의미로 천불전이라 부릅니다. 

오래 전에 왔을 때도 공사 중이었는데 여전히 불사가 진행 중입니다.

무위사 선각대사편광탑비는 1969년 6월 16일 보물 제 507호로 지정되었는데요, 

높이 약 2.35m, 너비 1.12m로 귀부(龜趺)·비좌(碑座)·비신(碑身)·이수(螭首) 등을 다 갖춘 전통적 양식의 비로 보물로 지정될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무위사 삼층석탑은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 76호로 지정되어 현재 무위사의 선각대사 편광탑비(946년) 바로 앞에 있는데요, 

조성 연대는 고려 초기로 절제미를 잘 갖춘 석탑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성보 박물관은 제가 방문한 날에는 열지 않았습니다.

그전에 몇 번 갔을 때도 여전히 문을 열지 않았는데요, 아마도 내부 공사 중으로 추측됩니다.

그래서 오래 전 찍은 내부 사진을 대신 보여드립니다.

무위사 성보 박물관은 2006년 4월 개관했는데요, 극락보전 내 벽에 있던 벽화들을 보존한 벽화 박물관입니다.

1974년 수리할 당시 떼어낸 벽화를 그동안 벽화보존각에서 보관했는데, 관리와 보전의 실효성 때문에 짓게 된 것입니다.

무위사 극락보전 내면 벽화는 모두 29점으로 보물 제 1315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본격적인 겨울이 다가오기 전 시나브로 다녀온 월출산 무위사의 겨울 준비는 한창이었습니다. 

평일에 관람하는 사람도 없이 한적해 사색하기 참 좋았는데요, 

강진을 가다 보면 늘 들르는 곳으로 이웃집 마실가듯 아주 편안한 사찰 여행이었습니다.

※ 본 게시글은 전라남도 SNS 관광 기자단 김정아 기자님이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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