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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막걸리 보안법' 사건, 38년 만에 재심서 무죄

입력 2019.12.13. 11:03 댓글 0개
홍제화씨 영장 없이 경찰에 끌려가 갖은 고문 받아
법원 "경찰 불법 구금으로 얻어진 증거는 인정 안 돼"
【제주=뉴시스】제주지방법원. (뉴시스DB)

[제주=뉴시스] 우장호 기자 = 술자리에서 김일성을 언급하고 국내 정치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불법 구금된 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28세 청년이 38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청년은 경찰 고문 후유증으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며 불행한 삶을 살다가 국가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지난해 숨졌다.

13일 법원 등에 따르면 제주지법 제1형사부 노현미 부장판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고 홍제화(1953년생·2018년 사망)씨의 재심에서 징역 8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이같이 판단했다.

홍씨의 억울한 사연은 신군부가 정권을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1981년에 발생했다. 제주시 조천읍의 한 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그는 당시 여러 가지로 복잡했던 정치 상황을 말하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시작되면 늘 입방아에 오르던 주제였다. 하지만 그는 같은 해 11월24일 오전 8시 갑자기 들이닥친 제주경찰서 형사들에게 끌려갔다.

이유는 넉 달 전 홍씨가 술자리에서 북한을 찬양하고, 당시 대통령이던 전두환씨를 비판했다는 것이었다. 경찰은 홍씨가 "김일성 원수가 정치를 잘한다. 전두환은 어려서 정치하기는 틀렸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조서에 적었다.

경찰은 이 같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홍씨가 국가보안법을 어겼다고 봤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된 그는 영장도 없이 체포돼 갖은 고문을 받다가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1982년 7월9일 열린 홍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징역 8개월에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몇 달 후 만기 출소한 홍씨는 정신지체 장애 2급 판정을 받고 불우한 여생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홍씨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하던 가족들은 2006년 진실·화해 과거사 정리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해당 사건이 불법 구금 속에서 만들어진 의혹 사건으로 인정받았다.

이를 근거로 홍씨의 부인 오모(68)씨는 2017년 9월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홍씨가 재심 청구 1년여 만에 숨지면서 절차가 자동 종료됐다.

하지만 오씨는 지난해 12월7일 다시 법원 문을 두드렸고, 38년 만인 올해 2월21일 법원으로부터 재심 개시 결정을 통보받았다.

재판부는 홍씨가 막걸리를 마시며 한 말들이 국가의 존립이나 안전 등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또 경찰이 홍씨를 체포하고도 48시간 이내에 법관의 사후구속영장을 받지 않는 등 적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불법 수사로 봤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경찰에서 불법구금된 상태에서 자백을 했고, 그 이후에 석방됐다거나 변호인이 선임됐다거나 하는 등의 사정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다면 검찰에서까지 불법구금 상태가 이어져 검찰에서 한 자백 내용 역시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로서 그 증거능력이 없다"면서 "이 같은 전후 상황을 종합하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해 무죄를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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