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U2, 이런 것이 '현자의 콘서트'···통일·허스토리
입력 2019.12.08. 23:47 댓글 0개김정숙 여사 관람·김 여사, 설리, 서지현 검사 등 스크린 등장
시적이면서도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완벽한 무대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이런 것이 현자(賢者)의 콘서트일까. 아일랜드 출신 세계적 록 밴드 'U2'는 콘서트를 '사회적 무브먼트'로 승화시키는 마법을 부렸다.
U2가 결성 43년 만인 8일 오후 서울 고척동 고척스카이돔에서 펼친 첫 내한공연은 콘서트가 하나의 '현상'으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을 보여줬다.
U2의 보컬 보노(59·보컬·리듬기타)는 이날 마지막 곡 '원(ONE)'을 부르기 전 예상대로 평화의 메시지를 관객 2만8000명에게 전했다. 그는 "남한, 북한의 평화를 위해 모두 기도하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그는 '타협'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북측에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당신들을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U2는 철학적이며 깊이 있는 가사와 음악, 최고의 무대 연출로 시대를 풍미하고 있다. 보노, 디 에지(58·리드 기타·키보드), 애덤 클레이턴(59·베이스 기타), 래리 멀린 주니어(58·드럼·퍼커션) 등 원년 멤버 4명이 현재까지 함께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아름다운 밴드'라는 수식을 듣는 U2는 노벨 평화상 후보로 거명될 정도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비무장지대(DMZ) 공연이 언급될 때마다 U2는 섭외 1순위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번에 DMZ에는 방문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향후 U2의 DMZ 공연을 위해 기획자들이 물밑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내전을 겪은 아일랜드 출신인 U2의 대표곡 '원'은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으로 독일이 통일한 해인 1990년 베를린 한자 스튜디오(Hansa Studios)에서 녹음됐다.
보노는 다음날인 9일 문재인 대통령을 청와대에서 접견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접견에서 지구상 유일한 분단 국가인 한반도의 상황을 설명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비핵·평화 프로세스'에 대한 지지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보노가 어떤 화답과 메시지를 내놓을 지 주목된다. 지난달 19일 문 대통령 국민과의 대화에서 '원'이 배경음악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U2는 이날 대한민국 역사를 바꿔나간 여성들도 기억했다. '울트라 바이올렛(Ultra violet)'을 부를 때 영상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인 김정숙 여사,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그룹 'f(x)' 출신 설리 등이 등장했다.
'라이트 마이 웨이(Light My Way)'라는 부제가 달린 '울트라 바이올렛'은 "눈에서 눈물을 닦고 네가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잖아"라고 노래하는 곡이다. 설리의 얼굴이 보이자 몇몇 관객들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히스토리(history)'라는 글귀가 '허스토리(Herstory)'로 바뀐 뒤 김 여사와 설리 외에 한국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해녀, 신여성으로 통한 화가 나혜석, 한국 최초의 민간 여성 비행사 박경원,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이태영 변호사, 우리 사회 '미투 운동'의 물꼬를 튼 서지현 검사, 국내 최연소 축구 국제심판 출신 홍은아 이화여대 교수, ‘바이올린 여제’ 정경화, 범죄심리학자인 이수정 경기대 교수 등의 얼굴도 등장했다.
이들은 한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생각의 씨앗을 키운 여성들로 명명됐다. '우리 모두가 평등해질 때까지는 우리 중 누구도 평등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스크린에 한글로 등장하기도 했다.
김정숙 여사는 이날 공연장도 찾았다. U2의 보컬 보노는 공연 도중 "퍼스트 레이디 김정숙 여사가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김 여사는 공연 관람에 앞서 보노와도 사전 환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부터 공연장을 찾을 생각에 경건해졌다. 고척스카이돔 인근의 구일역에 도착하기 위해 타야 하는 지하철 1호선 속 풍경도 다른 가수들이 이 공연장 무대에 오를 때와 달리 조금 더 비장했다.
아일랜드 판 광주학살로 통하는 '피의 일요일'을 소재로 한 곡 '선데이 블러디 선데이'로 시작한 이날 무대는 세계적 밴드의 첫 내한이라는 설렘과 함께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다. '엑시트'를 부르기 전 영상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영상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렇다고 U2의 공연이 정치적, 사회적인 메시지에만 치우쳐 있는 것이 아니다.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완벽한 무대이기도 했다.
이번 내한 공연은 2017년 '조슈아 트리 투어 2017'의 하나이자, 연장 공연이다. U2가 1987년 발표한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조슈아 트리' 발매 30주년을 기념한 이 투어는 6개월간 51회 공연을 통해 270만명 이상을 끌어모았다. '스타디움 록 공연의 최고 경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라이브' 등 공연에 대한 극찬이 쏟아졌다.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가로 61m, 세로 14m의 초대형 스크린에 압도당했다. 스크린 속에는 '조슈아 트리'가 거대하게 형상화됐고 돌출 무대는 그 형상을 그림자처럼 반영했다. 8K 해상도 LED 비디오 스크린은 다양한 곡의 분위기에 맞춰 변화무쌍했다. '아이 스틸 해븐트 파운드 왓 아임 룩킹 포'는 나무 숲, '위드 오어 위드아웃 유(With or Without You)'는 대형 암반들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했다.
그렇다고 영상 사용도 단지 쇼적인 것에만 치우치면 U2가 아니다. '마더스 오브 더 디스어피어드(Mothers of the Disappeared)'는 남미의 군부독재로 실종된 자식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곡. 영상 속에는 촛불을 든 어머니들이 등장했고 보노는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노래했다. 공연장에는 별빛이 내려 앉았다. 관객들이 스마트폰으로 만든 플래시는 우주의 별들을 연상케했다.
공연은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연출로 한편의 시(詩) 같기도 했다. 시인 이시영의 '지리산', 미국 시인 겸 소설가 제임스 디키의 '더 스트렝스 오브 필드(The Strength of Fields)' 등이 본 공연 전에 스크린에 흘러나오기도 했다.
이날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사운드의 명징함이었다. 고척스카이돔은 야구장이 본 용도라 사운드 밸런스를 잡기 힘든데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사운드가 선명하게 들렸다. 강렬한 사운드의 '버티고(Vertigo)' 등을 들려줄 때는 이 팀이 로큰롤 밴드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U2는 이번 내한공연을 위해 화물 전세기 3대 분량, 50ft 카고 트럭 16대 분량의 글로벌 투어링 장비를 그대로 공수했다. 공연 무대 설치와 운영을 위해 150명 규모의 글로벌 투어 팀이 함께 했다.
내한공연 중 역대 최대 규모다. U2가 내한공연하는 나라에는 콘서트 시장 규모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이다. U2는 미국 팝스타 마돈나, 영국 로큰롤 밴드 '롤링스톤스'와 함께 내한공연을 오지 않은 3대장이었는데 팝 팬들은 일부 한을 풀게 됐다. 콘서트 시장의 주요 관객층인 20대의 관심도는 비교적 덜했지만, 중장년층의 시장을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한국 팬들의 열광적인 반응에 U2 멤버들도 기꺼워했다. '뷰티풀 데이'를 부를 때 서울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한 보노는 세계가 한국을 사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디 에지와 애덤 클레이턴은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다. 공연의 마지막, 멤버들이 관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할 때 대형 스크린 속에서 태극기가 힘껏 펄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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