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뉴DJ를 키우자④] 소통과 화해의 DJ 통합리더십

입력 2019.12.04. 18:19 수정 2019.12.04. 18:20 댓글 0개
‘국민과 대화’ 도입 4차례 시행
상호 비판 쌍방향 소통 선각자
집권 후 정적에게도 화해 손길
‘내 사람’ 아닌 능력 위주 인사
특별전 ‘김대중, 그 불멸의 순간’

김대중 전 대통령(DJ)이 집권 후 내세운 5대 국정지표에는 '국민적 화합정치'와 '자율적 시민사회'가 포함됐다. DJ가 국민통합과 소통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다.

DJ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시대를 호령했던 정치인이다.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하다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맞았으나 물러서지 않고 신념을 지켰다. 이 때문에 그는 강한 인상이 남겼다. 정치적 경쟁자들이 DJ를 두려워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DJ는 소통과 용서·화해를 뼛속 깊이 간직한 진정한 포용의 지도자였다. 어떤 일방통행도 보복도 하지 않았다. 소통을 통한 통합과 용서를 통한 화해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갈등을 풀어내고 위기를 돌파해 나갔다.

◆위기에서 더 빛난 '소통왕'

DJ는 대화를 통한 설득과 타협을 중요하게 생각한 민주적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늘 상대와 대화했고 설득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려 했다.

DJ는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직접 방송에 출연, 국민과 대화를 했다. 재임 기간 4차례나 '국민과 대화'에 나섰는데 당선자 신분으로 가진 첫 생방송 시청률은 53%였다.

당선 이후에는 사이버상의 열린 청와대 등을 만들어 하향식 정책이 아닌 국민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상호비판 할 수 있는 쌍방향 소통정책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정책이었다.

DJ의 소통 능력은 위기에서 더 빛났다.

당선 직후 '국민과 대화'를 통해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린 외환사정을 국민에게 솔직히 설명하며 고통분담을 호소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고 국익을 위한 자기희생을 설득하는 리더십은 위기 극복의 원동력이 됐다.

또 외자유치 활성화를 위한 경제구조개혁에 있어 노동계의 협력을 끌어낸 그의 소통 능력은 더욱 탁월했다.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등 노동시장 유연화정책에 대해 노동계가 결사반대하는 상황에서 노동계가 구조조정 등 경제구조개혁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노조의 정치활동 및 정책결정 과정의 참여를 보장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노사 간 복잡한 이해관계를 사회적 합의로 해결하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했다.

◆용서와 화해, 포용과 화합의 리더십으로 국민통합.

'김대중 자서전'을 집필한 김택근 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김 전 대통령의 삶은 용서와 화해로 압축된다"고 말했다.

DJ는 납치·내란음모사건 등 죽음의 고비와 수많은 정치적 핍박을 받은 정치인이었지만 유독 용서와 화해에 대한 말을 많이했다.

"이해하면 용서하게 되고 용서하면 화해하게 되며 화해하면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갖게 됩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다고 했습니다. 오래 참는 마음, 그것이 사랑과 화합으로 가는 출발점입니다. 용서하게 되면 인생의 전투에서는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깁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전투에서는 이기더라도 전쟁에서는 집니다"(1984년 '옥중서신')

DJ는 일찍이 가해자들에 대한 용서를 결심했고 대통령이 돼 실천했다. 정치보복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정부 수립 이후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대통령은 DJ가 처음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우선, DJ는 자신을 감옥에 넣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1997년말 대통령 당선자 신분으로서 당시 김영삼 대통령과 합의해 특별사면했다. 그리고 청와대로 두 전직 대통령 부부를 초청, 화합과 통합의 시대를 소망했다.

또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려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용서했다. 1999년 서울 마포구에 건립된 '박정희 기념도서관'도 1999년 박정희기념사업회에 재정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시작된 것이다.

아울러 DJ는 지역과 계층 성적 차별이 비일비재한 한국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고질병 중 하나인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온몸을 바쳤다. 집권 전이나 후나 수많은 영남의 인재를 등용했다. 나중에 여권의 대권후보로까지 떠오른 김중권 비서실장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영남의 발전을 위해 아낌 없는 투자를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통해 "김 전 대통령의 생애는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통해 국민통합의 길을 걸어온 여정이었다"면서 "통합과 화해의 정치는 국민의 단결과 단합으로 이어졌고 IMF 국난을 극복하고 국민과 함께 일어설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코드'보다 '능력'… 적재적소 인사에 '최선'

DJ는 당 총재 시절 시민사회와 재야 인사, 학생운동권 등 개혁적 인사의 수혈을 통해 새로운 정치적 모델을 만들며 정치적 위기 돌파했다. 또 자신을 위해 수십년 동안 고생한 이들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가신 위주의 코드인사를 배제하고 경제도약과 개혁정책을 원활히 추진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외부 전문가를 중용했다. 연합정권이라는 한계에도 불구, 적재적소 인사를 위해 최선을 다한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대중 정부 1기 경제팀의 핵심인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은 DJ와 일면식도 없었다. 이규성 장관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일면식도 없지만, 일 잘한다고 해서 뽑았소"라고 격려한 일화는 유명하다. 심지어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대선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진영의 인물이었다.

또 대북포용정책을 담당하는 통일부 장관에 강인덕, 외교통상부 장관에 박정수, 국정원장에 이종찬, 외교안보수석에 임동원을 임명했는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구여권 출신자다.

이같은 인사가 가능했던 것은 중립적 인사기구를 설치한 DJ의 혜안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10년간 존속했던 기구인 중앙인사위는 대통령의 권한을 위임받아 1~3급 고위 공무원의 채용과 승진을 관장했다. 장·차관 이상 정무직을 임명할 때는 중앙인사위원장이 후보자 추천과 검증 과정에서 청와대와 협의를 거치기도 했다.유대용기자 ydy2132@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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