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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DJ를 키우자] 위기의 대한민국 구한 '불굴의 의지'

입력 2019.12.04. 06:00 댓글 0개
다섯번의 죽을 고비 넘기고 대통령 당선
IMF 3년 9개월 만에 극복 경제주권 회복
사회 전 분야의 개혁으로 성장동력 확보
[광주=뉴시스] 2013년 6·15 남북공동선언 13주년 기념식에서 故 이희호 여사가 인사말을 하는 모습. (뉴시스 DB)

[광주=뉴시스] 공동취재팀 =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별명은 '인동초'다.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제15대 대통령에 오른 불굴의 의지가 담겨 있다.

'행동하는 양심'의 대명사인 DJ. 그가 정치에 입문한 뒤 대통령을 엮임하고 85세로 타계할 때까지 보여줬던 인내심과 위기 대처능력, 개혁성은 민주주의·인권, 한반도 평화를 진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전진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며, 인내해야 할 때 초조하지 말며, 후회해야 할 때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DJ 옥중서신 중)"

◇'와신상담'을 뛰어넘는 불굴의 의지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 10여 년에 걸쳐 이뤄졌다면, DJ의 대통령 당선은 1954년 정치 입문부터 무려 44년이 걸렸다.

DJ는 1925년 전남 신안의 하의도에서 일본인 지주의 소작농을 하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운사업에 성공한 청년실업가로 활동하다가 이승만 정권의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 1954년 제3대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4~5대 총선에서도 고배를 마시고 1961년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민의원에 당선됐지만 3일 만에 5·16 군사쿠데타로 국회가 해산됐다.

1971년 박정희 대통령의 철권통치에 대한 항의와 도전은 그에게 30년 가까운 고난과 시련의 서곡이었다. 오랜 세월 가택연금과 피랍, 투옥, 사형선고 등의 역경으로 다섯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지역적으로 차별을 받았던 호남의 고졸 출신, 야당 의원으로 기득권의 견제와 감시, 탄압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네 번의 대권 도전 끝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DJ의 파란만장했던 정치 역정을 살펴보면 어떠한 고통과 시련 앞에서도 의연하게 때를 기다릴 줄 아는 불굴의 의지가 관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과 궤를 같이하는 DJ의 삶은 결국 노벨평화상 수상이라는 꽃을 피웠다.

"두렵지 않기 때문에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두렵지만 나서야 하기 때문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게 참된 용기 입니다.(DJ 1987년 9월 광주 그랜드호텔 간담회)"

[광주=뉴시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인 1981년 청주교도소에서 故 이희호 여사, 아들들과 면회하는 모습. (뉴시스 DB)

◇어려울 때 빛나는 위기관리 능력

DJ는 1997년 12월 경제환란의 와중에 정권을 잡았다.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라는 유사 이래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 대기업부터 중소기업까지 줄도산이 이어지고 외국 자본가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바빴다.

국가 경제가 백척간두 위에 놓이자 당선의 기쁨은 사치였다. DJ는 취임과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을 국정기조와 비전으로 제시하고 개혁과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다.

DJ의 경제 환란 대처에 국민들은 '금모으기 운동'으로 동참했고 1997년 말 39억 달러이던 외환보유액이 2002년 말에는 1214억 달러로 늘어났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외환위기를 겪은 아시아 국가 중에서 처음으로 IMF 지원자금 195억 달러를 당초 계획보다 3년 앞당겨 전액 상환하며 경제주권을 3년 9개월 만에 되찾았다.

유사 이래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에게는 고통 분담을, 정치권에는 협력을, 기업에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한 DJ의 위기관리 능력이 빛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DJ의 위기관리 능력은 수직적인 통치 스타일에서 벗어나 정치적 대결 구도를 완화시키고 국민과의 직접적인 소통으로 현실과 비전을 공유했기에 가능했다.

"올 한 해 동안 물가는 오르고 실업자는 늘어날 것입니다. 소득은 떨어지고 기업의 도산은 속출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땀과 눈물과 고통을 요구받고 있습니다…잘못은 지도층들이 저질러 놓고 고통은 죄 없는 국민이 당한 것을 생각할 때 한없는 아픔과 울분을 여러분과 같이 금할 길이 없습니다.(DJ 대통령 취임사 연설 중)"

[광주=뉴시스] 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7년 광주 망월동 5·18묘지를 참배한 뒤 유가족과 오열하고 있는 모습. (뉴시스 DB)

◇뼈를 깎는 개혁성

사회적 환경과 시대적 변화는 새로운 리더십을 요구한다. IMF 조기 졸업은 DJ가 단행한 사회 전 분야의 강도 높은 개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DJ는 집권 당시 경제분야에서 금융, 기업, 공공, 노동 부문의 4대 개혁을 추진했다. 여러 부작용도 발생했지만 IMF 조기 탈출이라는 거시적인 목표 하에 뼈를 깎는 강도 높은 개혁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정치분야에서도 개혁이 이뤄졌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 총재를 겸하고 있던 DJ는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인재를 대거 영입했다. 이 때 정치권에 영입된 인사가 전대협 출신 이인영 원내대표와 우상호 전 원내대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등으로 당시 한나라당의 과반의석을 막아냈다.

사회 양극화와 정당 간 대결 구도, 총성 없는 외교전쟁이 벌어지는 국내외 정세 속에서 정치 지도자의 리더십에 개혁성이 수반돼야 국정운영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겼다.

DJ의 개혁은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적 정치상황을 함께 고려해 개혁과 반개혁 세력 간의 갈등을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실현해야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도 증명했다.

생전의 DJ는 "서생적(선비의)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이라는 어구를 전매특허처럼 사용했다. 그 만큼 개혁의 기반을 실사구시에 두고 있다는 반증이다.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은 민주화에 대한 정치적 사명감과 인내력, 꾸준한 자기개발이 결합해 발현될 수 있었다"며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 노선을 쉽게 변경하는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내가 정권을 잡으면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적게 내는 동시에, 돈이 많다고 해서 나라나 사회의 형편도 생각지 않고 사치와 낭비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난 부유세와 특별세를 받는 일대 조세혁명을 단행할 것을 공약합니다.(1971년 4월 DJ 신민당 대통령 후보 장충단 공원 연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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