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각그랜저

입력 2019.12.02. 18:08 수정 2019.12.02. 18:08 댓글 0개
류성훈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2본부장

6세대 그랜저(IG)의 부분변경 모델이 최근 출시됐다. '더 뉴 그랜저'는 '성공'이란 키워드를 앞세워 여러편의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데 인상적이다.

#아들의 직업(유튜버)이 못마땅한 엄마가 그랜저를 몰고온 아들을 보자 '성공했다'며 덩실덩실 춤을 춘다. #직장동료가 창업하려고 퇴사하자 비웃다가 그랜저를 타고 떠나자 시기심을 감추지 못한다. #임원으로 승진한 동창이 수입차를 안 사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다가, 법인차(그랜저)를 끌면서 모임 비용을 결제하겠다고 말하자 '언니!'라고 소리치며 존경 모드로 돌변한다. 광고는 40~50대 시청자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차를 대표하는 현대차, 현대차를 대표하는 그랜저가 등장한 것이 벌써 33년이 지났다. 흔히 각그랜저라 부르는 1세대 그랜저는 1986년 출시됐다. 2세대는 뉴그랜저, 3세대 XG, 4세대 TG, 5세대 HG로 불렸다.

학생 시절 필자의 드림카도 각그랜저였다. 어쩌다 도로에서 마주치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보고 있을 정도였다. 당시 각그랜저의 품위는 여느 승용차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성공한 사람을 위한 차'였다.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2천㏄와 2천400㏄가 한창 팔릴 때 최고 배기량인 3천㏄가 나오자, '3.0 V6'와 'V6·3000'이 찍힌 마크를 너도나도 사서 붙이고 3천㏄ 옵션과 똑같은 시트 등으로 개조하는 일도 비일비재했었다. 각그랜저는 사장님, 회장님 차로도 통했다. '오렌지족' 등 잘나가는 재벌 2세들의 차도 각그랜저였을 정도로 부자들이 타는 차로 인식됐다. 땅 투기로 갑자기 부자가 된 졸부들도 선호했고, 조폭 우두머리들이 즐겨 타던 탓에 이미지에 타격이 생기기도 했다.

'그랜저(GRANDEUR)'라는 이름은 웅대, 화려, 장엄, 권위, 위엄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30년 전의 그랜저는 국산 최고급 승용차였지만, 지금은 준대형 세단을 통칭하는 대명사로 쓰인다. 6세대 그랜저가 '잘 나가는 오빠차'로 공략하면서 3040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런데도 시내에서 운행 중인 각그랜저를 어쩌다 보면 위풍 당당하고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과 위상이 아직은 남아있는 듯 하다. 되돌아보면 1세대 그랜저는 그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드림카였던 것이다. '썩어도 준치'라는 속담이 떠오른다.

류성훈 사회부 부장 rsh@srb.co.kr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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