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안식년 마친 한희원 작가 "내 삶과 예술 돌아본 소중한 기회, 작품으로 승화할 것"

입력 2019.12.01. 16:13 수정 2019.12.01. 17:13 댓글 0개
무등이 만난 사람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안식년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한희원 작가가 양림동 한희원 미술관에서 그간의 소회와 향후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세옥기자 dkoso@srb.co.kr

"이번 트빌리시에서의 시간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문제, 침잠되면서도 절실한 어떤 것들에 직면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같은 느낌들을 시대에 맞는 현대적 조형언어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10개월여의 안식년을 마치고 최근 귀국한 한희원 작가, 소회가 깊어 보인다.

'지난 시간들을 조형언어로 형상화하는 일은 작가로서 과제이자 지역사회에 대한 보답'이라고 덧붙인다.

지난봄부터 지난달까지 이어진 그의 트빌리시 안식년은 지역의 예술애호가들이 만들어낸 보석 같은 시간이다. 노동일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장(민콘 대표이사)과 박헌택 영무토건 대표, 조덕선 SRB미디어그룹회장 등이 광주 최초이자 한국 최초로 예술가에게 안식년을 선물한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는 광주시민들의 뜨거운 마음이 드러난 것으로 다른 도시에서는 만날 수 없는 풍경이다.

트빌리시에서의 한희원작가.

◆작업의 감옥에 갇힌 귀중한 시간

그에게 트빌리시의 시간은 감사한 작업의 감옥이었다고.

그는 "조정래 선생님께서 당신의 글쓰기를 '글감옥'이라고 했는데 저에게는 이번 트빌리시 안식년이 저만의 감옥이었다"며 "스스로를 작품이나 자기 자신에게 유폐시키는 것인데 사실 일상에서는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거의 24시간 내내 그림만 그리는 것이 가장 좋았지만 역설적으로 고통스럽기도 했다. 사색하고 독서하며 그림 그리는 일이 삶의 전부인 생활이 아름답게 비치지만 그런 시간들이 수개월이 주어질 때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전 존재를 건 자기와의 싸움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그는 삶과 인간, 사회에 대한 더 깊은 대화를 일궈냈다.

작업의 실험성도 다양하고 깊어졌다. 유화라는 한정된 틀에서 벗어나 몇 달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그림만 그렸다. 생각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시를 60편 정도 써냈다. 작품도 360여점을 완성했다.

하루 24시간이 잠깐의 산책을 제외하면 온전히 자신에게 던져진 시간들이다.그 흔한 한국 상점 하나 없는 곳에서 작품과 작업, 사색만이 길동무가 되는 시간은 엄청난 사색과 자기탐구를 요하는 것이다. 쉽지 않지만 너무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 절절해진다.

트빌리시의 풍경, 사람들을 화면에 담아내고 이들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끝없는 탐구의 시간들이었다.

환경은 새로운 작업을 요구했다. 유화물감 확보등 유화작업을 하기가 어려운 환경이다. 인구 110만의 시에 화방은 단 3곳이고 그나마 거의 문방구 수준이라고. 수채화와 아크릴을 선택한 배경이다. 기법적으로도 시도 가능한 모든 방법들이 동원됐다.

섬세하게 파고들어가거나 물을 사용하거나, 긁어내는 등 다양한 기법들을 실험했다. 재료도 연필과 색연필, 부엌의 솔, 빗 등 모든 생활용품이 활용됐다. 다양한 표현기법을 모두 시도했다. 한 기법이 5∼6 작품을 넘지 않을 정도다. 그렇게 360 작품이 만들어졌다.

그는 "작가들이 한 기법으로 몇 년, 수십년을 지속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평소에 생각해볼 수 없는 거의 실험적 기법들을 시도해봤다"며 "예술이란 이론적으로 정립된 것을 조형적으로 선보이는게 중요한데 그걸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만난 트빌리시

트빌리시 사람들은 삶이 종교이고 종교가 삶인 서양의 전통기독교 국가 중 하나다. 조지아 정교가 국교다. 서기 300년경에 기독교를 국교로 도입한 최초의 기독교국가로 1천년 이상된 초기 기독교회가 많다.

다른 유럽지역과 다르다. 화려하지 않고 은은하고 고즈넉한, 뭔가 오래된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도시다. 그는 "고층건물도 많지 않고 그윽한 도시 풍경이 외국인데도 고향같은 포근함을 준다"고 말한다.

조지아 인들은 강인한 체격을 자랑하는 민족이다. 우람한 체격의 순박함은 역설적으로 더 눈길을 끈다고. 트빌리시에서 이방인의 눈에 가장 낯선 풍경이 거리에 넘쳐나는 걸인과 투견처럼 덩치 큰 개들이다. 걸인은 전혀 불행해보이지 않다. 걸인과 길거리 유기견들을 트빌리시민들이 '거두고 있다'는 인상이란다. 골목이나 지하철 등 길거리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유기견들은 누군가의 애완견처럼 깨끗하다. 국민 모두가 함께 돌보는 듯 하더라는 이야기다.

그는 "체격이 우람한 그들이 무릅을 꿇고 기도하는 아이같은 뒷 모습이랄지, 개나 걸인을 돌보는 모습이 참 이채롭더라"고 말한다.

◆삶을 향하는 응시의 연원

교사나 교수 작가가 대접받던 90년대, 한희원은 교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홀연히 내던지고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박정희 시절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한 한희원은 현실사회에 대한 작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 독재시절 한국교회에서 역동적으로 시민과 국민의 권리, 민주 인권 활동에 앞장서온 양림동 기장교회 청년부에서 활동하며 '예쁜 꽃이나 그리는게 예술가에게 맞는가'라는 고민을 안고 살았다.

군 제대후 그는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작품화했다. 80년대 광주미술인 공동체, 광주목판화 연구회 등에서 치열하게 활동한 배경이다. 순천여상고 교사 시절 그가 만난 학생들 대부분이 농촌의 자녀들인 상황도 한 몫했다. 수채화로 목판으로 우리 것을 찾아나섰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풍경을 담아오던 그는 광주상고로 자릴 옮기면서 도시의 기쁘고 활기찬 풍경 너머의 낮은 곳, 어둡고 쓸쓸한 곳을 바라보며 따듯한 풍경들을 읽어냈다.

'여수로 가는 막차'의 서정적이고 아득하고 아늑한 이미지 등이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스산하고 쓸쓸한 풍경이 지닌 삶의 이면에 관한 이야기다.

93년 첫 개인전때 발문을 한 이태호 교수가 '조선대에서 공부한 그가 시적이고 회색빛의 작품세계를 어떻게 구축했을까'라는 궁금증을 가졌던 대목이기도하다.

여기에는 그의 가족사가 담겨있다. 그의 아버지 고 한이직님은 일제 강점기 민족대학인 평양숭실대에서 양주동 박사를 사사하며 영문학을 공부한 1기 제자다.

그의 큰 아버지는 역시 숭실대 출신으로 미국유학까지 마친 한국 기독교 1세대인 한경직 목사다. 교단에서 평생을 마친 그의 아버지는 1935년 춘원 이광수 추천으로 희곡으로 등단한 작가이기도 하다. 실향, 한국근대사의 굴곡, 문향 등이 그의 가족사에 오롯이 묻어 있고 문학에 대한 열정은 그도 평생을 함께한다. 등단은 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시를 써온 그다.

그가 "제 작품이 서술적인 것은 아마도 문학적 성향이 작품에 묻어난 때문일 것"이라고 분석하는 이유다.

이태호 교수가 그의 작품이 '근원적인 문학성, 조형적 실험성보다 인간의 근원적 문제에 다가가는 연원'으로 해석한 배경이다.

작가는 "이번 트빌리시에서 시간을 통해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보다 더 절실하게, 피부에 직접 와 닿는 느낌으로 다시 생각하게 됐다"며 "침잠되면서도 현대적인 시대에 맞는 조형언어로 만드는 것이 이제 남은 과제"라고 강조한다. 이어 "젊은 세대는 다양한 공부를 할 기회가 많은데 저희 세대 전업작가들은 사실 기회가 거의 없다. 이번 기회가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품에 녹여내는 것이 지역사회에 보답하는 길일 것"이라고 덧붙인다.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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