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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뇌관 '징용 해법'···日 전범기업 자산 매각 '시한폭탄'

입력 2019.11.23. 17:37 댓글 0개
지소미아 봉합했지만 애초 도화선 징용 문제 언급 없어
日 "근본 과제는 징용…韓, 국제법 위반 빨리 시정해야"
전문가 "대법원 판결, 수출 규제, 지소미아는 3종 세트"
"日 기업 자산 현금화라는 또다른 시한 다가오고 있어"
"빠르면 내년 봄 자산 평가 후 매각 조치 이뤄질 전망&
【서울=뉴시스】추상철 기자 = 일제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았다.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미쓰비시 중공업 원고단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19.06.27. scchoo@newsis.com

[서울=뉴시스]이국현 기자 = 한국과 일본이 수출 규제 조치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에 나서는 대신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를 조건부 유예하며 파국을 피했다. 하지만 정작 한일 갈등을 촉발했던 강제징용 해법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갈등의 뇌관이 남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청와대는 22일 지소미아 종료를 불과 6시간 앞두고, '언제든지 한일 군사비밀보호협정의 효력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2019년 8월23일 종료 통보의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한일 간 수출관리 정책 대화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 동안 일본 측의 3대 품목의 수출 규제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절차를 정지키로 했다.

같은 시간 일본도 과장급 준비 회의를 거쳐 국장급 대화를 통해 양국의 수출관리를 확인하고, 한일 간 건전한 수출 실적의 축적 및 한국 측의 적정한 수출관리 운용을 위해 (규제대상 품목과 관련한) 재검토가 가능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당초 갈등의 도화선이 된 일제의 강제 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는 전날 발표에서 제외됐다. 그 동안 일본은 수출 규제와 지소미아는 별개 문제이며, 징용 판결의 국제법 위반 상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가 대법원의 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이뤄진 점을 감안하면 정작 핵심은 손대지 못한 셈이다.

[도쿄=AP/뉴시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2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한국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발표 관련 기자들에게 발언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한국이 전략적 관점에서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의 조건부 연기 발표는 만료를 불과 6시간 남기고 결정됐다. 2019.11.22.

당장 한일은 발표 직후 징용 문제를 놓고 온도차를 드러냈다. 정부 당국자는 "강제징용이 안 풀리면 수출 규제를 풀 수 없다는 연계 전략을 깼다"고 자평했다. 하지만 모테기 도시마쓰 일본 외무상은 "현재 최대 과제와 근본적인 것은 강제징용 문제"라며 "한국에 하루라도 빨리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해줄 것을 계속해서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한일이 수출 규제를 철회하고 지소미아 종료 통보를 철회하는 큰 틀의 합의가 아니라, 일본이 수출 규제를 포함해 방향성 있는 논의를 시작하는 동시에 한국은 지소미아 종료를 유예하면서 작은 균형을 맞춘 데 따른 결과다. 결국 징용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한일간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뉴시스와 통화에서 "강제동원 대법원 판결과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지소미아는 연쇄 반응으로 생긴 3종 세트"라며 "일종의 동결 조치를 취한 것으로 문제의 원인이었던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해 한일 간에 외교적 해결이 이뤄질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본 기업에 대한 자산 현금화라는 또다른 시한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일은 물밑에서 강제징용 해법을 모색하고 있지만 좀처럼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된 만큼 일본 기업이 배상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사법부 판결을 존중하고, 피해자 권리를 실현시킬 수 있는 합리적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목포=뉴시스】박상수 기자 = 13일 오후 전남 목포시 중앙동 근대역사2관 옆 소공원에서 열린 '전남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에서 징용 피해자 박정규(95) 옹이 노동자상에 꽃목걸이를 걸어주고 있다. 2019.11.13. parkss@newsis.com

지난 6월 정부는 일본에 양국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마련해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1+1안'을 제시했지만 일본이 즉각 거절했다.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내는 것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수용하는 방안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후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 5일 일본을 방문해 양국 기업이 조성하는 기금에 국민성금을 더하는 '1+1+국민성금'을 공식 제안했다. 여기에는 양국의 민간 성금 형식을 더하고, 현재 남아있는 '화해와 치유 재단'의 잔액 60억원도 포함된다. 문 의장의 제안 당시 일본 언론은 실현을 위한 장애물이 높다며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지난 20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문 의장의 제안에 "확실히 일한 간 약속을 지킨다면 진행해도 좋다"고 말하며 기류 변화 조짐을 드러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문 의장의 제안이 강제 징용 해법을 푸는 열쇠가 될 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국내 일부 시민단체가 문 의장 제안에 반발하는 등 피해자들의 동의도 넘어야할 산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문 의장의 제안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많고, 앞으로 공청회를 진행하는 등 입법 작업을 한다고 하니 시일을 지켜봐야 한다"며 "징용 문제도 여전히 해법이 보이는 상황은 아니다.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나고야(일본)] 전진환 기자 = 강경화 장관이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과 23일 오후(현지시각) G20(주요 20개국) 외교장관회의가 열린 일본 나고야 관광호텔에서 양자회담을 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2019.11.23. amin2@newsis.com

문제는 또다시 시한이 닥쳐온다는 점이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하고, 각 1억원씩 총 4억원의 위자료와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인정했다. 이후 피해자들은 지난 5월부터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주식·특허권 등 자산을 압류하고, 법원에 배상액 상당을 매각하는 현금화를 신청했다. 현금화 작업은 빠르면 내년 자산 평가 작업을 거쳐 봄부터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빠르면 내년 봄 자산 평가 후 매각 조치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 전에 해법을 도출하지 않으면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태로 간다"며 "문회상 국회의장의 제안을 청와대가 인지하고 있고 한일간 대화의 밀도와 빈도, 수준, 위상 등은 올라간 상태로 가장 좋은 것은 한일 정상회에서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양 교수는 "강제징용 문제는 원고단과 피해자가 있고 오랜 갈등이 있다"면서 "향후 정상회담, 고위급 협상 등을 통해서 한일간 해법을 도출하고, 복합적이고 고차 방정식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3일 오후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회의가 열리는 일본 나고야 칸코호텔에서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양자회담을 갖고, 12월 한일 정상회담이 가능토록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한 한일 관계에 물꼬가 트이며 강제징용 등 첨예한 현안을 풀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 장관은 회담 직후 기자들과 만나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서로 간에 이견은 있지만 당국간 논의해 온 것을 짚어보고, 앞으로 계속 협의를 지속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날 회담에 대해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됐다"며 "과거사, 수출규제, 안보 문제 3가지 안건을 놓고 얘기했고, 지역 정세와 한반도 정세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다"고 전했다.

또 "강제징용 배상 문제 관련 시간을 조금 벌었으니, 양쪽이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정말 선의를 갖고 대화를 계속해나가야 한다는 데 이해를 더욱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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