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미치광이 전략과 대응

입력 2019.11.21. 18:21 수정 2019.11.21. 18:21 댓글 0개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하면 떠오르는 소설이 '백경'(흰고래)이다. 최근 그가 남긴 또 다른 소설 '필경사 바틀비'(1853년 발표)가 주목 받고 있다.

주인공 바틀비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로 작은 변호사 사무실 서기로 일을 야무지게 처리했다. 고용주인 변호사도 그를 총애했다. 하지만 바틀비는 자기 일만 할뿐 도통 다른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과 식사는 물론 술 한잔 같이하는 경우가 없었다. 업무 외에는 사소한 심부름도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다"라고 정중히 거절하곤 했다. 몇 번 업무외 일을 시켰다가 거절당한 고용주 변호사가 급기야 급여를 주지 않겠다고 윽박질러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결국 바틀비는 해고 통보를 받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변호사 사무실을 점거하고 "업무 외 일을 하지 않겠다"는 자유를 주장하다 감옥 신세를 지고 만다. 19세기 바틀비의 거절은 감옥에 갈 용기 없이는 불가능 했다. 150여년 전에 미래 노동 현장에서 있을 법한 갑질을 예견한 허먼 멜빌의 통찰력이 대단하다.

미국이 우리에게 전년에 비해 5배나 되는 방위비를 요구해 물의를 빚고 있다. 미군을 주둔 시키려면 50억 달러를 내놓으라는 협박이다. 동맹을 무슨 부동산 거래로 보는 트럼프식 사고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알려진 것처럼 트럼프는 성공한 부동산 업자다. 그런 업자가 거래에서 상용하는 수법이 첫거래에서 "무리하게 요구하라"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미국은 처음부터 괴팍스럽게 나왔다. 美 협상단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건 트럼프식 계산된 행동이다.

트럼프는 미치광이 전략으로 유명하다. 마치 비이성적 미치광이처럼 행동해 향후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방식이다. 이번 방위비 협상은 처음부터 무리한 요구에다 미치광이처럼 비이성적으로 나왔다.

여기에 걸려 들면 안된다. 우리도 소설의 주인공 바틀비처럼 거절의 용기를 내야 한다. 딱잘라 "하지 않은 편을 택하겠다"고 거절하라는 거다. 바틀비 식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협상은 하나 마나다. 끝내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하면 "나갈테면 나가라"고 맞서야 한다. 그런 뱃장 없이는 50억 달러를 냉큼 건네는 편이 낫다. 미치광이 전략에는 미친척해야 이긴다. 나윤수 칼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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