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내일을 향한 대항기억, 전남도청 공간의 정치학

입력 2017.08.16. 15:06 수정 2017.08.22. 14:33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엊그제 같기도, 아득한 옛날 같기도 하다.

잊혀지고 외면당해온 이들을 대통령이 지상으로 불러내던 일이. 아리고 시린 시간들이 먹먹한 감동으로 밀려들었다. 배제와 소외의 시절, 그 들판의 황량함과 삭막하고 폭력적인 외로움이 온전한 삶으로 단번에 변태하는 순간. 한 우주가 새롭게 탄생하는 찰나였다.
비로소, 존재하되 존재하지 못했던 이들이 피와 땀과 살을 지닌 '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찌 광주 뿐인가. 수많은 광주, 수많은 세월호가 온전한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본사의 갑질에 목숨으로 증거해야했던 프렌차이즈 가맹점주들을 비롯한 이땅의 부존재자들에게 그날은 그렇게 우주가 열린 시간이다.

유령처럼 부유했던 이들이 남 같지 않은 건 그 부존재의 존재를 뼛속 깊이 알 것 같은 추체험 때문이다. 헌데 이 충만함에 '의심과 의혹'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넘실댄다. 조마조마 마음이 시려온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하 문화수도)이야기다. 알다시피 고 노무현 대통령이 지역균형발전 전략차원에서 국가적 아젠다로 추진했던 사업이다. 문화예술 도시(광주)를 '문화'를 매개로 도시발전을 이뤄보자는 거대한 '꿈'이었다. 허나 원대함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축소·격하됐다. 위상도 꿈도 자지러지고 뭉개졌다. 마음이 짓밟힌 자리에 무엇이 싹틀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상징되는 문화수도 사업은 80년 5월의 아픔을 예술로 치유 승화하려는 사회적 마음도 담겨있다. 누군가는 외면하고 배척하려 했던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고 노래를 불러준 이와의 조우가, 37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뛴 만남이 '아득한 현실'로 다가왔던 이유다. 90%가 넘는 광주의 환대는 그럴 연한 것이다. 한쪽 눈으로 세상을 보려는 이들 식으로 이상한게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를 향한 뜨거운 마음이다.

대통령의 호명에 이어 문인출신이자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누구보다 잘 알 듯한(그는 지난 추모식에서 눈물의 추도사로 마음을 드러냈다) 도종환 작가가 문화체육관광부장관에 취임했다. 뭉개진 마음을 반듯이 펼 자리가 마련된 듯했다.

헌데 새 장관이 추진한 직제 개편과 문화수도 사업정책에는 옛 정권의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달라진 게 없다. 당초 차관급으로 출발했다가 4급으로 격하된 문화전당장 직급 조정을 비롯해 아시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에 관한 특별법의 시효, 조성사업 목표기간 , 7대 문화권 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적 근거 등에 대해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다.

그나마 '도청복원' 문제는 대통령 약속으로 속도를 내는 듯하다. 장관을 비롯해 정치인들이 앞다퉈 '복원'을 약속하고 있다. 헌데 이 '속도'와 달리는 '길'이 위태로워 보인다. 이들의 약속은 '선언적'이고 구체적 로드맵은커녕 이렇다 할 TF(광주시 티에프팀은 팀장도 없다)나 자문위원회 하나 없다. 주무부처인 문광부와 장관조차 시민들에게, 광주시에 '의견을 모아달라'고만 한다. 이 사안은 지난해 도청복원을 위해 49개 시민단체들이 꾸린 '옛 전남도청 보존 범시도민 대책위원회'가 유일하게 이끄는 양상이다.

도청복원은 80년 5월에 대한 왜곡되고 비틀린 기억(진실)을 바로잡으려는 '대항기억'의 문화적 역사적 공간의 문제이자 생존한 희생자들의, 광주시민들의 이땅의 부존재자들의 마음이 자리할 정치적 공간이다.

공간적, 정신사적, 문화사적 맥락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으로 집약돼야하는 거대한 사업이다. 철학과 건축, 미학, 역사,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전문가집단이 참여해야하는 간단치 않은 과제다. '정서'나 '감정', '해원'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전문가 집단의 애정어린 우려다.

시민사회단체가 만들어 놓은 무대에 이제는 각계 각층 전문가 집단의 응축된 마음과 지식이 모아져야 한다. 광주시와 주무부처인 문광부는 소명감을 갖고 '함께' 준비해 나가야한다. 자체 TF나 위원회 등을 통해 다층적인 집단 지성의 논의를 모아야한다. 지금 시작해도 늦다. 두고두고 천추의 한으로 아쉬움으로 추락할 수도 있겠다는 일부의 우려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된다.

어떠한 경우에도 시민들이 이끌어낸 '도청복원'이 정치적 '선언도구'로, '치적용'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해야한다. 뒤틀린 기억의 실체적 진실을 후세들과, 세계인과 공유하고 함께 마음을 모아가는 일은 시대적 요청이기도 하다. 세계사적 차원에서 '광주'라는 공간을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 세계인과 어떤 방식으로 공유해갈 것인가, 끝없는 질문의 길 한 가운데 서있다는 걸 잊지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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