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예술이 된 역사, ‘고려아리랑 : 천산의 디바’

입력 2017.08.16. 14:55 수정 2017.08.22. 14:29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모스크바….

중앙아시아, 우리가 ‘고려인’이라고 부르는 동포들의 거주지다. 고려인의 시초는 조선말 연해주를 중심으로 한 경제이민이다. 조선인들은 스스로를 고려사람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전진기지였다. 1937년 스탈린이 17만여명에 달하는 고려인들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지로 강제 이주시켰다. 황량한 땅에 내던져졌다. 거주이동의 자유도 없었다. 혹독한 환경에 수만 명이 죽어갔다.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시작이다. 올해는 고려인 디아스포라 강제 이주 80년이 되는 해다. 디아스포라와 젠더 등에 관심을 기울여온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고려인 이산 문제를 감각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 음악영화 ‘고려 아리랑: 천산의 디바’를 내놨다.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을 무대로 활동했던 빼어난 두 여성 예술가의 삶을 통해 고려인들의 삶의 궤적을 조명한다.

동포 위해 유랑을 선택한 디바

“‘고려극장’이 찾아오는 날은 유일한 잔치 날이었요. 잃어버린 가족을 다시 만난 듯,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어요”
영화는 고려극장이 배출해낸, 세기의 디바 이함덕(1914~2002)과 방타마라(1943~ )라는 두 명의 걸출한 디바의 예술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은 강제이주로 삶의 터전을 잃고 가족과 생이별한 동포들을 위로하기 위해 시베리아 벌판으로, 소련 집단 농장으로 직접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다. “순회공연단이 찾는 날은 명절을 맞는 듯 했어요. 가수라는 직업은 떠돌이 생활을 사랑해야할 수 있어요”. 동포들을 위해 기꺼이 유랑의 삶을 선택한 위대한 여성 예술가의 마음이 읽힌다. 이함덕은 고려극장 1세대로 고려인 최초로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남미 최고의 디바 메르세데스 소사에 빗대 고려인 메르세데스 소사로 불린 전설의 뮤지션이다. 1970∼198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방타마라는 성악 전공출신으로 한국 전통가요는 물론 러시아 민요 재즈 등 월드뮤직을 구사하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두 디바의 빼어난 예술활동을 다룬 ‘천산의 디바’를 두고 평단은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세계 음악사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을 이을 최고의 음악영화로 평가하며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 두 주인공을 떠받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은 고려극장이다. 한국어로 공연하는 전문 공연장으로는 국내외를 통틀어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일제 강점기 연해주의 독립운동가와 지식인그룹이 1932년 9월 9일 설립했다. 1937년 스탈린의 고려인 강제이주 후 카자흐스탄에 자리잡았다. 빼어난 공연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도 인기를 얻으며 소수민족 극장으로는 유일하게 공화국 수준의 국립극장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1년 중 절반 이상을 고려인들이 거주하는 다른 지역으로 순회공연을 다닌다.

김소영 감독이 1일 개봉을 앞두고 광산구 고려인들을 초청해 지난 28일 광주극장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일제강점기 한국문화 부흥을 위해 연해주에 세웠던 고려극장의 후예들을 광주극장에서 만나는 일은 의미가 각별하다. 일제의 우리 문화말살 정책에 항의해 민족자본으로 만든 광주 최초 민족극장이 광주극장이다. 여기에 고려인 강제 이주 80년에 선뵈는 ‘천산의 디바’가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또한 각별하다. 이 사회에서 고려인은 한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재외동포’라는 특이한 존재다. 그 척박한 벌판에서 땅을 일구고 부모형제의 죽음을 건너면서 그리워했던 고국은 그들을 ‘고려인’이라는 섬으로 배제하고 있다. 소련 붕괴 후 많은 이들이 한국으로 들어오고 있지만 ‘재외동포법’은 이들 후손들을 외국인으로 규정한다. 부모, 조부모까지만 ‘동포’로 인정하고 자녀세대인 4세대들은 ‘외국인’이다. 만 18세가 되면 강제출국해야 한다.

광주가 품은 우리 안의 '섬'

광주에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4천여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다. 광주는 지난 2013년 전국 최초로 고려인 지원조례를 제정하는 등 이들의 정착을 지원하고 있다. 허나 법이 바뀌지 않는 한 이들은 영원한 이방인이다. 다행히 고려인의 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기억과 동행’위원회가 발족되는 등 전국적으로 각종 기념사업이 진행되고 ‘고려인 특별법’을 위한 움직임도 있다.

영화는 묻는다. 죽음을 넘고 사막을 건너 혹독한 환경에도 단 한 번도 놓지 않았던 고국, 어디에 있는가.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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