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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장갑'부터 '푸른 눈'까지···타이거즈 역대 감독史

입력 2019.11.13. 14:06 댓글 0개
[역대 타이거즈 감독 히스토리] 上
초대감독 김동엽 ~ 4대감독 유남호
타이거즈 역대 감독들(왼쪽부터 故 김동엽, 김응용, 김기태, 맷 윌리엄스)

KIA 타이거즈 제9대 감독은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의 맷 윌리엄스(Matthew Derrick Williams·54). 구단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다. 

▲데이터 분석 및 활용 ▲포지션 전문성 강화 ▲프로 선수로서 의식 함양 ▲팀워크 중시 등 최근 프로야구 트렌드 및 구단의 방향성을 실현할 적임자라는 게 구단 측의 설명. 

열 한차례나 ‘가을의 전설’을 써 내려간 타이거즈가 수많은 레전드들을 제쳐 놓고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 이유가 뭘까. 

감독을 보면 팀의 정체성과 가고자 하는 방향성을 알 수 있다.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유명한 고 김동엽 감독부터 ‘동행’의 김기태 감독까지 역대 타이거즈 감독에 대해 알아봤다.


▲ '빨간 장갑의 마술사' 초대감독 김동엽(1982)

해태 감독시절 김동엽 감독. 빨간 장갑을 끼고 선수들에게 사인을 내고 있다. 사진=유튜브캡처

선수시절 빨간색 장갑을 끼고 활약하며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린 김동엽 감독이 82년 해태타이거즈 창단과 함께 초대 지휘봉을 잡았다.

하지만 해태의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괄괄하고 불같은 성격이었던 김감독은 코치들과 잦은 마찰을 일으켰고 선수들조차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16명에 불과했던 선수단에 내부 잡음까지 생기자 팀은 좋은 경기력을 발휘할 리 없었다.

결국 김동엽 감독은 13경기(5승 8패)만을 치르고 3개월 만에 중도 해임된다.

김동엽 감독의 유명한 일화는 '검빨' 유니폼의 기원이다.

전설의 ‘검빨’유니폼의 모티브가 됐던 해태 ‘런던드라이진’ 양주. 사진=독자제공

창단 당시 해태의 원정 유니폼 디자인을 고민하던 중 애주가였던 김동엽 감독이 자신이 즐겨 마셨던 해태 '런던드라이진' 양주 상표의 영국 근위대 복장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던 것.

이후 타이거즈의 '검빨'유니폼은 한국프로야구사를 풍미한 전설의 유니폼이 됐다. 


▲ 타이거즈 왕조를 세운 '코끼리' 김응용(1983-2000)

MBC청룡 감독으로 부임한 김동엽 감독과 해태의 김응용 감독. 사진=유튜브 캡처

전설의 구단이 된 '해태타이거즈', 그 중심에는 '코끼리' 김응용 감독이 있었다.

83년 해태타이거즈의 2대 사령탑으로 부임한 김감독은 거대한 풍채 덕분에 코끼리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시합에서는 여우같은 전략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타이거즈 선수단을 조련, 해태를 맡은 그해 우승시킨다.

이후 김응용 감독은 18년동안 타이거즈를 맡으며 9번의 우승을 이끌고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왕조'를 세운다.

야구인들이 말하는 김응용 리더십의 최대 덕목은 '선수단 장악능력'이다.

김응용감독은 선수단 분위기를 위해 심판과의 싸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사진=무등일보DB

기량이 출중했고 개성 또한 강했던 해태 선수들을 하나로 묶기 위해 김응용 감독은 철저하게 기량 위주로 선수를 기용했고 내부 잡음이 나지 않도록 좀처럼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96년 12월2일 CF에 출연하기 위해 분장하는 김응용감독. 사진=무등일보DB

하지만 유니폼을 벗으면 친근한 모습도 보였는데, 젊고 유망한 선수들을 위해 사비를 들여 자신의 아파트에서 지내도록 했고 원로 야구인들도 잘 챙겼다고 한다.

2000년 10월 1일자 무등일보 지면.


▲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타이거즈 적자 김성한(2001-2004)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20홈런-20도루’를 달성한 김성한이 헬멧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무등일보DB

2000년 시즌을 마치고 김응용 감독이 삼성으로 자리를 옮기자 김성한 감독이 KIA타이거즈의 창단 감독으로 지휘봉을 잡는다.

해태타이거즈의 창단멤버이자 7번의 우승을 이끌었던 김성한 감독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타이거즈의 적자였다.

타이거즈 정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김감독은 근성과 패기의 야구를 강조했다.

김성한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오리궁둥이타격자세. 사진=무등일보DB

또 선수시절 '오리궁둥이' 타법을 창안할 만큼 본인만의 타격지론이 확실했던 김감독은 젊은 타자들을 육성시키는 수완도 발휘한다.

당시 김성한 감독은 데이터에 따른 운용보다는 감독이 관찰한 선수의 컨디션이나 직감으로 선수를 기용하는 스타일이었다. 

실제로 절묘한 대타작전들을 여럿 성공시키며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결국 '데이터 야구'를 구사하는 팀들에게 밀리며 2004시즌 성적 부진으로 중도 퇴진한다.


▲ 대행 꼬리표를 뗀 첫 타이거즈 감독 유남호(2005)

2004년 7월 26일자 무등일보 지면.

2004시즌 도중 김성한 감독이 중도퇴진하자 유남호 1군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으로 팀을 이끈다.

유 감독대행은 어수선한 팀분위기를 바로잡으며 후반기 26승 18패의 좋은 성적으로 팀을 4위까지 끌어올리며 준플레이오프까지 이끈다.

이듬해 유감독대행은 어수선한 팀을 4강으로 끌어올린 지도력을 인정받아 정식감독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2005년 개막과 함께 팀은 부진에 빠졌고 유남호 감독은 시즌 도중 스스로 감독직에서 물러난다.

결국 타이거즈는 역사상 처음으로 최하위라는 성적표를 받는다. 뉴스룸=최두리기자 duriduri4@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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