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칠 수 없는 여름꽃, 배롱나무
입력 2002.07.27. 10:43 댓글 0개
담양 명옥헌원림
여름에 갈 만한 곳으로는 계곡이나 바다가 으뜸이겠지만, 꽃구경도 빼놓을 수 없다. 봄꽃들이 언 하늘을 녹이며 핀다면 여름 꽃들은 열기가 지쳐 터지는 모양이라고나 할까. 팔월에 가까워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은 배롱나무꽃이다.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는 잡귀를 막아 준다고해서 권장해 심기도 하였지만, 어떤 지방에서는 귀신나무라고 하여 집안에 두기를 꺼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어떤 의미를 지녔건 간에 폭염 아래의 배롱나무 꽃은 그대로 꽃불이 되는데, 불도 그냥 장작이나 솔잎을 태우는 불이 아니라, 숯이나 백탄이 타는 듯하여 나무 전체가 불덩이고 그을음 하나 없다. 이렇게 진한 배롱나무 꽃을 떠올리면 지나칠 수 없는 곳이 명옥헌이다.
명옥헌이 있는 후산리는 마을의 입구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마을 입구의 작은 연못을 중심으로 수많은 노거수들이 마을이 오랜 터임을 증명하고 있다. 가꾸지 않은 연못에 몸이 빠질 듯이 늘어선 고목들. 매미들이 땡볕을 울어 귀가 쟁쟁하다. 마을 회관도 범상하지 않는데, 무슨 찻집 같은 분위기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양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 길 끝을 보면 마을 전체를 넘보는 듯이 우뚝 선 은행나무가 보인다. 그 은행나무가 ‘인조대왕 계마은행나무’이다. 쉽게 말하면 인조대왕이 말을 매었다는 은행나무이다. 인조가 왕 위에 오르기 전 이곳 후산리에 살고 있었던 오희도를 만나기 위해 온 적이 있었는데, 이 나무는 그 당시 인조가 말을 매었던 곳이라 한다. 가까이서 보면 인간의 생이 얼마나 짧고, 인간의 몸이 얼마나 작은가를 알 수가 있다.
갈림길에서 명옥옥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면, 야트막한 언덕길 너머 명옥헌이 있다. 예전에는 주차 시설이 없어서 불편하였는데, 지금은 예닐곱 대 가량의 차를 세울 수 있는 주차 공간이 설치되어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몇이서 연못 둘레에 앉아 붓질을 하고 있다. 많은 정원을 다녀 보았지만 배롱나무의 휘어져 돌아가는 줄기와 어울리는 정자는 역시 명옥헌이다. 가지 끝의 붉은 꽃과도 궁합이 맞는 정자는 명옥헌이다. 대개의 담양 정자들이 높은 곳에 위치한 반면 명옥헌은 산의 낮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내세우지 않고 드러내지 않는 품격이 있는 곳이다.
이곳을 꾸민 사람은 오희도(1584~1624)의 아들, 오명중(1619~1655)이다. 인조가 반정에 의해 왕 위에 오르자, 오희도는 문과에 급제하여 한림원 기주관이 되었으나 1년만에 천연두를 앓다가 죽고 말았다. 그 후 30여 년이 지난 1652년 무렵에 넷째 아들인 오명중이 아버지가 살던 서재 터에 명옥헌을 지었다. 연못과 배롱나무는 그 때의 것이다.
이대흠 (시인.리장닷컴 편집장 www.rij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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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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