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재미'와 '의미'의 이중주

입력 2019.11.10. 13:38 수정 2019.11.10. 14:20 댓글 0개
김기태 아침시평 호남대 언론학과 교수 / 한국지역언론학회장
김기태 호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재미없는 프로그램, 재미없는 강의, 심지어 재미없는 설교나 설법은 설 자리가 없는 세상이다. 방송 프로그램이나 영상 콘텐츠의 존폐를 좌우하는 시청률도 결국 얼마나 재미있느냐의 여부로 대부분 결정된다. 내용이 얼마나 충실하고 의미있는가는 시청률에 그렇게 크게 반영되지 않는다. 시청자들이나 이용자들의 흥미를 끌어내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을 재미있게 만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보다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흥밋거리 경쟁을 할 수 밖에 없다. 대학에서의 강의도 마찬가지이다. 매 학기말 학생들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교수들의 입장에서 내용이 충실한 강의보다는 재미있는 강의에 더 신경쓰는 경우가 많아졌다. 물론 학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 차원에서 재미있는 교수법을 추구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재미있는 강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주객이 바뀐 것이다. '의미'있는 내용을 '재미'있게 전달해야 하는게 진정한 강의의 목적이지 정작 내용은 없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인 강의는 더 이상 강의가 아니라 오락인데도 말이다.

물론 재미를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의 말초적 감각을 자극하는 쾌감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다. 쾌감의 깊이가 행복감을 느끼는 정도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만큼 사람들이 재미를 추구하는 자연스런 행동을 비난할 일도 아니다. 오히려 지루하고 재미없는 콘텐츠나 강의를 중요성이나 의미라는 명분으로 무조건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는 일은 더이상 용납되지 않는다. 지나치게 경직된 '바른생활' 이미지 보다는 적당히 부드럽고 재미있는 사람을 더 선호하는 세상이 되었다. 극심한 무한경쟁의 정글 속에서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휴식과 여유를 찾기 위한 재미 추구는 자연스럽다. 더 이상 개미와 베짱이의 우화가 통하지 않고 얼마나 잘 놀고 쉴 것인가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 젊은이들 중 연봉액수가 조금 적더라도 충분하게 휴가가 보장되는 직장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고 있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여유와 휴식 그리고 재미와 흥미 등이 오늘날 시대를 관통하는 함의들이다.

문제는 과도한 재미 추구와 지나친 흥미 위주의 사고와 행태에 있다. '재미'와 '의미'는 수레의 두 바퀴처럼 항상 균형을 이루며 동행해야 한다. 오락 프로그램은 유쾌한 재미 속에 무엇인가 의미를 담아 시청자들에게 웃음과 감동을 주어야 하고, 교양 프로그램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있는 메시지를 가능한한 재미있게 포장해서 시청자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편안하게 시청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아무리 의미있는 강의도 재미가 없으면 학생들의 관심과 집중을 끌어 낼 수 없고, 반대로 포복절도할 만큼 시종 재미있고 유쾌한 강의도 그 안에 교수가 전달하고자 하는 중요한 내용 즉, 의미가 담겨있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재미와 의미를 모두 담은 프로그램, 의미있는 내용의 메시지가 충분히 담긴 재미있는 강의, 청중들의 기대와 욕구를 충실하게 담은 의미있는 내용을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전달하는 연설, 심오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으나 시간가는 줄 모르고 집중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쓰여진 책 등이 필요한 세상이다. 재미와 의미의 이중주가 가장 아름다운 연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와 의미의 이중주 만큼 어려운 연주는 없다. 특별한 장치나 노력이 없는 한 재미와 의미가 섞이면 예외없이 재미가 의미를 압도한다. 오죽하면 방송법에 오락은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할 수 없고 교양이나 보도는 일정 비율 이상 편성하라는 기준을 매년 공표하도록 명문화했을까. 모든게 '재미만 있으면 그만'인 세상에서는 좀처럼 진지한 성찰과 조용한 사색의 여유를 찾을 수 없다. 한없이 가볍고, 고성과 괴성으로 시끄럽고, 끝없이 분주하고, 매사 정신이 없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하기 십상이다. 말초적 감각을 건드는 자극적인 표현이나 포장이 없어 건조하고 재미없어 보이나 그 안에 무한한 상상과 심오한 사유를 담은 위대한 책들이 책방에 가면 산처럼 쌓였으나 사람들은 외면한다. 요란한 몸짓과 과장된 소리보다는 차분하면서도 조용하게 인간의 삶과 미래를 진단하고 전망하는 훌륭한 드라마나 영화, 연극이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찾지 않는다. 이미 한없이 가볍고 천박한 재미의 쾌락에 오염되었거나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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