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희들 소매깃 휘감으며 춤추던 정원

입력 2002.07.20. 10:02 댓글 0개
완도 보길도 세연정 동천석실에서 내려와 고산 윤선도의 서재가 있었다는 낙서재(樂書齋)로 발길을 옮긴다. 하지만 현재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다. 울창한 숲 속에 터전만 흐릿하게 남아있어 낙서재의 옛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 보길초등학교 옆에 세연정이 있다. 세연정은 고산 윤선도의 부용동 정원 중에서 원형이 잘 남아 있는 곳이다. 안쪽 부용동 계곡에서부터 흘러내려온 계류를 돌둑으로 막아 ‘세연지’라는 연못을 만들고 다시 그 물을 끌어들여 네모진 인공 연못인 ‘회수담’을 만든 후 두 연못 사이의 인공섬에 정자인 세연정을 세워 주변의 다양한 자연 변화를 누리도록 했다. 연못 속에 크고 작은 바위들이 점점이 드러나 세연지의 자연적인 곡선미와 축대로 둘린 회수담의 인공미가 대비되면서 아주 잘 어울리는 정원이다. 모두 9칸의 단층 정자인데 사방에 마루와 창살문을 두어 안에서 주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고 한 가운데에는 온돌방을 두어 한 겨울에도 지낼 수 있도록 했다. 이곳에서 고산은 남자아이들에게 색동옷을 입혀 배를 띄워 자신이 직접 지은 어부사시가 같은 가사를 부르며 세연지를 돌게 했다고 한다. 또 여러 명의 무희들이 세연정 앞 동, 서대에서 춤을 추게 하였으며 그 몸놀림을 물그림자로 감상했다 한다. 세연지 남쪽 산 중에는 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옥소암이라고 하는데 ‘보길도지’ 기록에 보면 고산은 옥소암에서 무희가 춤을 추게 하였고 그 모습이 세연지로 내리 비치게 하여 그 그림자까지 즐겼다 하니 그의 감각적인 호사가 보통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잠깐 세연정에 올라 그 서대와 동대를 바라다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가야금 뜯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고 무희들이 소매깃을 휘감으며 춤을 추는 듯하다. 잠깐 동안이라도 세연정 난간턱에 고개를 얹고 주변을 관망하노라면 세상사 잊을 만도 하다. 윤선도는 극심한 당쟁의 와중에서 20여년의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내야만 했던 굴곡진 삶을 살았다. 그는 이러한 삶을 이곳 부용동에서 모두 잊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심홍섭(화순군청 문화재 전문위원.소설가.shs2851@hanmail.net)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