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한국 역사 최초의 학생 주도 전국규모 민족운동"

입력 2019.10.31. 17:08 수정 2019.10.31. 19:00 댓글 0개
김성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 의의 등 논해
김성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 학생독립운동의 민족사적 의의를 강조하며 체계적 연구 등 국가적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오세옥기자

3·1운동후 일제 폭압·유화 양면전략
광주학생들 '성진회'중심 민족혼 공부
1928년 항일 격문, 일제 공판 회부
광주고보 동맹휴교 운동
29년 11월3일, 개천절·일왕 생일
광주고보생들 신사참배거부
대대적 가두투쟁으로 항일운동
경상도서 평안도까지 전국학생 참여

오는 3일은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이 되는 날이다.1929년 11월3일,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한 광주학생들이 전개한 항일학생운동은 전국학생운동으로 확산됐고 3·1운동 후 최대 민족 항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국민들의 전 민족적 지지를 받은 학생운동은 한국전쟁 직후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박정희정권 때 폐지됐다가 84년 복원됐으나 전 국민적 기림운동은 부진한 상태다. 90주년을 맞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성 이사장을 광주시 서구 학생독립로 30(화정동)에 위치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체계적 연구 등 국가관심 절실

"광주학생독립운동은 한국 역사상 학생들이 주도한 최초의 전국단위 학생운동으로 이후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줬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큰 사안입니다. 국민들이 함께 기려야 합니다."

김성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의의와 역사적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한다.

김 이사장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의 가장 큰 의의로 세 가지를 든다. 첫째는 학생들이 주도한 최초의 전국운동이라는 점, 둘째는 불의에 항거한 역사적 전통의 시작, 셋째 세계 피압박 민족과 국가들에게 던진 희망이다.

연장선에서 학생운동에 대한 국가차원의 연구와 역사적 자리매김의 중요성을 절절히 호소한다.

가장 아쉬운 점은 국민들에게 학생운동이 왜곡에 가깝게 축소돼 인식되고 있는 점이다. 광주학생들만의 항일운동으로, 그마저도 여학생에 대한 일본학생들의 희롱이 발단이라는 정도 등이다. 역사적 사실과 비춰 왜곡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광주학생운동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꾸준한 항일운동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는 "'성진회'라는 학생공부모임을 중심으로 한민족으로서의 자긍심과 일본 식민화정책에 저항하는 공부가 계속됐다"며 "그 같은 항일운동의 연장에서 1929년 11월3일 신사참배 거부와 일본학생들의 행패에 대한 조직적 저항이 전개된 것"이라고 강조한다.

1919년 3·1 운동후 일제는 유화정책과 보다 간교해진 식민우민화정책을 폈으나 광주 학생들은 굴하지 않았다. 1928년 4월에는 광주와 송정리 등에서 항일 격문을 뿌렸고 일제가 이들 학생들을 체포해 공판에 회부하자 광주고보 학생들이 그해 6월 동맹휴교운동에 들어갔다.

광주학생들의 대거 가두투쟁을 벌인 역사적인 1929년 11월3일은 음력 개천절이었다. 당시 일왕생일로 일제가 기념식과 신사참배를 실시했는데 광주고보 학생들이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 이날 오전 우편국 앞에서 신사 참배를 하고 돌아오던 일본 중학생들과 광주고보 학생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최쌍현이라는 학생이 일인 중학생 단도에 찔렸다. 이소식을 전해들은 광주고보·광주농업학교·광주사범·전남여고 등 지역 학생들이 대대적으로 가두투쟁에 나섰다. 이후 전국민적 지지속에 전국 학생들이 동참하고 해외 국민들까지 성금을 보내는 등 전 민족적 사안으로 급부상했고 이후 한국독립운동 흐름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광주학생독립운동 90주년을 맞아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사업회 김성 이사장을 광주시 서구 학생독립로 30(화정동)에 위치한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만나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의미등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오세옥기자 

◆총독부자료 활용하는 현실 부끄러워

문제는 현대다. 김 이사장은 "1929년 학생 항일독립투쟁은 서울은 물론 경기·경상, 멀리 평안도에 이르기까지 전국 학생들이 가담한 대규모 학생운동인데도 이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아직도 일본 조선총독부자료가 활용되고 있다"며 "독립운동 자료 하나도 우리 것이 없어 일본자료를 활용하고 있으니 일본이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통탄한다. 더구나 총독부자료는 학생운동을 비하하고 있다. 특정지역, 일부의 활동으로 폄훼된 보고서라는 설명이다. 그런실정이다보니 당시로서는 혁명적이었던 '성진회'를 중심으로한 학생운동가들에 대한 연구도 전혀 안돼 있고 참여학생들에 대한 유공자 지정도 거의 안되고 있다.

"기념사업회 활동을 독립운동 하는 심정으로 한다"는 김 이사장의 한탄은 한국사회가 사회적 가치나 미래세대와의 교감에 여전히 준비가 안된 미성숙한 사회라는 단면을 드러낸다.

김 이사장은 "이처럼 역사적 연구나 자리매김이 안되다 보니 국가기념일로 지정해도 전국 행사는 거의 없고 광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며 "한 사회에 역사가 왜 필요하며 중요한가라는 원론적 질문을 지금도 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토로한다.

이같은 현상에 대해 한양대 박찬승 교수는 지난해 세미나 발제문을 통해 전국화를 위해 '11.3 학생운동'이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박 교수는 "학생독립운동에는 전국적으로 약 300여개 학교가 참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나 지역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학생독립운동의 정신을 살리기위해 3·1 운동이나 6·10만세운동처럼 11.3 학생운동이라 명명하자"고 제안했다. 일제하 학생독립운동은 광주라는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1920년대 침체된 조선독립운동이 살아난 기폭제이자 중대한 민족운동이라는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대를 사는 이들의 의무인 것처럼 이같은 역사적 사안들에 대한 자리매김이야말로 시대적 책무"라고 강조한다. 이같은 관점에서도 광주가 특별함이 도드라진다. 일제의 엄혹한 식민정책에도 어린학생들조차 굴하지 않고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공부를 했고 일제의 억압에 분연히 일어났다. 해방 후 박정희 유신정권이 기념일까지 없애버렸지만 기억하고 계승했고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수백년 이어온 호남의 인본

이에 대해 김 이사장은 '근대 400여년의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1929년 학생독립운동은 수백 년의 역사적 연원이 있다는 설명이다. 조선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에서 시작해, 조선말 의병의 60%가 호남백성이라는 점, 3·1 독립운동, 학생독립운동, 4·19 혁명, 5·18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다는 설명이다.

김 이사장은 "수백 년을 면면히 이어온 역사적 바탕이 현대 들어 불의에 항거하는 구국운동, 이웃을 껴안는 공동체 정신, 함께하는 평등사회로 이어지고 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사는 것을 긍지로 여긴다는 것은 우리에게 자랑스런 역사가 있기 때문아니겠느냐"고 강조한다. 조덕진기자 mdeung@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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