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착한 악마의 사랑

입력 2019.10.16. 17:17 수정 2019.10.17. 09:04 댓글 0개
서해현 건강칼럼 서광요양병원장
서해현 서광병원 원장

처제를 살인한 죄로 무기징역 중인 이춘재는 그 외에도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포함해 14건의 살인과 30건 이상의 강간과 강간미수를 자백했다.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인해 유기하는 범행은 잔혹했다. 화성연쇄살인은 치밀하고 냉혹했으며 현장은 참혹했다. 하지만 고향 사람들은 그를 인사도 잘하는 착한 아이로 기억하고 있다. 그의 모친은 "회사 다녔지, 군대 잘 갔다 왔지, 엄마 농사일 도와주지. 절대 믿어지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재판기록에서 이춘재의 본모습이 밝혀진다. 그는 내성적이지만 화가 나면 부모도 말리지 못할 만큼 불같은 성격이었다. 때때로 이성을 잃으면 아들도 심하게 때리고 학대했다. 아내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주먹으로 심하게 구타해서 가출하게 만들기도 했다. 착한 이웃 젊은이가 실상은 악마, 연쇄살인마였던 것이다.

전 남편을 살해했으며 의붓 아들을 죽인 혐의를 받고 있는 고유정도 마찬가지다. 고유정은 대학시절 봉사동아리에서 전 남편을 만나 5년 동안 연애하고 결혼했다. 보육원에서 동아리 활동을 같이 하며 좋은 평판을 얻었으며, 친구들은 고유정이 착하고 밝았으며 둘 사이 관계도 문제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고유정은 함께 세운 계획을 충동적으로 망치고, 조언도 듣지 않으면서 상대를 탓하고 비난하고 폭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그들이 문제없는 관계로 보인 이유는 상대가 포용하고 감수했기 때문이다. 한쪽이 폭력을 행사하고 상대는 폭력을 수용하는 연인관계는 흔하다. 희생정신이 큰 사람은 연인이 폭력적이더라도 포용하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봉사단체나 종교단체이다.

사랑을 가장한 폭력은 악(惡)의 가장 흔한 표현이다. 미국의 정신과의사 스캇 펙(Morgan Scott Peck)이 저서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밝혔다. 악한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부정한다. 자신을 위해 타인을 공격하고 희생시킨다. 자신을 위해 정치적 감성적 권력을 남용한다. 존경 받기를 좋아하고,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한다. 비판받거나 자존심이 훼손되면 참지 못한다. 피해자들의 관점에서 생각하지 못한다. 소수 특정인에 악과 죄를 투사하지만, 나머지 사람들과는 완전히 정상 관계이다. 사랑의 가면을 쓴 미움이다.

악한 이들은 대개 흠 없는 사람 같이 보인다. 그들은 '이미지' '외형상'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단어가 중요하다. 선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선하게 보이려는 욕망은 불같이 강하다. 그들의 '선함'은 모두 가식과 위선이다. 거짓이다. 스캇 펙은 그들을 '거짓의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악한 사람들이 흔히 존재하는 장소가 종교 단체이다. 사찰과 교회의 높은 감투 같이 악을 은폐하기 좋은 것 있을까? 모든 종교인의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이 아니다. 악이 종교의 경건 속으로 들어가 숨는 경향이 있다는 말이다.

'자기 자신 또는 타인의 영적 성장을 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확장하려는 의지.' 스캇 펙이 내린 사랑의 정의이다. 아무리 불같이 뜨겁게 사랑하고 죽음까지 같이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관계가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진짜 사랑이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황홀한 경험을 할지라도 나와 상대의 영적성장을 이룰 수 없다면 가짜 사랑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대개 성적 욕망이고 일시적이다. 누구와 사랑을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격렬한 감정에서 깨어난다.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과 헌신이 필요하다. 그 때부터 진정한 사랑이 시작된다.

폭로되기 전에는 선한 사람과 악한을 구분하기 어렵다. 인간관계에서 폭력 집착 괴롭힘 등이 반복될 때 우리는 악의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명확히 알고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선(善)은 항상 자신의 부족함과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며, 쉽게 무릎 꿇고 반성하고 회심한다. 문제의 해결책을 외부가 아닌 자신에게서 찾는다.

삶은 선과 악 사이의 여정이다. 내 마음 속의 선과 악에서부터, 가정과 사회와 국가 그리고 지구촌에서 마주하는 선과 악까지. 선이 이긴다는 희망이 우리의 정답이다. 선이 이길 수 있다. 사랑으로 악이 정복될 수 있다. 불가능해보이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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