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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방·석아·의재의 삶과 노블리스 오블리주
입력 2019.10.11. 10:11 수정 2019.10.13. 14:23 댓글 0개요즘 무등산 기슭 의재미술관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무등, 시대의 스승을 품다"라는 주제로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에서는 근대 광주사회에서 주역으로 활동했던 오방 최흥종(五放 崔興琮), 석아 최원순(石啞 崔元淳), 의재 허백련(毅齋 許百鍊)의 후손들이 소장해 온 사진과 유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근대 광주 모습 담긴 귀한 자료들
전시물 가운데는 지금은 사라져버린 광주학생운동의 요람인 흥학관(興學館)과 춘설헌(春雪軒)의 원래 모습, 계유구락부(회장 최흥종) 회원들 사진, 서서평 선교사와 최흥종 목사의 사회장(社會葬) 사진 등 희귀한 자료들이 처음 공개되고 있다.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세 사람이 의재미술관 맞은편에 있는 지금의 춘설헌을 두고 각별한 인연을 맺어왔기 때문이다. 맨 먼저 최원순이 요양을 위해 터를 잡고 '석아정'이라고 이름 지었다. 최원순이 타계 후 최흥종이 '오방정'이라하여 기거하였다. '석아정' 현판 뒷면에 허백련이 글자와 그림을 그렸다. 해방 이후 최흥종이 폐결핵 환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원효사 부근으로 옮겨가자 허백련이 이어받아 '춘설헌'이라고 짓고 1977년 타계 때까지 살았다.
세 인물은 각각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었다. 최흥종은 목사로서 광주YMCA 설립을 주도하였고, 1966년 타계할 때까지 나병과 폐결핵 환자를 보살펴와 그들로부터 '아버지'로 불리었다. 최원순은 1919년 일본에서 한국유학생들의 2·8독립선언을 주도힌 뒤 국내에서 계몽강연과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활동하였다.
신병치료 차 의사인 부인 현덕신 여사와 함께 광주로 와서 조선인 지식인들의 모임인 계유구락부 총무를 맡아 활동하다가 1936년 요절하였다. 허백련은 남종화의 대가(大家)로 뿐만 아니라 1930년대에 연진회를 조직하고, 해방 이후에 1970년대까지 농업학교를 운영하면서 가난한 청년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던 교육가이자 사상가였다.
항일운동에도 나섰다. 최흥종은 서울의 3·1운동 현장에 있다가 경찰에 구속되었고, 연해주에서 항일활동을 하다가 추방되었다. 기독교계가 신사참배를 수용하자 이를 거부하고 다섯가지 욕심을 버린다고 하여 호를 '오방'으로 지었다. 최원순은 동아일보 횡설수설란에 '총독정치는 악당보호 정치'라고 썼다가 감옥살이를 했다.
허백련도 인촌 김성수에서 사회주의자인 지운 김철수까지 폭넓게 교유하면서 국가를 걱정하다가 식민지 말기에 일제가 지도층 인사들을 이용하려 하자 '연진회관' 문을 아예 닫아버렸다. 해방 직후 최흥종은 허백련과 함께 각각 교장과 부교장을 맡아 무등산 기슭에 농업학교를 세웠었다. 세 사람의 일대기는 광주 근대사 그 자체이자 노블리스 오블리주(지도자의 도덕적 의무)의 상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전시회를 주관한 광주문화재단은 '춘설헌'을 한국 근대사에서 호남 최대의 '인문학 살롱'이었다고 평가하였다. 주인이 세 번 바뀌었지만 백범 김구, 소정 변관식, 지운 김철수, 다석 유영모, 노산 이은상, 육당 최남선, 미당 서정주, 효당(속명 최범술), 신천 함석헌, 게오르규('25시' 작가), 루이제 린저 등 국내외의 명사들이 이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 상징
광주문화재단은 24일 오후 2시 전통문화관에서 근대 3인의 선각자의 삶과 사회공헌 활동을 재조명하는 세미나와 세 사람의 손자인 최협(광주YMCA 이사장), 최영훈(전 조선대 미술대학장), 허달재(의재문화재단 이사장) 3인의 토크콘서트도 진행 예정이다.
광주의 근대 유적은 100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난개발로 거의 다 사라져 버렸다. 그들 3인과 후손을 통해서나마 광주 근대사회의 장면들을 회억(回憶)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이제 후학들은 그분들을 기억할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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