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한강 지키기

입력 2019.10.07. 18:33 수정 2019.10.07. 18:33 댓글 0개
도철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경제에디터

백제, 고구려, 신라는 물론 세계 각국의 문명도 강에서 부흥한다. 기름진 논밭에서 나는 각종 농산물은 물론 수산물도 그렇고, 육지와 육지를 연결하고 바다 길을 나서는 지름길이도 하다. 또 나라의 경계이고 지역을 나누는 선이 된다.

한강을 가장 먼저 차지한 나라는 온조의 백제였다. 백제는 그러나 475년 고구려 장수왕에게 빼앗긴다. 백제와 고구려가 한강을 두고 치열한 싸움을 하던 551년. 신라의 진흥왕이 백제의 성왕과 공동 작전으로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상류를 차지했고, 백제는 한강 하류를 차지한다. 2년 뒤 동맹을 깬 진흥왕은 백제를 다시 공격해 한강 하류까지 독차지해 버린다. 결국 한강은 당나라에 원군을 요청한 신라의 차지가 됐다.

서울은 북한산을 중심으로 좌청룡 낙산이 동쪽으로 뻗었고, 우백호 인왕산이 서쪽으로 뻗어 있다. 남쪽에는 목멱산이 남주작을 이루고 진산인 북악산이 북현무를 이룬다고 한다. 고려 초부터 풍수지리상 왕도가 될 만한 명당으로 지목돼 온 이유 중에 하나도 이같은 지형에 한강이 있기 때문이다.

한강에서 숨져간 이들이 군인들만은 아니다. 1950년 6월 28일 새벽 서울엔 폭우가 쏟아진다. 깜깜한 어둠을 뚫고 시민들은 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 인도교로 끝없이 몰려들었다. 북한군 탱크는 남침 이틀 만에 미아리 저지선을 넘었다. 서울을 지킨다고 약속한 대통령과 정부는 27일 새벽, 남행 열차를 탔다. 당시 인도교는 한강을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단 하나의 철교였다.

4천 여명의 사람과 차량이 뒤엉켜 한 발짝 떼기도 힘들던 2시 30분 무렵, 천지를 흔드는 굉음과 함께 불기둥이 치솟았다. 인도교가 두 동강 나고 그 위에 있던 사람과 차들이 산산이 흩어지며 시커먼 강물 속으로 떨어졌다. 북한군의 추격을 끊겠다며 우리 군이 TNT 3천600파운드로 인도교를 폭파한 것이다. 정부도 군도 기댈 수 없는 상황에서 살겠다는 일념으로 다리를 건너던 양민 500~800명이 까닭도 모른 채 목숨을 잃었다.

지난달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라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왔다. 예방약은 물론 치료백신도 없어 100% 치사율을 보인다. 양돈업 종사자들과 정부 관계자들은 ASF가 한강을 넘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사투를 벌이고 있다. 한강 이남을 지키지 위한 전쟁 같은 위기에서 이겨주기를 바랄 뿐이다. 도철경제부부장 douls18309@srb.co.kr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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