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기고> 나는 명절이 좋다

입력 2019.09.22. 13:06 수정 2019.09.22. 13:28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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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전남도 법무담당관)

이 집 저 집 도회지에서 온 가족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한가위가 지나고 나니 또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왔다. 1960∼1970년대 정부의 도시화, 공업화 정책으로 농어촌의 유휴 노동력을 도시로 빨아들이며 공장 근로자로 배고픔을 이겨보고자 '도시로 도시로' 탈출한 많은 이들은 고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도시로 내몰렸던 사람들은 달동네를 찾아 헤매었고, 가혹한 노동시간과 저임금에 시달리면서, 툭하면 산업재해를 입고 다치거나 죽는 험난한 시절을 보내야 했고, 굴뚝 높이만한 공동주택이 들어서는 시멘트 건물과 아스팔트, 인정머리 없는 낯선 타향에서 고향을 잃은 근로자들은 오매불망 고향을 그리워했을 터이다.

고향을 그리워 해도 쉽사리 고향을 찾을 수도 없는 건 당연지사. 가진 것 없이 도시로 향한 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었겠는가. 게중에는 보란듯이 성공한 이들도 있으나 대다수는 그런 꿈은 칼 붓세의 '행복'처럼 저 산 너머에 있어 붙잡을 수도 없어 초췌한 모습으로 고향을 찾는 발길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을 떠난 상당수 세대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 또는 제사나 회갑 등이야 말로 고향을 찾을 수 있는 장치가 있어 그토록 오매불망 못 잊고 있었던 고향을 찾을 수 있었으니 여간 반가운 것이 었으리! 고향을 지키고 있는 나 또한 멀리서 마을을 찾아온 귀성객들이 반갑기 그지 없다.

추석이나 설 명절에 전 주민의 절반이상인 이천만 명의 민족 대이동은 다른 나라에선 이해할 수 없는 장관인 셈이다. 명목이 조상들에게 지내는 제사라지만 살아있는 가족들이 다시 모이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 어느 서양 종교를 믿는 이들은 추석이나 설 명절 등 장기간 휴일에 외국여행을 가기도 하고, 제사를 대행하는 곳에 음식을 시켜 명절을 쇠기도 한다는 데, 여하간 명절은 흩어졌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즐거워 하는 일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명절이나 제사를 치르면서 상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노고와 비용, 땀 흘리는 수고로움으로 다들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일부는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들도 많지만 때로는 명절 때 부담과 고생 때문에 갈등이 생기거나 가족이 해체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안타까운 일도 없지 않다.

여하간, 추석 명절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 왔다. 많은 이들에겐 고향을 찾은 것만으로도 마음이 훈훈했을 터, 어떤 이들은 차라리 고향을 찾지 않고, 도시에 남아 있는 게 나았을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가족간 만남이라도 괜히 만나 낯을 붉히는 일도 없고, 명절 증후군 같은 것도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과 제사가 좋은 것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고, 가족간, 친척간, 친구끼리 웃음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머나 먼 길 오가면서 힘들고, 짜증나더라도 고향을 찾을 때나 명절을 쇠고 고향을 떠나 생활터전으로 다시 돌아 가더라도 마음만은 넉넉하고, 훈훈하기에!

그리고, 고향을 찾았던 이들이 고향을 떠나는 날엔 바리바리 고향의 정을 담은 크고 작은 보따리를 챙기면서 다가올 다음 명절을 새록새록 기다리는 마음이 이쁘지 아니한가. 그래서 나는 명절이 좋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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