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주민과 함께 수백 년 희로애락을

입력 2019.09.17. 15:09 댓글 0개
기관에서 쌓고 가꾼 제방과 숲 ‘담양 관방제림’
담양 관방제림은 오랜 기간 마을 주민과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해 왔다. 

담양 관방제림이다. 한때 ‘관방천’으로 불렸던 담양천의 제방을 이룬 숲이다. 푸조나무와 팽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강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고, 풍광을 돋보이게 하는 풍치림이다. 원형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나무도 신묘하지만, 하나같이 수백 년을 살았다. 격이 다른 나무이고 숲이다. 숲이 천연기념물 제366호로 지정돼 있다. 관방제림은 담양읍 남산리에서 수북면 황금리를 거쳐 대전면 강의리까지 이어진다. 자그마치 15리에 이른다. 담양읍내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산림청이 주최한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숲은 마을 어르신들의 피서지다. 나무평상에 모여앉아 저마다 장기를 두거나 이야기꽃을 피운다.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숲은 한때 마을축제나 체육행사의 장소로도 쓰였다. 늘 마을주민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해왔다. 마을숲이다. 숲을 거닐던 젊은 연인들이 빈자리에 앉아서 쉬었다 간다. 여행객들의 더위도 식혀주는 천연의 숲이다. 

풍광도 사철 아름답다. 봄엔 신록으로, 가을이면 낙엽으로 여행객을 불러들인다. 겨울에는 적막감마저 감도는 호젓함으로 유혹한다.

호젓한 관방제림

물길 잡으려 제방 쌓고 나무 심어

관방제림은 조선 중기 1648년(인조 26년) 담양부사 성이성(1595∼1664)에 의해 처음 쌓인 것으로 전해진다. 성이성은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실제 주인공이라는 얘기가 있다. 남원부사로 부임한 아버지(성한의)를 따라와서 춘향을 만났다는 것이다. 그의 행적을 적은 일지를 토대로 한 주장이다. 성이성은 나중에 청백리(淸白吏)에 선정됐다.

성이성이 관방천에 제방을 쌓은 이유는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서였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홍수로 천변에 사는 주민들의 피해가 컸다. 이 일대가 영산강의 상류다. 홍수피해를 막으려면 물길을 다스려야 했다. 제방을 쌓았다. 제방을 보호할 목적으로 나무도 심었다. 

성이성에 이어 1854년(철종 5년) 부사 황종림이 관비(官費), 즉 예산을 들여 제방을 더욱 탄탄하게 쌓았다. 연인원 3만여 명이 동원됐다. 뒤를 이어 부임한 부사들도 숲을 관리하는데 정성을 쏟았다. ‘관방제(官防堤)’라 이름 붙은 이유다. 관에서 쌓은 제방이다. 그 제방의 숲이 관방제림이다.

당시 나무를 700여 그루 심었다. 지금은 푸조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등 15종 300여 그루가 남아있다. 나무의 몸집이 크다. 두 팔을 다 벌려도 손끝이 닿지 않는다. 경사진 제방에 내린 뿌리도 튼실하다. 그동안 수많은 태풍과 홍수를 버텨내고 건재한 이유다. 시간이 흐르면서 숲의 아름다움도 더해지고 있다.

“옛날에는 여그가 놀이터였어. 우리집 마당이고, 쉼터였지. 그때는 그냥 방죽이었어. 그늘이 넓어서 놀기에 딱 좋았지. 언제부턴가 ‘이 길이 멋지다’고 외지사람들이 찾아오더라고. 그 얘기를 듣고 다시 보니 진짜 멋있더만. 보면 볼수록 이쁘고 귀해. 그때는 몰랐는디, 보물이더랑께.”

나무평상에서 쉬고 있던 마을 어르신의 얘기다. 숲바람을 쐬던 어르신은 사계절 좋은 곳이고, 영화를 찍으러 오는 사람도 많다며 관방제림 자랑을 이어간다. 

댓잎국수

시장 사람들 끼니 해결해 준 국수

그늘진 숲길을 따라 슬겅슬겅 걷는다. 볼에 와 닿는 산들바람이 선선하다. 운치도 있다. 군데군데 나무의자와 정자도 있어 더 좋다. 나뭇가지 사이로 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윗옷이 가붓가붓 흩날린다.

추성경기장도 강변에 자리하고 있다. 관방제를 쌓으면서 생긴 빈터를 경기장으로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였다. 제방 한쪽에 담빛예술창고도 보인다. 미곡을 보관하던 남송창고였다. 한때 방치됐던 창고를 전시실과 카페로 꾸몄다.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들을 수 있다. 관방제림을 따라 조금 더 가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과 만난다. 하늘로 쭉쭉 뻗은 나무가 숲터널을 이루고 있다. 모두 1970년대에 심어진 나무다. 

오래 전, 천변에는 향교와 객사, 관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죽물시장과 우시장도 있었다. 잔칫날이면 놀이패가 자리를 잡고, 씨름판도 벌어졌다. 시장을 찾아 외지에서 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시장을 찾은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해준 음식이 국수였다. 국수의 거리가 관방제림과 이어져 있다. 

관방제림 건너에 죽녹원도 있다. 죽녹원 후문으로 쓰이는 시가문화촌도 호젓하다.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 광풍각 등 담양의 누정을 축소해 만들어 놓았다. 여기저기 발품 팔지 않고도 여러 누정의 분위기를 다 만난다.

죽녹원과 경계를 이룬 서원마을의 골목벽화도 별나다. 담벼락의 지형과 지물을 그대로 활용해 벽화를 그렸다. 숨은 그림 찾기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죽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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