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이타미 준'을 그리며 사랑을 묻다

입력 2019.09.16. 11:19 수정 2019.09.16. 18:50 댓글 0개
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건축가로는 세계 최초로 세계적 동양박물관 프랑스 국립 기메 박물관에서 개인전(2003)을 갖고, 프랑스 예술훈장 슈발리에와 레지옹도뇌르 훈장(2005), 김수근 건축상(2006),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2008), 일본 최고의 건축상 무라노 도고상(2010)을 수상한 건축가.

이에앞서 이조 민화(1975), 이조의 건축(1981), 조선의 건축과 문화(1983년), 한국의 공간(1985년) 등을 펴낸 건축가.

건축가 이타미 준, 유동룡(庾東龍). 일본서 태어나 그곳서 생을 마친 한국인이다.

대중에게는 제주 핀크스골프클럽, 포도호텔, 수·풍·석 미술관, 두손미술관, 방주교회 건축가로 친숙하다. 제주 여행객들이 반드시 들르는 핫 플레이스 중 하나다. 그의 작품들은 빼어난 자태로 도드라져 보이거나, 현란한 기법으로 사람의 혼을 빼놓는 여타의 건축물과 결을 달리한다. 자연에 스며들 듯, 어머니 품에 안기듯, 그렇게 본디 그자리에 있었던 듯한 자태로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그의 본명은 유동룡이다. 그 이름으로 대학까지 졸업했다. 열손가락 지문 날인을 해가며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한국 국적을 버리지 않았다. 대학졸업 후 그의 성씨 유(庾)자가 일본에서 쓰이지 않는 한자라 본명을 사용할 수 없어 필명을 만들었다. 이타미 준은 오사카의 이타미(伊丹) 공항 이름과 친분이 있던 작곡가 길옥윤의 일본식 이름 요시아 준에서 따왔다.

대학 졸업 후 사무실을 열었으나 한국인 이타미준에게 건축을 의뢰하는 일본인은 없었다. 어머니 집은 그렇게 그의 첫 작품이 됐다.

일본 건축계는 기메박물관 전시로 그가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이후에야 일본건축가협회 정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일본 건축계 최고 명예인 무라노 도고상은 그의 임종 1년 전인 2010년 주어졌다.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 수상자를 몇 명씩 배출한 일본 건축계지만 한국인 이타미준을 인정하는데는 그토록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한국사회는 어땠을까. 차별과 배제를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그는 한국에서도 이방인이었다. 1982년 선보인 온양미술관은 온양 흙을 사용하고, 한옥을 모티브로 삼은 그의 첫 한국작품이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

그리운 고국에 첫 작품을 선보이는 마음은 얼마나 설레겠으며 정성이야 오죽했겠는가. 허나 그 마음 갈 곳 없이 '왜색'논란에 휩쓸렸다..

그는 조선 민화와 달항아리, 한국 고건축의 아름다움에 매료됐고 자랑스러워했다. 민화와 조선의 건축에 관한 책을 펴낼 정도였으니.

저들의 계산된 사랑을 뛰어넘어, 한국과 일본이라는 세속의 경계를 건너 세계인으로 날아 오른 예술가.

가을 초입 달 밝은 밤에 바람과 하늘과 나무들을 대하니 '물(物)'자체에 천착했던 이타미 준이 아련하다. 창창한 달빛이 '땅의 지형과 바람과 돌'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한 예술가의 치열한 넉넉함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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