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삭발

입력 2019.09.15. 17:43 수정 2019.09.15. 17:43 댓글 0개

오래전 일이지만 필자는 평생 3차례에 걸쳐 삭발을 했다.

첫번째는 70년대에 중·고교를 다닌 덕분이었다. 그 시기 남학생들은 중학교에 입학하면 머리부터 삭발에 가깝게 잘라야 했다. 그리고 일제 잔재물이라 할 제복에 다름없는 검정 교복을 입고 학창시절을 보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던 유신독재가 어린 학생들의 외양과 복장까지 옭아맨 시절이었다.

두번째 삭발은 고교 졸업 무렵이었다. 지긋지긋한 민머리 신세를 벗어나려고 졸업도 하기 전에 학교가 정한 규정 이상으로 머리를 길렀더니 학생주임이 여지없이 바리깡이라는 기계로 머리 한가운데를 밀어버렸다. 필자는 그에 대한 항의 표시랍시고 아예 머리를 박박 밀어버렸다.

세번째 삭발은 군 입대와 관련해서였다. 정상적인 대한민국 남자가 수행해야 할 4대 국민의무 가운데 으뜸인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입영 날짜가 적힌 입대 통지서를 받고서 긴 머리를 다시 깎았던 기억이 지금도 선하다. 옛 추억이지만 필자의 삭발은 자의 보다는 타의에 의한 것이었다.

한가위를 앞두고 여성 국회의원 2명이 국회 앞에서 삭발을 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한데 대한 강력한 항의 표시의 일환이었단다.

한 의원은 그의 삭발을 비판한 이들을 향해 "'쇼'라고 비웃는 구태 정치인들을 전부 다 쓸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독설을 날렸다는 후문도 들린다.

이들의 삭발 소식보다 박지원 의원(변화와 희망의 대안정치연대)의 일침이 더 세간의 관심을 끈다.

박 의원은 '국회의원이 하지말아야 할 3대쇼'로 의원직 사퇴, 삭발, 단식을 꼽았다. 그가 이들 세가지를 전형적인 '쇼'라고 분석한데는 나름 이유가 있었다.

'의원직을 사퇴하겠다'던 의원 치고 정말로 사퇴한 의원이 역사적으로 단 한명도 없었다는게 그 하나다. 머리 또한 삭발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기 때문에 헛된 위협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단식을 하다가 굶어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 적이 없다. 박 의원의 견해는 그런 행위들을 꼬집는 풍자일 터다. 나름 절박했다는 그들의 심정에도 불구하고 그 행위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영태주필 kytmd8617@srb.co.kr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