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기고>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없다

입력 2019.08.27. 13:17 수정 2019.09.15. 14:47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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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한국은행 광주전남본부장

19세기 말 미국에서 술 한 잔을 시키면 점심을 덤으로 주는 식당이 붐을 이루었다. 공짜 점심에 현혹된 사람들은 술 한 잔만 먹으러 식당에 갔다가 대낮부터 폭음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급기야 알코올 중독자가 크게 늘자 뉴욕 주는 공짜점심 처벌법까지 만들게 된다. 공짜가 덮친 불행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노벨 경제학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해 유명세를 탄 말이다.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즉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뜻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새로운 금융상품이 쏟아지며 투자자들을 유혹한다. 금융상품 설계자들은 최신 금융공학 기법과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별로 '위험하지 않은 고수익상품'을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아무리 최신기법의 금융상품이라도 '공짜 점심은 없다'는 원칙은 항상 적용된다.

최근 국내 금융기관이 판매한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증권(DLS : Derivatives Linked Securities)에서 대규모 원금손실이 발생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될 조짐이다. 예를 들어 지난해 7월 모 기금이 투자(금년 7월 만기도래)한 독일금리 연계 DLS의 경우 원금 80% 이상의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대체 어떤 상품 이길래 손실규모가 이렇게 컸는지 간단히 살펴보자. 대규모 손실이 발생한 해외금리 연계 DLS는 해외금리가 일정 수준 이상(knock-in barrier)이면 높은 수익률(연 3~5%)을 보장한다. 그러나 이를 하회할 경우 그 정도에 비례하여 원금 손실 폭이 확대되도록 설계되어 있다. 아하~~! 오랫동안 외환보유액 운용경험이 있는 필자의 식견으로 보건데 전형적으로 '공짜점심'을 가장한 '위험상품'이다.

우선, 필자가 왜 '공짜점심으로 가장'했다고 확신하는지 살펴보자. 은행 정기예금 금리가 2%도 안되는 상황에서 해외금리 DLS가 제시한 3~5%의 수익률은 엄청난 유혹이다. 다만 해외금리가 일정수준 이상일 때에만 고수익이 적용된다는 조건(고수익 파생상품에는 대체로 조건, 즉 '옵션'이 붙어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이 문제인데, 이 조건도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전술한 독일금리 연계형 DLS가 제시한 조건(1년후 독일국채 장기물이 -0.2% 이상일 것)은 계약당시 금리수준(2018.7월말 독일 10년물 금리는 0.44%)을 감안할 때 조건을 충족하기가 별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즉 확률적으로 손실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여 일반인의 시각에서 보면 '공짜점심'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왜 필자는 공짜처럼 보이는 이 상품을 '위험상품'으로 판단하는가? 바로 조건에 붙어 있는 '1년 후'라는 만기가 일반 투자자가 쉽게 빠지기 쉬운 함정이요 리스크 덩어리인 점이다. 다소 어려워 보이지만 파생상품을 이용해 고수익상품을 설계할 때에는 대부분 '옵션에 내재된 시간가치(time value)'를 이용하여 투자자를 현혹하게 된다. 즉 금리, 주가 등 금융상품은 예측이 대단히 어려운 점, 특히 1년 후처럼 예측기한이 길수록 현재수준보다 동떨어진 수준으로 폭락(혹은 폭등)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우리는 글로벌 경제의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에 살고 있다. 당분간 저금리 등으로 투자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고, 투자자들은 고수익 금융상품에 대한 유혹에 현혹되기 쉽다는 뜻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고수익 상품에 대한 투자권유를 받았을 때에는 반드시 공짜처럼 보이는 점심에 내재된 위험을 냉정하게 평가하라. 특히 고수익 금융상품은 대부분 일반인들은 위험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 파생상품이 활용되는 점을 명심하여 전문가와 상담하기를 권한다.

단언컨대 이윤을 추구하는 야생의 금융시장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없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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