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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의 공포에 디플레 우려까지' 분양가상한제 '첩첩산중'

입력 2019.09.06. 10:52 댓글 2개
지난달 소비자 물가, 1965년 통계작성 이후 54년만에 마이너스
한국경제, 일본형 디플레이션 경고하는 우려도 일각에서 제기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내달 제대로 시행될 수 있을 지 미지수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박선호 차관과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2019.08.23. jc432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영환 기자 = 한·일 갈등, 미·중 관세 분쟁 등 초대형 악재에 더해 사상 초유의 디플레이션(디플레) 공포까지 엄습하는 등 한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이 빠른 속도로 악화하면서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가 첫발을 뗄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6일 통계청,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8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1로 지난해 같은기간(104.85) 보다 0.04% 하락했다. 국내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지난해 같은기간 대비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는 지난 1965년 통계 작성 이후 54년만에 처음이다.

소비자 물가가 이상 조짐을 보이면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주요 책무로 하는 한국은행과 경제 사령탑인 기획재정부다. 한국경제가 선진국병에 비유되는 일본형 '디플레이션'에 빠져드는 전조가 아니냐는 진단이 일각에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도 이러한 ‘이상 조짐’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다음 달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시행시기를 놓고 힘겨루기를 거듭해온 기재부에 자칫 시행을 늦출 명분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재부는 상한제가 건설투자의 발목을 잡아 가뜩이나 침체한 한국경제를 위축시킬 뇌관이 될 가능성을 우려한다. 반면 국토부는 재건축 아파트 단지를 집값 불안을 전파하는 전초기지로 보고, 이러한 불안을 잡아야 주거 안정과 더불어 지속가능한 성장도 담보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물가가 전반적인 품목에 걸쳐 꾸준히 하락하는 현상인 디플레가 상한제 시행의 변수로 등장한 데는 그 파괴적 속성 탓이 크다. 디플레는 지난 1980년대 욱일승천하던 기세의 일본 경제를 망가뜨린 원흉으로 꼽힌다. 미국, 유럽연합(EU) 등도 위협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2000년대 초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정부에 이어 2기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 출범 이후 채권을 사들여 막대한 엔화를 푸는 '양적완화'를 시행하며 이 거대한 괴물(디플레)과 사투를 벌여왔지만, 여전히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공공기관 워크숍'에 참석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원숙연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위원, 홍 부총리. 2019.09.04. dadazon@newsis.com

디플레가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배경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 대개 국내총생산(GDP) 대비 70%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소비의 발목을 잡기 때문이다.

물건이나 서비스 값이 꾸준히 하락한다면 굳이 현시점에서 이들 상품을 구입할 동인이 현저히 약해진다. 소비를 뒤로 늦추면 기업도 설비투자를 늘릴 유인을 찾기 힘들어져 경제성장률이 꾸준히 하락한다.

1990년대 초 버블 붕괴로 흔들린 일본은 소비위축, 설비투자 감소, 성장률 하락의 악순환에 갇혀 있다. 생산가능인구 감소도 이러한 추이에 기름을 부었다.

물론 한은이나 기재부는 디플레 가능성을 일축한다. 지난달 물가 하락은 신선 식품 등 일부 항목이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비자물가 구성 품목들이 전반적으로, 지속적으로 하락한다는 디플레의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기류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설사 그 가능성을 인지했다고 해도 디플레의 디자도 꺼내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한은이나 기재부가 디플레를 언급하는 순간, 자칫 ‘기대 인플레이션’을 더 떨어뜨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디플레 가능성이 꾸준히 거론되는 배경으로는 ▲노령화 속도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빠른 데다 ▲올 들어 과거와 차원이 다른 대내외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며 수출이 급락하고 ▲미국에서 경기침체의 공포가 커지고 있으며 ▲쿠팡 등 온라인 매장들이 주도하는 가격 파괴 전쟁도 치열하기 때문이다.

디플레의 원인은 미 연준도 아직 뚜렷히 밝히지는 못하고 있다. 생산성 정체와 이른바 '아마존 효과' 등에 따른 가격안정 등을 그 배경으로 꼽는다. 경제는 좋은 데 생산성이 제자리걸음을 걸으며 급여 인상 폭이 크지 않은 데다, 아마존이 가격경쟁을 주도하며 물가상승을 억제하고 있다는 것아다.

【서울=뉴시스】김병문 기자 = 2일 한국감정원이 발표한 8월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8월12일 기준 서울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전월(7월16일) 대비 0.14% 상승해 오름폭이 2배로 커졌다. 감정원은 "8월12일 분양가상한제 시행 예고 영향으로 재건축단지는 대체로 보합내지 하락했으나 역세권 대단지 위주로 상승했다"고 설명했다.서울 전셋값도 10개월 만에 오름세를 보이며 매매·전세 동반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다. 사진은 이날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일대의 한 공인중개소 모습. 2019.09.02. dadazon@newsis.com

한국경제가 디플레의 입구에 들어섰는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기재부의 행보는 살얼음판을 걷듯 한층 조심스러워질 전망이다.

한국경제의 기초 체력이 떨어진 가운데 초대형 악재들이 꼬리를 물고, 여기에 소비자물가까지 떨어지자 저성장과 디플레로 잃어버린 20년 세월을 지나온 일본의 전철을 밟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미국경제가 초장기 호황의 막을 내리고 있다는 신호들이 점차 뚜렷해지고 있는 점도 부담거리다.

이에 따라 10월 분양가 상한제 시행에는 9월 소비자 물가도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소비자 물가가 두 달 연속 하락한다면 디플레 가능성을 허무맹랑한 시나리오로 치부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이너스 소비자 물가의 한축을 차지한 국제 유가도 경기침체를 뜻하는 'R'의 공포가 커지면 더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앞서 지난 1일 KBS 1TV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10월에 주택법 시행령이 발효된다고 해서 바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며 "작동 시기는 국토부가 독자적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니고 제가 주재하는 관계장관회의에서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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