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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이 만난 사람] 범은경 '물쉬똥'에 속지 말자

입력 2019.09.03. 16:01 댓글 0개
아기잠 전문가, 소아과 전문의, 범은경 원장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 중 하나가 아이 낳아 키우는 일이라지만 이중에서도 재우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잠은 보약’이라는데 좀처럼 자지 않으려는 아이와 어떡해서든 푹 재우려는 양육자간 힘겨루기(?)에서 먼저 지치는 건 어른들이다.

어떻게 하면 잘 재울 수 있을까? 잘 잔다는 건 어떻게 자는 것일까? 왜 잘 자야할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아기 잠 전문가’를 찾아 나섰다.

범은경 원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로 국내 최초 수면전문가로 꼽힌다.

의과대학 시절엔 내과학 교과서를 손수 번역해 만든 노트가 후배들에게 ‘모범전서’로 전수되는 등 레전드로 불리기도 했다. 광주중앙아동병원에서 오랫동안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하며 지역 엄마아빠들 사이에선 꽤나 인기 좋은 의사로 꼽히기도 했다.

특히 ‘잠’ 분야에 전문가로서 2013년 <아기랑 엄마랑 밤마다 푹자는 수면습관>에 이어 2016년 <육아상담소 수면교육>이라는 관련 서적도 출판했다.

첫 책은 수면습관 체크리스트, 수면일지 쓰는 법, 우리 아이만을 위한 동화책 만들기 등 실생활 적용이 가능한 콘텐츠를 더해 유용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덕분에 중국에까지 수출되는 등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범 원장은 또 지난해 배우 소유진이 출간한 ‘소유진의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의 감수를 맡기도 했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신체적, 정서적, 인지적 측면에서의 안정감은 매우 중요한데 이를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잠이에요.

더욱이 아이들이 잘 자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양육자의 신체적, 정신적, 인지적 건강 정도가 결정되요. 즉 아이의 수면의 질이 곧 양육자의 삶의 질과 연관된다는 의미죠.

실제 국내 한 연구결과 수면 문제가 있는 아이의 부모를 조사한 적이 있는데 부부관계와 상관이 있다는 결론이 도출됐어요. 자녀의 잠자는 습관이 비단 아이들의 건강 뿐 아니라 부부관계, 나아가 가족 구성원 전체의 삶의 질과 연결된다는 결론이죠.

‘아이는 잘 자는 방법을 알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기본 명제를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해요. 양육자의 행동과 태도에 따라 어떤 수면 습관이 길러지는지 달라지는 의미이기도 하죠.

‘우리아이는 예민해요’, ‘손을 많이 타요’라고 말하는 양육자들은 자신을 되돌아봐야 해요. 모두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습관이거든요.

잘 자는 법을 모르고 태어난 아이는 몸을 비틀면서, 끙끙 소리를 내면서, 울면서, 보채면서 스스로 자는 법을 배워요. 그런데 양육자가 그 순간을 기다려주지 못하면서 문제가 생기죠.

일반적으로 수면 습관은 생후 6~8주부터 시작합니다. 품에서 자는 습관을 들이지 않기 위해 완전히 잠들지 않았을 때 바닥에 눕히고 토닥거려 주세요. 칭얼거리더라도 스스로 잠들 수 있게요.

4~6개월부터는 밤에 통잠을 자야해요. 이를 위해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해요. ‘해가 뜨면 일어나고, 어두워지면 깊게 자야한다’는 느낌을 배울 수 있도록 생체시계를 맞춰주는 것이죠.

돌 때쯤부터는 ‘자는 건 재미없는 일’이라는 개념이 생깁니다. 그간 잘 잤던 아이들도 첫 돌을 기점으로 잠을 이기려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죠. 당황해하지 마세요. ‘왜 자야 하는지’,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야하는지’ 반복적으로 이야기 해주세요.

잠꾀가 생기는 두 돌부터 수면은 습관들이기가 아닙니다. 교육이자 훈육입니다. 양육자 모두 권위를 가지고적어도 수면문제 만큼은 엄격해야 합니다.

흔히들 요맘때 아이들은 ‘물 마실래’, ‘쉬 할래’, ‘응아 마려워’ 이른바 ‘물쉬똥’ 권법을 씁니다. 사실 안자고 더 놀고 싶다는 의미죠. 이때 양육자가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요구를 들어주다보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졸린데 잠들지 않았으니 피곤해지고, 짜증나고 더 잠들기 힘들어지는 것이지요.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련 연구 등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국내에서는 관련 개념이 생기기 시작한건 10여년에 불과하죠. 그렇다보니 아직도 아이 수면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요. 실제로 병원을 내원하는 아이들 중에서는 수면 습관만 개선하면 해결될 문제를 가진 이들이 적지 않아요. 그럴때마다 가르쳐줬던 방법이 바로 ‘시간표 짜기’입니다. 아이가 일어나서 다시 잠드는 것까지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 등 모든 정보를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이죠.

수면교육의 대가로 꼽히는 미국의 소아과 전문의 리차드 퍼버 역시 ‘엄마의 훈육방법과 아이의 시간표만 달리해준다면 수면 교육은 달라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태어날 때부터 수면 문제를 가지고 태어나는 아이는 없습니다. 기질적으로 까다로운게 아니라, 양육자에 의해 잘못된 수면 문제를 가지된 것 뿐 이지요.

내 아이를 잘 자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면 아빠와 함께 잠들게 하세요. 아이들이 갖는 대표적인 수면 문제는 모유 또는 우유, 쪽쪽이를 물고 자려는 경우입니다. 엄마의 냄새 또는 형태가 있어야만 잠에 드는 아이들에게 엄마와 함께 자는 건 매우 힘든 문제입니다. 이럴 땐 엄마는 빠져 주세요. 배수진을 치는 거죠. 아빠와 함께 잠듦으로서 엄마에게 의지하는 모든 것들을 포기하게 만드는거죠. 적응하는 초기 1~2주만 고생하면 가족 모두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범은경 원장은 현재 광주보건대학교 1인창조기업센터에서 ‘아기잠연수고-알잠(알기쉬운잠)’을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사이트에서는 무료 상담은 물론 아기잠과 관련된 다양한 글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네이버 카페, 포스트를 통해서도 양육자들과 소통하고 있으며, 매일유업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범 원장에게 궁금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아이 잠 문제로 고민인 양육자라면 꼭 문 두드려 보자.

출산 경험 여성 10명 중 3명은 ‘우울증으로 죽음까지 생각해봤다’고 응답한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이중 2%는 실제 자살을 기도하기도 한다. 이들이 말하는 산후우울증을 악화시키는 주요 요인은 바로 ‘도무지 아이 키우는 방법을 모르겠다’ 이다.

핵가족 시대가 고착화되면서 육아 비법을 전수받을 방법은 없지, 인터넷엔 아주 헷갈리는 정보만 넘쳐나지. 아이를 낳기만 하면 뿜어져 나오는 모성애로 모든 걸 인내할 수 있을지 알았지만 녹록치 않은 현실의 벽에 좌절하기 일쑤다. 괜한 자책감만 든다.

범은경 원장은 “육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온 사회가 함께 키워야 하는 것이 바로 아이”라고 주장했다.

합계출산율(0.98명)이 1명도 안 되는 유일한 OECD 회원국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광주 만들기’ 구호가 메아리 없는 아우성으로 남지 않으려면 출산과 육아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온 마을이, 온 도시가 함께 대응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고 범 원 장을 힘주어 말했다.

뉴스룸=주현정기자 doit85@srb.co.kr·김경인기자 kyeongja@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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