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우리 안의 '친일(親日)' 프락치

입력 2019.08.25. 18:19 수정 2019.08.25. 18:19 댓글 0개
김영태의 약수터 무등일보 주필

'프락치(fraktsiya)'는 원래 러시아산(産) 용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세력을 확장한 공산당이 내부 숙청 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특수한 사명을 띠고 어떤 조직이나 분야에 들어가 본래의 신분을 속이고 몰래 활동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끄나풀', '첩자', '간첩'을 의미한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던 군사 독재 정권 시절에 프락치라는 용어가 횡행했다. 이 시기 프락치들은 정권에 항거하는 학원, 노동계, 시민사회단체, 종교계에 침투해 그 내부의 대항정영들의 이념이나 성향, 활동상을 파악해 보고하고, 때론 회유하는 일에 앞장섰다.

김영삼 정권 때도 생명력을 이어갔다. 학원가의 동향, 수배 학생과 관련한 정보를 얻기 위해 동료 학생들을 돈이나 향응으로 매수하는 이른바 '학원 프락치'활동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민정부라 자칭할만큼 민주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에도 독재시대의 음침한 그늘이 질기게 잔류했던 셈이다.

이보다 훨씬 앞서 일제강점기를 막 벗어난 조국이 남북으로 갈라서 극심한 혼란 상태에서 국회 프락치 사건이 있었다. 1949년 5월부터 8월까지 소장파 현역 의원 10여명이 남조선노동당의 프락치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붙잡혀 기소당했다. 이들 의원들은 이승만 정부가 반민족행위자 처벌, 남북의 자주적 평화통일 등에 소극적이거나 외면하는 태도를 보인다며 강하게 비판해오던 터였다. 미·소 양군의 철수를 요구하고 미 군사고문단 설치도 반대했던 이들의 활동은 이승만 정권의 근간을 흔들만큼 위협적이었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경제 전쟁을 도발한지 한달이 훨씬 넘었다. 그들의 부조(父祖)가 일제강점기 자행했던 위안부, 강제징용 등의 과거사에 대해 참회나 사과는 커녕, 다시 그 후예들이 후안무치한 발언과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 상황에 심각한 것은 우리 안의 '친일(親日)' 프락치들이다. 그들을 대변하고 옹호함을 넘어 일제가 우리의 근대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궤변까지 서슴지 않는다.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국민임을 의심케 하는 언설과 행위 등으로 친일의 전위를 자처하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도저히 그럴 수 없다. 광복 후 친일청산을 하지 못했던 나라에서 예나 지금이나 친일 프락치들의 준동은 여전하다. 김영태 주필 kytmd8617@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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