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8월의 추억

입력 2019.08.20. 16:47 수정 2019.08.22. 12:20 댓글 0개
주종대 건강칼럼 밝은안과21병원 원장

매미 울음소리가 가득한 늦은 8월이다. 습하고 무더운 8월의 여름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그래도 밖에서 활동하거나 집에 있기에 악몽 같던 작년 여름에 비하면 한결 낫다. 그런데 나는 지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에어컨이 하루 종일 뿜어대는 영화관, 백화점, 대형 서점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8월 말로 가까워질수록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치 바람 소리와 매미소리 가득한 여름날의 자연 음악회에 초대받아 온 것 같다. 가만히 음악을 들으며 짙은 녹음이 싸인 동산과 마주하니, 과거 무더웠던 8월의 어느 날이 생각났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방 안이 더워 하숙집 2층 테라스에 야외 침대를 펼쳐놓고 모기에 물려가며 잠을 청했다. 발아래 놓인 고물 선풍기만 덜컹대는 고요한 새벽이었다. 나는 무언가 목을 조르는 악몽을 꾸었다. 그리고 내 귓가에 "일어나서 빨리 짐을 싸. 집으로 가거라"라는 소리를 듣게 됐다.

오싹하고 섬뜩함에 비몽사몽 눈을 떴다. 눈을 뜨자마자 무서움을 잊게 만든 것은 여름 새벽 풍경이었다. 주변에는 온 천하를 흔드는 매미 소리가 들리고 하늘 위에는 밝고 맑은 달빛이 내 시야를 감쌌다. 달빛으로 젖은 우리 동네는 무척이나 몽환적이었다. 보름달이 품은 달빛이 점점 밝아지면서 그 빛이 만들어 내는 따스함과 신비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소스라치게 이상한 악몽은 쉽사리 잊히지 않았다. 나는 누군가 꿈속에서 나를 깨우는 외침을 들었고 그날 나 자신을 보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학 입시를 불과 4개월 앞둔 나는 학교 근처에 하숙집을 얻어 공부를 했다. 5월부터 학교 기숙사에 있다가 시설이 좋지 않아서 7월부터 하숙집에 들어와 생활한지 한 달 반 정도 되던 때였다.

고3 수험생의 여름 방학이 시작됐지만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각오는 금세 사라졌다. 여름방학 자율학습 시간이 끝나면 탁구 치고, 광주공원을 놀러 다니며 저녁에는 롤러장에서 여학생들과 데이트를 했다. 결정적인 시기에 궤도를 이탈해버린 것이었다. 3년의 결심을 마무리해야 할 7, 8월의 준비 기간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와 즐거움에 빠져 버렸다.

그러다가 어느 날, 새벽까지 놀다 지쳐 돌아온 나는 깊은 잠에 빠졌고 꿈속에서 꾸짖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던 것이다. 고고히 흐르는 달빛, 차갑게 식고 있는 내 몸, 그리고 현실을 늦게 자각한 두려움에 나는 바로 짐을 꾸리고 그날 아침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본가로 돌아온 나를 맞아 주셨다. 그리고 나는 남은 수험 준비 기간 동안 학교 가는 버스 안에서 "시험이 한 달만 연기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잠시 멈추고 나에게 2주라는 시간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다. 시험 날짜가 다가올수록 부질없는 바람인 걸 알지만, 시험 준비 기간이 늘어나길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과연 시험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예전에 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하는 어느 분과 함께 골프를 친 적이 있다. 마지막 퍼팅을 한 후 그분은 항상 뒤를 돌아본다고 했다. 그러면 어느 지점에서 어떻게 쳤어야 했는지, 다음 샷을 어떻게 해야 잘 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골프를 바둑처럼 복기한다는 것이다.

인생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이고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내가 8월이 아니고 9월에 그 꿈을 꿨더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삶은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것이고 그 흐름에서 벗어나면 돌아가기 상당히 어렵다.

삶의 궤도에서 벗어나면 너무도 자극적이고 달콤해서 대부분 쉽게 그 흐름에 몸을 맡겨 버린다. 그러면 우리가 살고자 하는 삶의 목표와 지향점에서 멀어지게 된다. 따라서 꿈속에서 자신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너무도 먼 곳에 있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인생에 남게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때때로 어느 시점에서 멈추라는 것이다. 그리고 뒤를 돌아서서 내가 가리키는 손의 방향과 맞게 서 있는지, 그리고 그 길로 맞게 가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8월 늦은 날, 매미가 우렁차게 울던 그 옛날 새벽에 나를 깨우던 목소리는 내가 바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준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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