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도청

세련된 도시색시와 수줍은 시골색시 만나다

입력 2019.08.21. 14:23 댓글 0개
고대 해상교역의 중간기지였던 섬 여수 거문도
▲음달산의 능선을 따라간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펼쳐진 구릉이 이국적이다. 해안 벼랑 아래에선 짙푸른 바닷물이 일렁인다. 바다에서 카페리 한 척이 물살을 가르고 있다. 거문도와 고흥 녹동을 오가는 배다. 풍경이 입체적이다. 앞으로 펼쳐지는 길이 한 폭의 수채화다. 그림 속이라도 걷는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뒤를 돌아서 본, 지나온 길도 환상경이다. 수줍은 시골색시처럼, 누구라도 반하게 한다. 한낮의 햇볕까지도 감미롭게 해준다. 녹산등대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녹산등대는 여수 거문도의 서도에 있다. 여수와 제주의 중간쯤, 망망대해에 자리하고 있는 섬이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지역이다.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섬을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이 앞선다. 소외, 고립, 불편 등의 단어가 먼저 떠올라서다. 한편으로는 늘 동경과 그리움의 대상이다. 뭍에서 멀리 떨어진 섬일수록 그리움은 더욱 커진다. 거문도로 간다. 

먼 바다에 떠있는 섬 거문도는 지리적으로 고흥에서 가깝다. 행정구역은 여수시 삼산면에 속한다. 여수항에서 100여㎞ 떨어져 있다.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거문도는 삼산면의 소재지인 고도와 동도, 서도 3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다. 서도 장촌마을에서 한나라 때 화폐인 오수전이 다량 발견됐다. 거문도가 고대부터 국제 해상교역의 중간기지였다는 증표다.

오래 전 거문도는 ‘삼도’, ‘삼산도’, ‘거마도’ 등으로 불렸다. 거문도를 찾은 청나라 제독 정여창에 의해 거문도(巨文島)로 불렸다. 학문에 뛰어난 문장가들이 섬에 많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문도에는 현재 2200여 명이 살고 있다. 면사무소와 파출소, 우체국이 고도에 있다. 

▲관백정과 주변 풍경

한 폭의 그림처럼 이국적인 풍경

거문도는 백도와 한 묶음으로 엮인다. 풍광이 빼어나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섬에 크고 작은 해수욕장이 여러 군데 있다. 갯바위낚시 포인트도 지천이다.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늘어선 구릉도 한 폭의 그림처럼 이국적이다.

거문도여행은 거문도등대와 녹산등대가 대표한다. 거문도등대는 세련된 도시색시, 녹산등대는 수줍은 시골색시에 비유된다. 거문도등대는 팔미도등대에 이어 1905년에 두 번째로 세워졌다.

서도의 유림해수욕장에서 갯바위지대인 ‘목넘어’를 거쳐 수월산 동백숲 터널을 지나서 만난다. ‘목넘어’는 태풍이나 해일이 일 때 집채만 한 파도가 갯바위를 넘나든다고 이름 붙은 곳이다. 

‘목넘어’의 바위에서 우연히 만난 천일염이 눈길을 끈다. 사람의 손길이라곤 미치지 않고, 순전히 파도와 햇볕이 만든 소금이다. 완전 자연산이다.

‘목넘어’에서 등대로 가는 길은 동백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다. 한낮에도 햇볕이 한 줌도 들지 않는다. 100살이 넘은 거문도등대는 등대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불빛은 지난 2006년에 세워진 키 크고 젊은 등대가 밝힌다. 내부 계단을 따라 등대 꼭대기인 팔각전망대까지 올라갈 수 있다. 드넓은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바닷가 벼랑 위에 세워진 정자 관백정도 내려다보인다. 백도를 조망한다는 전망대다. 수월산의 해안절벽도 멋스럽다. 화창한 날엔 동쪽으로 28㎞ 떨어져 있는 백도는 물론 저 멀리 제주도 한라산까지 어렴풋이 보인다.

▲거문도 몽돌해변에서 본 녹산등대

한낮 햇볕까지도 감미로운 명품 길 

백도로 가는 유람선은 거문도항에서 탄다. 백도는 국가명승(제7호)으로 지정돼 있어 섬에 들어갈 수 없지만, 빼어난 절경으로 많은 여행객을 유혹하고 있다.

백도의 지명 유래도 재밌다. 섬이 100개여서 ‘백도’라고 한다. 100개에서 하나 모자란 99개여서, 한자로 일백백(百)자에서 한일(一)을 뺀 흰백(白)을 써 ‘백도’라는 말도 있다. 멀리서 보면 섬이 온통 하얗게 보인다고 ‘백도’라 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백도는 39개의 무인도로 이뤄져 있다.

녹산등대는 거문도등대의 반대편에 있다. 거문도항에서 삼호교를 건너 오른편, 서도의 음달산 능선을 따라간다. 녹산등대로 가는 길은 발아래로 펼쳐지는 망망대해를 보며 걷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구릉이 이국적이다. 벼랑 아래에선 짙푸른 바닷물이 넘실대며 풍경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도, 뒤돌아서 보는 지나온 길도 모두 한 폭의 수채화 풍경이다. 흡사 그림 속이라도 걷는 것 같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까지도 감미롭게 해주는 명품 길이다. 길에서 인어해양공원도 만난다. 달 밝은 밤이나 새벽에 나타나 절벽에 돌을 던지고 소리를 내서 어부들을 태풍으로부터 구했다는 인어다.

녹산등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몽돌해변도 아름답다. 구릉의 밭자락에는 거문도가 자랑하는 쑥이 지천이다. 누구라도 반하게 하는 길이고 풍경이다.

▲영국군 묘지

거문도를 거문도이게 한 학자 김유

거문도에서 눈여겨볼 것이 더 있다. 옛 영국군의 묘지가 고도에 있다. 1885년(고종 22년) 4월 영국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는다는 핑계로 거문도를 무단 점령했다. 항구의 이름도 ‘포트 해밀턴’으로 불렀다. 영국군은 지금의 거문초등학교 자리에 막사를 짓고 2년 동안 머물렀다. 

영국군은 섬주민들에게 일당을 주면서 일을 시켰다. 초콜릿, 통조림 등 먹을거리도 나눠줬다. 군의관들이 무료 진료도 해줬다. 이방에서 온 점령군이었지만, 영국군은 주민들과 불편하지 않게 지냈다고 한다. 그때 죽은 영국군의 무덤 3기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영국군이 설치한 해저케이블의 흔적도 남아 있다. 영국군은 거문도에서 중국 상하이까지 해저케이블을 설치했다. 영국군이 설치한 테니스장도 인근에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테니스장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신사 터도 바닷가에 남아 있다. 거문도를 거문도이게 한 큰 학자 귤은 김유(1814∼1884)를 모신 귤은사당은 동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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