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과 등불

입력 2017.06.21. 08:31 댓글 0개
정운현 사랑방칼럼 前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한낮의 온도가 30도를 오르내리는 찌는 듯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게다가 가뭄까지 겹쳐 하루살이 등 곤충이 어지럽게 날아다닌다. 요즘 도시에서는 나방을 보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여름밤이면 마루에 걸어놓은 등불에 나방이 떼 지어 모여들곤 했다. 나방을 만진 손으로 눈을 비비면 실명한다는 속설이 있어 아이들도 좀체 나방은 가까이하지 않았다. 시골사람들에게 나방은 해충으로 인식되어 잡히면 그 자리에서 밟아죽이곤 했다.


쥐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이야 사정이 많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시골에 쥐가 많았다. 쥐는 쌀가마니를 뚫어 곡식을 축내거나 기둥을 갉아먹어 박멸의 대상이었다.

 

60년대만 해도 시골에는 쥐덫이 집집마다 한 둘씩은 있었다. 매월 25일을 ‘쥐 잡는 날’로 정해 온 동네가 일제히 쥐약을 놓아 쥐를 잡곤 했다. 쥐를 얼마나 잡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쥐꼬리를 잘라서 가져오라고 숙제를 내기도 했었다. 이젠 모두 지난 시절의 전설 같은 얘기가 되었다.


쥐와 나방 같은 미물은 사람에게 유익하지도 않을뿐더러 하찮은 존재에 불과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이런 미물의 생명조차도 가벼이 여기지 않았다. ‘동양인의 지혜의 샘’이라 불리는 ‘채근담’ 전집(前集) 173장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다.

 

배고플 쥐를 위해 언제나 밥을 남겨두고
나방을 불쌍히 여겨 등불을 아니 켜네.
옛사람들의 이런 생각은
우리 인간이 모든 생명을 대하는 기본자세이리니
만약 이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형체만 사람일 뿐
흙이나 나무와 다를 바 없는 존재라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배려, 자비심 같은 게 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물도 제 새끼를 돌보고 무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협력하지만 타 종족을 보살피는 경우는 흔치 않다.

 

쥐를 생각해서 식은 밥 한 덩어리를 문지방 밑에 던져주는 배려, 불빛을 보고 날아들 나방을 불쌍히 여겨 글 읽는 선비가 어두워져도 등에 불을 켜지 않는 자비심. 그래서 인간은 흙이나 나무와 다른 존재인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산 생명들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의 확산을 막는다며 소나 돼지, 그리고 닭과 오리 등을 한꺼번에 수천, 수만 마리씩을 ‘살(殺)처분’하기도 한다.

 

또 어제까지만 해도 ‘가족’으로 여기며 집에서 키우던 반려동물들을 스스럼없이 내다 버리기도 한다. 각 지자체마다 유기견 보호소가 빈자리가 없다고 한다.

 

미물의 생명조차 귀하게 여기던 옛적에 비하면 부끄러운 노릇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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