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아 김복동, 그리고 이영훈류

입력 2019.08.19. 15:44 수정 2019.08.19. 18:16 댓글 0개
조덕진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주필

그녀는 위대했다.

광주극장에서 만난, 한 존재, 피와 살이 흐르고 작은 소망과 일상의 꿈을 지닌, 누군가의 딸이고 형제이자 가족이면서 죽음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피해자, 생존자, 김복동.

"신고하겠다(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겠다)고 했더니 가족들이 말렸어요, 조카들도 있고 하니 하지 말라고. 그 때 이후로 언니는 인연을 끊었어요. 여사(별일 아닌 일)로 들리겠지만 피해자라고 알리는 일은.."(영화 '김복동')

"'위안부 자식, 위안부 새끼'. 징용 갔다 온 것도 억울한데 위안부라고.. 애들한테까지 그러는 것이 평생의 한이었제. 누가 내 인생을 보상해줄 것이여"(일본군 강제징용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김복동, 그녀를 차마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접신하는 무녀처럼, 전이될 그녀의 고통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장에서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따라 나선 길이 중국이었다. 일본군의 협박에 다른 길도,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지옥 같은 구덩이에서 어찌어찌 살아남았다. 정갈하고 단아한 그녀, '형제들 중에서도 제일 예쁘고 똑똑했다'는 김복동은 죽음보다 더한 침묵의 감옥에 갇혀 살았다. 고통에 헤매던 그녀는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증언에 나서자 이듬해 만천하에 자신을 드러낸다.

고난의 길이었다. 개인의 삶도 포기하고 한반도, 아시아 여성의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UN에 나가 증언 하고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세계 전역을 돌며 생존자로, 일본군 위안부의 산 '증거'로 나섰다. "증언 하시는 날에는 너무 힘들어하셨어요. 과거의 고통을 매번 되살려야하니..."(평화연대 관계자).

그 길목에서 김운성·김서경 작가를 만났다. '평화의 소녀상'. 미국 글렌데일 시에 소녀상이 건립되는 등 소녀상은 위안부 생존자, 일본의 더러운 전쟁을 상징했다. 생존자 김복동은 암에 걸려서도 병든 노구를 이끌고 국제사회 연대를 호소했다. 그 때 박근혜와 아베가 단돈 10억엔에 '평화의 소녀상'을 없애고 위안부 문제를 불가역적·최종적으로 정리하는, 희대의 합의를 발표한다. 2015년 12월18일의 일이다.

당시까지 국제사회 연대와 인식 전환도 생존자들이 만들어낸 피눈물의 결정체였다. 그 피투성이의 몸과 마음으로 일궈낸 국제사회 여론이라는 텃밭을 이들이 단 10억엔에 짓밟아 버린 것이다.

설상가상 국립대 교수였다는, 언필칭 지식인이라는 이영훈은 위안부가 강제가 아니었다는 둥 '더러운' 책을 쓰고 방송까지 한다고 한다. 그 자의 실체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허나 교수였다는 자가 사회에서 누리는 과도한 특권을 약자를 짓밟고 인류애를 저버리는데 활용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교수뿐인가. 인류사에 오점으로 기록될 한·일 위안부 합의 당시 국무총리였던 황교안. 지금껏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다. 서푼어치 값어치도 없는 이들을 들먹이는 것은 위안부 합의 국무총리가 강경투쟁을 다짐하고 나서서다. 그땐 말 한마디 없이 아베와 손잡고 인류와 생존자들에게 치욕을 안기더니, 이제와 무슨 투쟁을 하겠단다.

지난주는 역사적 주간이다. 해방 74주년 주간이자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 주간, 수요집회가 1400회를 기록한 주간이다.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가 1400회로 최장기 평화시위를 기록했다. 또 이날 8월 14일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전 인류 앞에 증언한 날로, 이를 기념한 '세계 일본군 위안부 기림일'이다.

소위 배웠다는, 지식인라는 자, 국무총리라는 자들은 강권지배한 자들의 입과 손발 노릇을 해왔다. 다른 한편 가진 것 없고 배운 것 없는 여인 김복동은 자청해서 십자가를 지고 세계 지식인그룹, 시민사회와 함께 인류사를 새롭게 쓰기위한 투쟁에 나섰다. 생존자라는 가시면류관을 기꺼이 썼으며 이후 전 세계 전쟁 피해 여성의 인권 신장과 지원을 위해 생사를 개의치 않았다. 노 아베, 노 쇼핑. 한 개인의 행동이 역사가 되는 즈음이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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