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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일홍은 바람으로 붉다
입력 2019.08.19. 16:53 수정 2019.08.19. 17:04 댓글 0개백일홍이 붉다. 백일홍을 부르는 이름은 여러 가지다. 배롱나무, 나무 밑둥 어디쯤 간지럼을 태우면 가지 끝이 떤다하여 간지박(간지럼) 나무, 백일홍은 백일 동안 붉다 하여 백일홍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백일홍은 한 꽃이 피어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붉은 꽃무더기가 세 차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며 백일을 간다는 것이다. 그 백일엔 무수한 시작과 끝이 서로를 붙들고 있다. 그것은 어찌보면 잘 조직된 카드섹션이거나 군무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함께 다리 묶고 이어달리기를 하듯 피었다 지며 백일홍은 오늘도 붉다. 그러다 마지막 무더기가 질 때면 벼를 수확하는 시기가 왔기에 배고픈 시절 붉게 지는 꽃을 보며 흰 쌀밥을 떠올렸다고 하여 쌀밥 나무라고도 했다 한다. 백일홍은 나무에 주목한 이름이지만 쌀밥 나무는 삶에 주목한 이름이다. 삶은 순간 순간 기원들로 이어진다.
그렇게 백일은 기원의 숫자다. 태어난 아이의 백일이야 더 말할 것도 없으며, 단군신화 속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면서 인간이 되기 위해 견뎌야 하는 시간도 백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우리 부모님들은 이루고 싶은 바람이 있으면 백일 기도에 들어 가셨다. 대입 수능 백일이 지났다. 저마다의 바람과 간절함으로 백일은 가고 있다.
어느 해였던가? 8-9년 전쯤이었다. 1정 연수 때 인연이 되어서 연락을 주고 받던 선생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OO고등학교는 어떤 학교입니까?' 그래서 학생들 열심히 지도하고 대학도 잘 보내는 학교로 알고 있다고 하였다.
어떤 학교를 평가한다는 것은 조심스럽고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판단하는 것은 자칫 편견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무난하고 적당한 대답을 찾아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그 선생님은 긴 메일을 보내왔다.
자신이 겪은 일이라며.
OO고등학교에 다니다가 서울로 전학을 온 그 학생이 한 달 쯤 지나자 담임인 자신을 찾아 왔다고 메일은 시작되었다. 그 학생은 담임을 찾아 와서 왜 자신을 특별 관리 해주지 않는지 물었고, 이유를 묻자 그 학생은 광주에서 학교를 다닐 때는 그랬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오래전에 받은 메일이 이번 사건으로 인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시작은 시험 문제 하나로 시작되었지만 일은 생각보다 컸다. 그 학교에서 벌어진 사건으로 많은 교사들이 징계를 받게 되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느낌이나 생각들을 물어 보니, 기사를 통해 사건을 접한 학생들은 그 학교 대다수의 많은 학생들이 그 동안 입은 피해를 생각하면 안타깝다고 하고, 수시의 비중이 큰 대학 입시 제도가 일으킨 사건이라고도 한다.
또 누군가는 그 학교 학생들이 대학을 갈 때 불이익이 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속절없이 이 시간 속에서 상처 받고 있을 그 많은 학생들은 어떤 마음일까? 누구에 의해서 벌어진 일이든 이 시대 같은 교사로서 미안하고 부끄럽다.
우리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라는 말로 학생들의 상처를 적당히 위로하며 넘어가서는 안 된다. 과정의 공정함과 정의로움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느 대학 몇 명으로 발표되는 입시 결과로 모든 교육의 성과가 수렴되는 것은 과정을 무시하게 한다.
우린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현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이 터지면 과연 우린 교육 현장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싶어지면서도 본질을 놓친 채 또 이로 인하여 앞으로 교육 현장에 다가올 실무적인 일의 부담감을 먼저 계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어찌보면 교육은 과정이 전부다. 과정으로 배우고 과정으로 성장하고 그렇게 무수한 과정이 피었다 지고 이어지면서 무럭무럭 성장하는 교육의 백일홍을 그린다.
지금 학교는 대입 수시 입학 전형을 앞두고 학생 생기부를 점검하고 여러 기록 사항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담임 교사들이 학생 상담으로 깊은 밤을 학생들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도 학생들의 성장에 주목하고자 애쓰고 정성을 쏟는 교사들이 있어서 이번 사건에서 느끼는 자괴감과 박탈감이 위로 받는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라고 생각한다.
- <칼럼> 늘봄학교,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 '늘봄', 이 얼마나 예쁜 말인가? 봄처럼 포근하고 따사로움이 늘 함께한다는 뜻일 것 같은 '늘봄'. 그러나 이제 이 언어는 그렇게 쓰일 수가 없다.언어의 의미는 사회에서 규정된다. 아무리 좋은 언어라도 사회에서 다른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언어의 오염이 시작되고 결국 그 언어는 이전의 의미로는 쓸 수 없게 된다. 나에게 '늘봄학교'은 '녹색성장'과 같이 그렇게 오염된 채 다가왔다.2024학년도 1학기 광주지역 늘봄학교, 신청에서부터 선정까지 학교 현장 갈등2월 현재 광주에서는 30여개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신청한 18개 학교 중 중17개교는 협의록이 없으며, 교장 결정 3개교, 교장과 교감이 함께 결정한 학교 1개교, 교장, 교감, 행정실장이 결정한 학교 2개교, 부장교사가 요청하여 승인한 학교 1개교 등 내가 속한 학교지만 어떻게 늘봄이신청되고 선정되었는지를 학교 구성원은 잘 모른다. 그래서 서로 의심하고 속상해한다. 이렇게 늘봄학교는 불필요한 학교 현장 갈등을 양산 시키고 있다.교사? 돌봄전담사? 일반직? 과도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어"우리가 일 때문에 늘봄학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은 늘봄학교 거부의 본질이 업무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거겠지만, 노동자에게는 일도 중요하다. 여전히 시간제가 많은 돌봄전담사의 업무도 아니고, 수업과 생활교육이 고유 업무이자 이것만으로도 과도한 노동을 하는 교사의 업무는 더더욱 아니다. 늘봄지원실을 만들어 일반직을 배정한다는 것도 총액인건비제에 묶여있는 공무원 상황을 보면 실현 가능하지 의문이 들고, 기간제에게 맡기는 것 또한 노동의 불안정성을 부추김과 동시에 결국은 기간제 공고부터 선정 관리까지 다시 학교의 업무가 되는 것은 학교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안다. 학교의 누군가는 일을 해야 한다.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강요받은 업무를 그것도 과도하게 말이다.가장 중요한 사실,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는 '늘봄학교'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늘봄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초 늘봄학교에 대한 기사가 쏟아질 무렵 내 마음을 훅 치는 기사 하나가 있었다. 기사 중에는 지금은 고등학교 2학년이 된 자녀로부터 들은 초등돌봄교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음과 같다."엄마, 나는 초등학교 때 돌봄교실이 제일 싫었어. 다른 친구들은 학교 끝나면 엄마랑 만나서 놀이터에서 놀고 학원에 가고 집에서 쉬는데, 난 혼자 돌봄교실에 갔어. 나도 다른 애들처럼 엄마랑 만나고 싶었어." 우리 아이들의 삶을 생각한다면 아침 7시부터 밤 8시까지 학교에 있는 게 폭력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 안드는지? 어른들보고 그렇게 있으라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집에 간다고 하지 않을까?늘봄학교에는 주체인 우리 아이들의 목소리는 빠져있고, 즉 아이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에 대한 고민과 사유는 실종되었다.학교, 지자체, 무엇보다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돌볼 수 있도록필자도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냈었고,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발을 동동거린 적이 있다. 대한민국 보호자들이라면 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두 번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절실하게 느낀 것이 돌봄의 사회적책임이었고, 학교 현장에 있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돌봄의 사회적 책임은 보호자의 노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과 동시에 보호자의 양육권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노동시간 합의와 양육시간 확보도 해당될 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소위 '저녁 있는 삶'과 같은 것이다.학교가, 지자체가 함께 우리 아이들을 돌봄과 동시에 보호자가 우리 아이를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돌볼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천천히 가더라도 그렇게 가야 우리 아이들의 삶이, 우리들의 삶이 있다.그렇게 간다면 다시 '늘봄', 이 언어의 원래의 의미를 되찾아 진정 우리가 바라는 '늘봄'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정애숙 광주동산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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