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광복절에 비쳐진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

입력 2019.08.14. 14:16 수정 2019.08.14. 14:16 댓글 0개
구길용의 무등칼럼 뉴시스 광주전남본부 취재본부장

일흔네 번째 맞는 광복절의 감회가 남다르다. 일본 정부의 적반하장식 경제보복 조치가 가져온 분노가 그만큼 크고도 깊다. 가만히 있어서는 안된다는 민초들의 함성,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며 들불처럼 번져가는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가슴 뭉클하게 한다. 저 밑바닥에서부터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경구가 새삼 다가오는 요즘이다.

하지만 이런 도도한 흐름과 달리, 한쪽에서는 역사인식을 의심케 하는 퇴행적 행태들이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되풀이돼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맞서는 국민들의 정서와는 멀어도 한참 먼 작태들이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의 경제침탈 조치에 대응하는 정치권의 행태가 가관이다.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도 부족할 판에 '친일프레임'이니 '일본팔이'니 하는 소모적 논쟁만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의 보복적 수출규제 조치 철회촉구' 결의안을 채택하는 데만도 20여일이 걸렸다. 추경안과 국방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놓고 지루한 공방을 벌인 결과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일본의 수출규제 초당적 대응'이라는 5당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이후 단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려는 국민들의 간절함을 반의 반만이라도 따라가도 좋으련만 매번 이 모양이다.

일부 정치인들의 저급한 인식과 막말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공식석상에서 '우리 일본'이라는 표현을 썼다가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습관적인 언어표현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얼마 전 반민특위 발언 논란을 야기했던 장본인이 나 원내대표이고 보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혹여 그의 역사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낸 건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가 모아지고 있다.

같은 당 정미경 최고위원은 전직 외무장관의 말을 인용하며 '최근의 한일갈등은 문재인 정부의 자작극처럼 보인다'고 발언해 논란을 부추겼다. 제1야당 최고위원회의 수준이 고작 이정도 밖에 안 되느냐는 비판이 쏟아진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발언과 주장이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그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상식 밖의 발언들을 늘어놓았다. 위안부를 소규모 영업으로 규정하고 일제로부터 영업장소를 제공받아 업자와 수익 일부를 나누는 계약관계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책 '반일 종족주의'에서는 일제 식민지배 기간에 강제 동원이나 식량 수탈 등 반인권적인 행위가 없었으며 친일청산을 사기극이라고도 했다. 조국 법무부장관 내정자가 '구역질나는 내용'이라고 평가했던 바로 그 책이다.

자칭 애국보수 시민단체라고 하는 엄마부대는 한 발 더 나갔다. 이 부대의 주옥순 대표는 "아베 수상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라고 했다. 또 "내 딸이 위안부로 팔려갔더라도, 위안부 할머니와 같은 피해를 당했더라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를 향해서는 망국적 반일선동을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엄마라는 고결한 이름을 아무데나 붙여도 되는 건지, 과연 어떤 엄마들을 대표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각계각층을 막론하고 이 같은 퇴행적 역사인식 행태가 버젓이 이어지고 있는 연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은 결국 일제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보다 근본적인 책임이야 진심어린 사죄를 거부하는 일본에 있지만 국내 청산작업이 미완으로 남아있는 것도 한 몫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해방 이후 의욕적으로 꾸려졌던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다. 이승만 대통령과 주변 친일파들이 1949년 6월 반민특위를 해체하면서 제대로 된 친일청산 작업의 시계는 그 지점에서 멈췄다.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세계사를 볼 때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국가는 번영할 수 없다는 게 고금의 진리다. 1,2차 세계대전이 그랬고 냉전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청산의 목적은 처벌이 아닌 사죄와 용서, 치유에 있다. 그것이 미래로 맞닿아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역사 청산에 실패했다. 곳곳에 친일의 역사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의 경제를 무릎 꿇리고 헌법 개정 후 전쟁가능 국가로의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아베의 망동만큼이나 광복절이 마음 무거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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