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영화적 허구와 왜곡 사이

입력 2019.08.08. 15:13 수정 2019.08.08. 15:13 댓글 0개
선정태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2본부

영화 '나랏말싸미'가 개봉한 후 논란이 거세더니 흥행에 처참한 결과를 낳고 끝날 상황에 놓였다. 이 영화의 내용을 두고 '심각한 역사 왜곡이다'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감독은 '예술적 허구를 가미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글, 아니 훈민정음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왕인 세종대왕의 수많은 업적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업적이다.

도대체 영화 한 편이 왜 뜨거운 논란에 휩싸이게 됐을까?

사실, 필자는 이 영화 개봉 날짜만을 기다렸다. 몇년 전 이 영화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는데다 영화 '사도'의 작가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라 더욱 기대됐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내내 거북했고, 무척 불편했고 크레딧이 올라올 때는 화가 나 욕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영화는 훈민정음을 세종이 아닌 외국어에 능통한 스님이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종은 그저 거들다가 다른 사람의 업적을 훔친 인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랏말싸미'를 본 사람들이 "역사 왜곡"이라며 분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적 사실에 판타지를 가미해 영화를 만든다거나 밝혀지지 않은 내용을 추가할 수 있다. 우리가 봐왔던 수많은 역사 소재의 영화들이 사실을 기초로 영화적 허구를 덧붙였을 뿐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면 예술적 허구가 아니라 역사왜곡일 뿐이다.

굳이 흥행에 참패한 영화의 위험성을 말하려는 이유가 단순히 우리나라 5천년 역사 상 대왕이라는 칭호가 붙은 2명 중 한 명을 왜곡·폄훼해서만은 아니다.

이 영화의 뒷맛이 씁쓸하고 불편한 것은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영화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섬뜩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자신의 쿨함을 뽐내고 싶은 몇 몇 사람들은 '그래봐야 어차피 영화잖아'라는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일본이 강점기 시절의 만행을 지속적으로 부정하고, 왜곡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안부에 대한 왜곡된 영화를 만들어도 토왜가 아니라면 시니컬할 수 있을까?

또, 우리가 살고 있는 광주라는 땅이 1980년 이후 얼마나 심각하고 집요하고 허황된 왜곡에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자.

지금도 질기도록 끊어지지 않고 있는 5·18에 대한 왜곡을 영화로 만들어 놓고, '예술적 허구일 뿐'이라고 변명한다해도 '그래, 그냥 영화일 뿐이잖아'라며 동조할 수 있을까. 그래서도 안되고 그럴 수도 없다.

'나랏말싸미'에서 '밥은 빌어먹어도 진리는 빌어먹을 수 없다'고 했다.

모든 역사적사실을 왜곡하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진실을 빌어먹으려 하지 말고 밥만 빌어먹어라"고.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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