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기고> 약속을 안 지켰으니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말자(?)

입력 2019.08.04. 15:07 수정 2019.08.04. 15:07 댓글 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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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5·18 부상자동지회 초대회장·시인·연극인)

필자는 6·25의 상혼이 처절한 산골에서 자랐다. 축구는 좋아했지만 가난해서 공을 살 수 없어, 새끼로 공을 만들어서 찼다. 고무신을 신고 찼으니 무척이나 아팠다. 그래도 즐거웠다.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명절이 다가오고 마을에서 공동으로 돼지를 잡는 날이면 횡재(?)를 한다. 암 돼지를 잡으면 새끼 보가 나오고 ,그것을 불면 나이키보다 훌륭한 세계에서 제일 멋진 축구공이 탄생한다. 열악한 우리들이 축구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경사가 났고, 학생과 주민들이 환영을 나왔다. 선수들은 운동복을 입고 행진하며 기쁨을 누렸다. 그런데 우승의 주역이 아닌 필자는, 선수들의 옷을 들쳐 메고 3 km 자갈길을 걸어야 했으니 정말 창피했다. 그러한 쓰라림이 있지만,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가족들과 TV 쟁탈전을 벌인다. 혹자는 제국주의가 개발한 3S라는 덫에 걸렸느냐고 핀잔을 할 줄 모르나, 축구와 야구 경기를 관람하며 5월의 상처를 조금이나마 씻어 내릴 수 있었다.

호날두 짝사랑 상처 어떻게 치유할까

축구에 대한 소질이 없지만 축구를 좋아한다. 특히 호날두에게 미쳤다. 성실성과 기량, 엄청난 자기 단련과 기부 정신과 34살의 나이를 초월한 모범적인 선수 생활은 귀감이다. 세계인의 우상인 그가 대형 사고를 쳤다. 7월 26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을 메운 관람객만이 아닌, TV 시청자 및 온 세계 축구 팬들에게 엄청난 실망과 상처를 줬다. 유벤투스와 K리그 친선경기 주최사인 더 페스타는 호날두가 최소 45분을 경기에 출전하는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는데, 단 1초도 뛰지 않았다. 비싼 돈과 시간을 투자한 한국 팬들은 배신감과 허탈감에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재판 결과는 예단할 수 없지만 반성 없는 일본과 강대국들에게 갑질 당해 자존심을 할퀸 국민들의 분노와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느냐 말이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없는 뻔뻔스러움! 그래서 금년 여름이 더 무덥고 힘들다.

우리들의 5월은 부끄럽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5월에 빚을 져서 투쟁을 했다. 필자도 살아있다는 부끄러움에 민주화운동을 시작했고 감시, 연행, 사찰, 아니 당시의 안기부와 보안대도 섭렵했으며, 15척 담장에 갇히기도 했다. 지금은 5월 정신을 예술로 승화시키기 위해 '애꾸눈광대'라는 연극을 하고 있다. 투박하고 미흡하다. 그래도 살아있으니 무언가 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그런데 10 여 년 동안 실수한 적이 없었지만, 금년에는 본의 아니게 학생들과의 약속을 어겼다. 죄를 지었다. 경제적 육체적 정신적 어려움보다 힘든 게 있다. 동지들과의 관계 및 5월 당사자로서 명예와 멍에를 동시에 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 어디 필자만의 문제이겠는가? 우리들의 업보다.

95년도 5·18 특별법 투쟁을 할 때까지만 해도 5월 관련자들은 존경을 받았다. 동창회에 나가면 고생한다며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기념재단이 창단한 전후로 균열이 생기고, 일부 단체가 초심을 잃으면서 시민들의 원성이 드세졌다. "5월이 너희들만의 것이냐, 제발 그만 좀 해라는… 오죽 식상했으면 그랬겠는가? 부끄럽다. 전 두환과 한국당과 지만원 일당과 싸우려면, 이제라도 당신들이 먼저 반성하고 배려하며 겸손하라는 시민들의 충언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5월 정신을 잘 지켜 자랑스러운 나라를 물려주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사명이다. 아니 5월 영령들과의 굳은 약속이다. 약속도 못 지키면서 주먹밥 공동체를 얘기한 건 모순이고 배신이다. 호날두와 나쁜 무리들을 욕하기 전에 우리부터 참회하자. 잘못했으면 미안하다는 말이라도 해야 한 게 도리 아닌가? 그렇다. 그것이 작지만 소중한 5월정신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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