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중요한 5%, 더 중요한 95%

입력 2019.07.31. 17:42 수정 2019.07.31. 17:42 댓글 0개
류성훈의 무등칼럼 무등일보 취재2본부장

몇달 전 자사고와 특목고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다. 중학교 3학년 된 아들의 성적이 그럭저럭 괜찮아 담임선생님을 비롯 주변에서 권유하는 바람에 고교 진학 문제로 잠깐 고민했다. 여기저기서 귀동냥해 듣거나 대충 파악해서 얻은 얄팍한 정보를 바탕으로 두 가지 선택지에 도달했었다. 타지역에 위치한 자사고냐, 일반고냐.

학업 분위기가 좋고, 특히 수시 학생기록부종합 수시전형으로 대학 가기 위해서는 자사고·외고를 가야 한다는 비슷한 또래 아이를 둔 엄마들의 조언에 집사람의 마음이 살짝 기운다. 하지만 당사자(중3 아들)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며 일침을 가한다. 전국에서 '난다 긴다'하는 '집안 좋은' 애들이 다 모이는 자사고나 외고를 다닐 경우 내신은 자신할 수 없다, 의대가 목적이 아닌 이상 일반 고등학교에 나닌 것이 더 낫다는 솔직한 의견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최종 결정은 일반고로 합의를 봤다. 까놓고 말해서 자사고나 특목고에 합격하는 것도 어렵지만, 진학 하더라도 비싼 학비 등으로 내심 부담을 떨칠 수 없었던 필자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비슷한 고민을 한 학부모들이 상당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자립형사립고 재지정 취소, 유지 논란으로 교육계가 시끄럽다. 더구나 내년에는 전국의 31개 외국어고 중 30여곳이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있어 진학을 준비하던 학부모와 재학생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왜, 그동안 멀쩡하게 운영되던 자사고와 외고 등의 폐지가 거론되고 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고교 평준화를 보완하고 차별화된 교육을 통해 인재를 배출한다는 설립 취지 보다 고교 서열화만 가속시킨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외고 학생들의 높은 학업 성취도는 외고가 앞세우는 다양한 커리큘럼 등 특별한 교육과정 때문이 아니라 애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온 영향이 커 '외고 효과'가 미미하다는 분석이다.

이유건 미국 위스콘신 교육연구센터 연구원이 내놓은 '외고 효과에 대한 재분석'에 따르면 사교육비를 많이 지출하는 고소득 가정의 학생일수록 외고에 진학해 수능에서 고득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고 자체의 학업향상 효과는 미미한 반면 교육 불평등만 가속화시킨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 대목이다.

사실 그동안 자사고와 외고는 '의대나 SKY대 입시 전문학원'으로 전락, 귀족학교로서의 역기능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일반고 성적 우수 학생들과 비교할 때 외고, 과학고 학생들이 외국어 및 과학 영역에서 등급차가 높게 나타난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차별화된 영재수업'을 앞세우는 점을 감안하면 미미한 격차라는 게 상당수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전국의 최우수 학생들이 다니면서, 외국어 및 과학 영재 교육과 거리가 먼 사실상 입시학원에 가까운 학교를 자율형 사립고나 외고, 과학고라고 일컫는 것은 맞지 않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학비도 평범한 가정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비싸다. 한 해 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 포함)가 600~800만원으로 일반고(150만여원)보다 3배 이상 비싸다. 여기에 기숙사, 급식, 보충수업비 등을 포함하면 연간 학비로 1천만원이 훌쩍 넘는다. 그런저런 이유로 자사고·특목고가 교육 양극화를 부채질 하고, 교육 기회의 균등을 '그림의 떡'으로 만든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는 2천358개(2018년 기준)인데, 일반고가 1천556곳으로 가장 많다. 외국어고 30개교, 자사고 42개교, 국제고 7개교, 영재교 8개교, 과학고 20개교로 전체 고등학교의 5%에 해당한다. 5%의 학교가 SKY 정원의 40%를 합격시키고 있다. 이 학생들이 전국의 모든 의대를 싹쓸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자사고나 외고·과학고에 다니거나 진학을 희망하는 5%의 학생도 중요하지만, 그렇지 않은 95%의 학생들도 중요하다. 95%의 학생들이 패배감을 느끼지 않도록 제도를 만드는 게 교육당국이 할 일이다.

자사고가 설립 취지와 다르게 입시 명문고로 변질됐다는 이유로 지정이 취소되고 있는 이참에, 외고나 과학고 등에 대해서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가 가능하다면, 사회적 합의를 토대로 자사고·외고·과학고 등에 과감하게 메스를 댈 필요가 있다.

물론 국가는 수학·과학·어학 영재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영재 교육'을 제대로 교육 시키는 사립에 대해서는 앞장서 적극 지원해 주는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책무이다. 백년대계인 교육,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는 방향이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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