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일제 ‘고문귀신’ 하판락

입력 2019.07.25. 18:14 수정 2019.07.25. 18:14 댓글 1개

우리 역사에서 친일청산에 실패한 게 두고 두고 짐이 되고 있다. 전후 프랑스가 나찌정권 부역자를 끝까지 찾아내 처단하고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는데 앞장선 악질 일제 고등계 형사중 ‘고문 귀신’이라 불렸던 하판락이라는 인물이 있다. 경남 진주 태생으로 1934년 2월 일제 순사가 되었다. 그가 고문계의 끝판왕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 것은 1930년대다. 당시 신사참배를 거부하던 기독교인 30명을 잡아다 악랄하게 고문해 조선인들의 치를 떨게 했다.

그는 특히 1943년 ‘칠우회 불온전단’사건으로 붙잡힌 독립투사 여경수를 수사하다 자백을 거부하자 화롯불에 달군 쇠꼬챙이로 온몸을 지졌다. 조선 시대 사육신 고문법을 재연한 것이다. 그는 또 ‘착혈 고문’이라는 극악무도한 고문을 자행해 ‘고문귀신’이라는 악명도 얻었다.

‘착혈고문’은 말그대로 살아있는 사람의 피를 뽑는 고문이다. 2007년 사망한 독립운동가 이광우 선생은 하판락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지 않은 사람의 혈관에 주사기를 꼽아 피를 뽑아 그 피를 고문하는 사람에게 뿌렸다”고 했다. 그런 하판락이 해방후 반민특위에 잡혀갔으나 “아랫사람이 한 일이어서 자기는 모른다”고 끝까지 발뺌해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나고 말았다. 그후 부산에서 노인회 회장을 맡고 부산시장 표창까지 받으며 92세까지 천수를 누렸다.

지금도 하판락같은 친일 부역자들이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그 후손들은 자자 손손 대물림돼 정치,경제, 언론, 문화계 등 곳곳에 자리를 차지했다. 일본과의 경제 전쟁이 터지자 그 후예들이 뻔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밉다”는 속담이 요즘 딱 어울린다. 어린 학생, 시장 상인들까지 나서 일본이 도발한 경제 전쟁에 맞서는 판에 점잖은 척 하면서 아베 편들기에 혈안이다. 그래도 한가지 잘됐다. 일본의 도발로 누가 친일세력이고 부역자인지 국민들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번 만큼은 경제 전쟁이 끝난 뒤라도 누가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는지 뚜렷이 기억해 반드시 역사의 심판대에 세워야 한다. 제2, 제3의 하판락이 두번 다시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단호하게 처단해야 한다.

나윤수 칼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 이건어때요?
댓글1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