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광주세계수영]포기 몰랐던 남녀 수구, 의미 남긴 '1승·1골'

입력 2019.07.24. 07:00 댓글 0개
【광주=뉴시스】 고범준 기자 = 23일 오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수구 대한민국-뉴질랜드의 15~16위 순위결정전 경기, 한국 이선욱이 페널티 슛을 성공시키자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이번 경기는 경기는 12-12(3-3 2-2 4-5 3-2)로 비겨, 페널티슛(5-4)로 이기며 15위를 기록했다. 2019.07.23. bjko@newsis.com

【광주=뉴시스】김희준 기자 = 한국 남녀 수구 대표팀이 사상 처음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22일 막을 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수구에서 한국 남자 대표팀은 15위, 여자 대표팀은 16위를 차지했다.

보잘 것 없는 성적이지만, 남녀 대표팀이 세운 소박한 목표를 모두 달성하고 한국 수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남자 대표팀은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사상 첫 승을 해냈고, 여자 대표팀은 '1골'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한국은 수구 불모지다. 대한수영연맹에 수구 선수로 등록된 인원은 총 406명 뿐이다. 이 중 경영을 겸하는 선수가 339명으로, 순수하게 수구 선수로만 등록된 인원은 67명 뿐이다. 67명은 모두 남자고, 이중 실업 선수로 등록된 이는 36명에 불과하다. 여자 수구 팀은 동호인 클럽팀을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번 대회도 자력으로 출전한 것이 아니다.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었다. 남녀 모두 이번 대회가 첫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이었다.

특히 여자 대표팀의 경우 대표팀이 구성된 것 자체가 처음이었다. 이번 대회 조별예선 1차전이 한국 여자 수구 역사상 첫 공식경기였다.

남자 대표팀은 수구 선수들로 이뤄졌으나 세계는 물론 아시아에서도 약체로 분류될 만큼 변방이다.

광주가 2013년 세계선수권대회 유치에 성공했지만, 대한수영연맹이 손을 놓고 있었던 탓에 대표팀이 이번 대회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다.

국내에 이렇다 할 선수가 없는 여자 대표팀은 북한과 남북 단일팀을 추진하다 무산돼 대회를 한 달 반 앞둔 5월 말에야 부랴부랴 대표팀을 구성했다. 전문 수구 선수는 단 1명도 없었고, 대부분 경영 선수들로만 이뤄졌다. 중학생 2명, 고교생 9명, 대학생 1명, 일반부 1명이 포함됐다. 여자 대표팀은 지난 6월2일부터 불과 40여일 가까이 훈련하고 이번 대회에 나섰다.

【광주=뉴시스】 고범준 기자 = 23일 오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남자 수구 대한민국-뉴질랜드의 15~16위 순위결정전 경기, 한국 이진우(1번) 골키퍼가 수비를 하고 있다. 이번 경기는 경기는 12-12(3-3 2-2 4-5 3-2)로 비겨, 페널티슛(5-4)로 이기며 15위를 기록했다. 2019.07.23. bjko@newsis.com

남자도 뒤늦게 대표팀이 구성돼 지난 4월 중순에야 훈련을 시작해 약 3개월 동안만 손발을 맞추고 세계 강호들을 상대했다.

세계와의 전력 차와 부족했던 준비 시간을 선수들이 더 잘 알았다. 대표팀 선수들의 목표는 소박했다. 남자 대표팀은 '1승'이 목표였다. 사실상 출전에 의의를 둬야 했던 여자 대표팀의 목표는 '1승'도 아닌 '1골'이었다.

남녀 대표팀은 세계의 높디높은 벽을 피부로 느껴야 했다.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높은 벽을 넘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작은 목표라도 이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남자 대표팀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딴 적이 있는 강호들을 상대한 조별예선에서 잇따라 대패를 당했다. 그리스에 3-26(0-7 0-7 1-3 2-9)로, 세르비아에 2-22(1-6 0-5 1-4 0-7)로 패한 한국은 몬테네그로에도 6-24(1-6 1-4 1-8 3-6)로 대패했다.

13~16위 결정전에서 만난 '아시아 최강' 카자흐스탄도 대표팀에는 높은 벽이었다. 역시 4-17(1-4 2-4 0-7 1-2)로 졌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남자 대표팀 주장 이선욱(32·경기도청)은 "처음에 23점차로 패배하고 나서 대회가 다 끝난 것이 아니니 포기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고 전했다.

남자 대표팀은 결국 대회 마지막 경기에서 간절했던 '1승'의 목표를 이뤄냈다. 23일 벌어진 뉴질랜드와의 15·16위 순위결정전에서 승부 던지기 끝에 17-16(3-3 2-2 4-5 3-2 5-4)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둬 한국 수구 역사상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첫 승이라는 역사를 만들어냈다.

12-12로 승부를 가리지 못해 승부 던지기에 돌입할 정도로 치열한 승부였다. 경기 내내 접전을 벌인 남자 대표팀은 4쿼터 중반 9-11로 뒤져 또다시 질 위기에 놓이기도 했다. 패배 위기에 놓였을 때 선수들끼리 가장 많이 나눈 말도 '포기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경기가 끝나는 벨이 울려야 끝나는 것이니 그 전에 포기하지 말자고 했다"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고범준 기자 = 22일 오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대한민국-쿠바의 15~16위 순위결정전 경기, 한국이 30-0으로 패했다. 경기 종료 후 선수들이 포옹을 하며 마무리 짓고 있다. 2019.07.22. bjko@newsis.com

그 덕분인지 한국은 끈질기게 동점을 만들었다. 경기 종료 32초 전까지 11-12로 뒤졌던 대표팀은 권영균(32·강원도수영연맹)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승부 던지기까지 몰고가 귀중한 첫 승을 일궜다.

여자 대표팀은 조별예선 첫 경기에서 헝가리에 0-64(0-16 0-18 0-16 0-14)로 기록적인 패배를 당했다.

기가 죽을 법도 했지만 선수들은 이를 악물었다. '내일은 잘해보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경다슬(18·강원체고)은 "잘하려고, 이기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끝까지 하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 엄청난 각오를 했다"고 전했다.

각오를 다진 여자 대표팀은 두 번째 경기에서 소박한 목표를 이뤘다. 러시아와의 조별예선 2차전에서 역사적인 첫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주인공은 경다슬이었다. 4쿼터 4분16초를 남기고 한국 여자 수구 사상 첫 골을 터뜨렸다.

경기에서는 1-30(0-7 0-9 0-8 1-6)으로 대패했지만,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여자 대표팀은 캐나다와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는 두 골을 터뜨렸고,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13~16위 결정전에서는 세 골이나 넣었다.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이다. 자신감이 오른 대표팀은 4골을 목표로 했으나 쿠바와의 대회 여자 수구 15·16위 결정전에서 0-30(0-8 0-9 0-6 0-7)으로 패배했다.

대표팀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한국 수구에 의미있는 변화가 생기길 바라고 있다. 남자 대표팀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지훈련이 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저변이 확대되는 계기가 돼야한다고 주장했고, 여자 대표팀은 여자 수구의 명맥이 이어지길 기원했다.

남자 대표팀을 지도하는 이승재 코치는 "지난해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을 마친 뒤 바로 모여서 이번 대회를 준비해야했다. 하지만 선수, 지도자 선발이 늦어져 4월14일에야 모였다. 외국으로 전지훈련을 나간다든가 그런 부분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 아쉬웠다"며 "우리도 지원을 받아 전지훈련을 하며 경험하면 경기력이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뉴시스】 고범준 기자 = 22일 오전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대한민국-쿠바의 15~16위 순위결정전 경기, 양팀이 공수를 하고 있다. 2019.07.22. bjko@newsis.com

대표팀 맏형 권영균도 "우리가 국제대회에 출전하면 잘하는 선수들, 체격이 더 큰 선수들과 해야한다. 전지훈련을 되도록 많이 가고, 직접 상대해봐야 경기에서도 당황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선욱은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우리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찾았다. 이런 무대를 통해 저변이 확대됐으면 좋겠다"며 "한국 수구가 한 걸음 나아가는 대회가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성장하는 꿈나무들이 우리가 거둔 첫 승을 보며 '우리나라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기대했다.

여자 대표팀은 "수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주장 오희지(23·전남수영연맹)는 "수구를 계속 하고 싶다.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홀려드는 것이 있다. 블랙홀 같은 느낌"이라며 "서울, 인천에 클럽팀이 있는데 전남에서도 클럽팀을 꾸려보려고 한다. 마스터스 대회도 참가하고 하면, 여자 수구팀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경다슬은 "계속 수구를 하고 싶다. 남자면 실업팀이라도 있는데 우리는 아니다. 팀원들과 수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간절한 바람을 내비쳤다.

하지만 여자 수구 대표팀의 존속은 현실적으로 힘들어 아쉬움을 남긴다. 수영연맹은 어렵게 틔운 싹을 키워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수영연맹 관계자는 "대표팀을 유지하려면 체육회 예산을 요청해야하는데 경쟁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형평성에 맞지 않아 대표팀을 유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며 "대표팀을 유지해도 선수가 없어 연습이나 경기를 하기가 쉽지 않다"고 전했다.

이어 "지금 시기가 지나면 여자 수구를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해 여러 방안을 검토 중이다. 초·중등부 2, 3개 학교가 합해 클럽팀을 만들어 시범경기를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jinxijun@newsis.com <저작권자ⓒ 공감언론 뉴시스통신사.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이건어때요?
댓글0
0/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