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소중한 인연의 세 분의 어머니

입력 2019.07.18. 08:52 수정 2019.07.18. 17:51 댓글 0개
주종대 건강칼럼 밝은안과21병원 원장

나에게는 어머니가 세 분 계신다. 한 분도 아니고 세분이나 계시다니, 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복인지 모르겠다.

첫 번째 어머니는 나를 낳아주시고 키워주신 분이다. 어머님께서는 교육대학교를 다니셨지만,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가르칠 기회도 없이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결혼 후 바로 육아와 집안일 그리고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약국 보조 업무까지 도맡아 하셨다.

약국은 새벽 5시에 문을 열어서 통금 사이렌이 울리기 전인 밤 12시까지 운영했다. 어머니는 고된 약국 일은 물론 가정생활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 시대 어머니들처럼 우리 어머니도 그녀의 젊음과 꿈을 자기희생과 가족의 사랑으로 대신했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가 끝나고 돌아오면 꼭 밥을 차려 주시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보셨다. 그리고는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라는 겸손과 학업의 중요성을 어린 나에게 일깨워주셨다. 함께 있을 때, 어머니는 대학 시절 즐겨 부르던 가곡집을 꺼내어 나와 노래를 불렀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푸른 물결…’ 그때부터 음악이 내 인생의 일부가 됐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나는 순조롭게 의대에 진학했지만 불행하게도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어머니는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병세에 따라 긴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아픈 세월 속에서 나는 의사로 성장했고, 내면에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그래서 내 어머니께 못다 한 정성을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분들께 쏟아 부었다. 이런 내 마음이 통했는지 30대 후반에 두 분의 어머니를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만나게 됐다. 아직도 내 기억에서 두 분과의 첫 만남을 잊을 수가 없다.

내 두 번째 어머니는 예쁜 하늘색 긴 챙이 달린 모자와 갈색의 세련된 선글라스를 쓰고, 고고한 색깔의 원피스를 입고 병원을 찾아온 환자였다. 그 모습은 마치 엘리자베스 여왕을 떠올릴 만큼 아름다웠다. 어머니의 체구는 작았지만 우아함은 누구와도 견줄 수 없었다. 두 달에 한 번씩 진료실 문을 빠끔히 열면서 “아들, 나 왔네…” 하며 나를 반겨주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 분은 한 교회 목사님의 어머니시다. 어머니는 내가 하는 말에 모두 ‘아멘’이라고 끝을 맺는데, 그 말속에서 나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느껴졌다.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는 자만과 욕심에 빠진 나를 항상 반성하게 해줬고,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헤르페스 각막염 치료를 받으러 내게 찾아오신 60대 후반의 비구니 스님이 있었다. 난 그분을 처음 보았을 때 알 수 있었다. 깊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사람을 꿰뚫어보는 통찰력과 도량이 넓은 스님이라는 것을 말이다.

스님은 작고 나긋하게 말씀하시며 항상 오실 때마다 빈손으로 오지 않고 떡이며 과일을 주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나눔과 자비를 몸소 실천하시는 스님이었다. 나는 기독교 학교를 나왔지만 불교를 믿고 있었다. 이 스님은 지금도 두 달에 한 번씩 진료를 하고 있다. 두 어머님을 처음 만나고 인연을 맺은 지도 긴 세월이 지났다. 내게 사랑을 주시고 미처 돌려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내 첫 번째 어머니는 지난 2017년에 돌아가셨다.

영국 백작 부인의 품위와 고귀한 자태 그리고 긴 챙이 달린 모자를 늘 쓰신 목사님 어머니는 병원에 올 기력이 없어 지금은 작년부터 요양병원에 계신다. 대신에 목사님 아들과 며느리가 내 환자가 돼 찾아온다.

스님은 이제 걸음걸이가 힘들어 두 달에 한 번 오는 것도 힘들어한다. 엊그제 상좌 스님의 팔에 기대어 나를 보고 돌아가셨다. 아마도 치료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힘이 있을 때 아들인 나를 한 번 더 보러 오셨을 거다. 그런 생각을 하니 깊은 슬픔이 밀려온다.

세월에 밀려 삶이 늙어간다는 것은 익숙한 것과 멀어지고,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게 되는 것이다. 단지 몸이 아픈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그날, 난 스님이 가신 엘리베이터 쪽을 바라보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또 닦았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제가 사는 날까지 기억하겠습니다. 내 어머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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