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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약자를 필요로 했다, 최영건 '수초 수조'

입력 2019.07.18. 10:40 댓글 0개

【서울=뉴시스】신효령 기자 = "내가 얼마나 서툴거나 어리석은지와 무관하게 수초는 일단 우리가 기르기로 한 이상 훼손되지 않고 처음처럼 물속에서 둥실둥실 잎과 줄기를 흔들며 살아갈 것이다. 또는 언젠가 훼손의 과정이 도래할 때조차 그 과정은 우리가 기대하고 원하는 방식으로만 진행될 것이다. 그것이 이곳의 법칙이었으며 그 법칙은 영원했다."

최영건(29)의 첫 소설집 '수초 수조'는 연쇄적으로 쓰러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다.

날카로운 시선으로 인간 군상을 탐구했다. 인물들 각각의 허위의식이 충돌하고 스러지면서 피상적 관계가 드러난다. 표제작을 비롯해 '플라스틱들' '감과 비' '더위 속의 잠' 등 7편이 실렸다.

노년은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다. '플라스틱들'은 고부 사이의 갈등, '감과 비'는 늙은 카페 소유주와 젊은 카페 알바생 사이의 갈등, '더위 속의 잠'은 친척 할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대학생 여성의 불편을 짚었다. 각각의 작품은 흔한 세대갈등이 아니다.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상적 갈등이 아니라 누가 봐도 다른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비가시화된 갈등, 사회적 통념이 감추고 있는 갈등이다. 인간 심연의 고독과 어둠이 짙게 묻어난다.

"은하는 태도들의 정류장이고 그 정류장에는 분노도 슬픔도 사랑도 미래도 과거도 이따금 정차했으나 그중 어느 것도 영원히 멈추지는 않았다. 정류장에 남겨질 수 있는 것은 정류장뿐이었다."

"불행을 인정하는 사람은 약자가 되고 말았다. 세상은 약자를 필요로 했다. 세상의 일부는 그런 요구로 구성되어 있었다. 신은 희생자가 될 생각이 없었다."

2014년 '문학의 오늘'로 등단한 최 작가는 장편소설 '공기 도미노'를 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동대학원 석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작가의 말에 "돌이켜 보면 내가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두려움 때문이었다. 소중한 존재를 잃어버리게 될까봐 늘 두려웠다. 내 어린 시절은 그런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한 발버둥이었고 좀 더 자란 뒤에도 나는 줄곧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고 썼다. "2018년 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정확히는 외할아버지지만 나는 한 번도 할아버지를 외할아버지라고 부른 적이 없으니 이 글에서도 여전히 할아버지라고 부름이 더 익숙하다.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금도 그 느낌은 변함없다. 이 단편집으로 묶인 작품 가운데 어느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 이전에, 어느 것은 죽음 이후에 쓰인 글이다." 240쪽, 1만2000원,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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