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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혐오와 증오로 오염되는 세상"
입력 2019.07.14. 13:06 수정 2019.07.14. 13:06 댓글 0개누군가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이 갈수록 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일상 생활 속에서는 물론이고 전국민을 상대로 하는 국회 연설이나 공당의 대변인 또는 사회 지도층의 발언 속에서도 혐오와 증오가 가득찬 언사들이 넘쳐나고 있다. 중요한 국가정책을 둘러싼 논의 과정에서나 서로 입장을 달리하는 정치인들의 회의, 토론, 논쟁의 자리에서도 이런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상대방을 협의를 위한 논의 상대로 여기기 보다는 혐오와 증오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극단적인 경멸과 저주를 담은 말들이 일상적으로 남발되고 있다. 이런 혐오와 증오의 언사들은 각종 미디어를 통해 모든 국민들에게 전방위적으로 전달되면서 점차 전 사회적으로 전염되고 확산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상대방을 대화의 상대로 여기고 서로 다른 생각과 의견을 조정해가는 합의 과정이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원리라는 점에서 혐오와 증오로 읽히는 말과 행동은 우리사회를 병들게 하는 주범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혐오라는 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혐오사회’가 되었다. 끔찍한 일이다,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는 좀처럼 사용될 일이 전혀 없는 매우 이례적인 단어가 주변에서 자주 동원되는 혐오시대가 된 셈이다. 사전적으로 ‘혐오(嫌惡)는 어떠한 것을 증오, 불결함 등의 이유로 싫어하거나 기피하는 감정으로, 불쾌, 기피함, 싫어함 등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강한 감정을 의미’한다. 혐오나 증오라는 단어는 그동안 강한 부정이나 비판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는 표현 차원에서 사용되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사회적 거부 의사를 상징하는 용어 정도로 사용되었다. 지역 차별이 심했던 시절 특정 지역을 비판적으로 표현하거나 남녀차별이 극심했던 당시의 특정 성(性)에 대한 혐오적 표현 또는 계층적 차별의식을 담은 혐오적 의식이나 표현 등이 그러하다. 그러나 오늘날 ‘혐오’ 문제는 단순한 표현상의 문제이거나 일부 특정 분야에서 나타나는 제한적 사안이 아니라 사회 전체로 번져있는 일상적 현상이자 시대적 이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이유없이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른바 혐오범죄의 발생 빈도가 늘고 있다. 평소에 지니고 있던 특정 계층이나 대상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감정을 행동으로 옮긴 범죄를 혐오범죄라 할 수 있겠는데 이런 류의 범죄일수록 범행 수법이 잔인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형태로 나타난다. 마음 깊숙이 박혀있는 혐오와 증오의 심리가 작동한 범죄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거나 전혀 다른 범행 동기로 가려지기도 한다. 끝내 수사 과정에서 밝혀지지 않은 채 묻혀버린 혐오범죄까지 감안한다면 우리사회 혐오범죄는 훨씬 더 많이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보다 중요한 것은 혐오범죄나 증오심에 의한 강력사건들이 급증하고 있는 현상이 우리 사회에 보내는 숨은 메시지에 주목하는 일이다. 아직 범죄화하지 않았지만 언제든지 강력범죄로 사회에 충격을 줄 수 있는 혐오심리, 혐오의식, 혐오현상에 대한 보다 세심한 관찰과 분석 그리고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이유이다.
15년 이상 전 세계 분쟁지역을 누빈 저널리스트이자 ‘혐오사회’의 저자 카롤린 엠케는 “일정한 매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는 혐오와 증오의 대상은 특정한 사회적 표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멸시와 배제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 때 바로 그 ‘표준’을 누가 만들었는지에 대한 질문과 함께 ‘표준’은 이른바 “순수성에 대한 맹신이나 폭력적인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그녀는 편견이 개개인의 다양성을 지우고 집단의 편견을 덧씌워 혐오하거나 증오해도 마땅한 존재로 만들며 편견에 근거한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행위를 벌인다고 주장하면서 우리가 누군가를 집단적으로 혐오해도 좋은 이유같은 것은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특히 그녀의 책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동질성, 본연성, 순수성에 대한 맹신으로 집단적 혐오와 증오가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이를 멈춰 세우는 방법은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혐오시대를 현명하게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나와 다른 진영, 지역, 계층, 취향, 배경, 주장에 대해 단지 서로 ‘다를’ 뿐이지 결코 ‘틀린’ 게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고 이를 실천하는 일일 것이다.
- <기고>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나는 파리 19구에 산다. 서민 동네이자 치안이 나쁘기로 소문난 구역이라 한국인은 거의 만나기 어렵다. 옆방 이웃은 난민 출신이다. 우리는 파리 주민이자 이방인이다. 남의 나라에서 남루하게 살아가는 처지라 생활이 풍족하지는 않다. 대신에 1980년대 한국 달동네에서 있었을 법한 일화가 가끔 일어난다. 어느 방에서 아이가 너무 울면 문을 열어 남의 아이를 안고 달래준 달지, 이 빠진 접시에 음식을 담아 맛보라고 가져다준달지….벽은 소음에 취약해 옆방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소상히 알려준다. 이웃으로 살면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소리로 확인한다. 옆방에서는 아프리카 노래가 자주 흘러나온다.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로 노래를 불러주곤 했다. 밝은 리듬에 콩룩콩탁 거리는 발음이 사랑스러운 노래다. 내용을 알 수 없지만 밝고 흥겹다. 때로는 이 귀여운 노래 위에 시름이 느껴질 때도 있다.낯선 리듬과 노랫말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새댁의 하루가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옆방에서는 나의 한국어를 꽤나 들었을 것이다. 내가 일 때문에 지방에 며칠 다녀왔을땐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며 새댁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한 적도 있다.옆방 새댁이 어떤 경로로 파리에 오게 됐는지 나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를 데리고 미장원으로 출근한다는 정도만 안다. 지하철역에서 우연히 옆방 모자를 만났다. 넓은 천을 이렇게 저렇게 꼬아 머리에 두르고 아프리카 스타일 프린트가 화려한 외투로 한껏 차려입었다. 예쁘다. 지하철 의자에 나란히 앉은 모자를 맞은편에 앉은 내가 핸드폰으로 찍는다. 엄마 등에 업혀 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칭얼대던 아기는 어느덧 엄마에게 프랑스어로 떼를 쓸 정도로 컸다.일하러 가느냐고 그녀가 내게 묻는다. 지하철 창문 쪽으로 유리 닦는 시늉을 하며 청소라고 프랑스어로 발음한다. 나는 요즘 청소 일을 한다."이브람 엄마도 일하러 가요? 미장원이 어디에 있어요?" "아뇨, 오늘 일 안 해요. 그런데... 20유로... 있어요? 20유로만 빌려줄 수 있어요?"돈 빌려달라는 말에 머릿속이 순간 복잡해진다. 20유로면 3만 원정도 된다. 지갑 속에는 꼬깃꼬깃한 5유로짜리 지폐와 동전이 들었다. 주로 카드를 사용하니 현금 가지고 다니는 일이 드물다. 잠깐 고민 후 돈이 없다고 대답한다. 새댁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한다. 표정에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해 미안할 지경이다."이브람 엄마, 집에 지갑 놓고 나왔어요?" "미장원 일 못한 지 한 달도 넘었어요. 체류증이 끝나서 일 못해요. 먹을 게 없어요. 파리에 친구가 없어요."난민 체류자격 기한이 끝나 미장원에서 해고된 모양이다. 프랑스에서 체류증 없이 노동하는 건 불법이다. 두 모자가 지하철에서 내린다. 엄마에게 잡히지 않은 손을 연신 흔들며 아이가 떠나는 내게 인사한다. 옆방에 사는데 밖에서 만나니 새삼 반가운 모양이다. 아이의 작고 까만 손을 바라보며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 유튜브 아카이브에서 1980년 어느 날의 '이종환의 디스크쇼' 오프닝이 들린다.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이따금 향수병에 시달릴 때 한국 라디오가 위안이 돼준다.성북구 종암동 이창수 씨의 엽서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열망하는 나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어느 청취자의 절절한 사랑고백이다. 1980년 이창수 씨는 그녀에게 구애하며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를 신청했다. "당신이 지쳐 작게 느껴질 때 두 눈에 눈물 고일 때 내가 눈물을 닦아드릴게요. 당신이 잘 지내지 못하고 당신이 길에서 떠돌 때 나는 당신의 편이에요. 외로운 당신을 위해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당신을 지켜줄게요…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 창수 씨는 사랑을 이루었을까. 험한 세상에서 그녀를 위해 다리가 되어주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험한 세상 다리가 되어준 적 있는가.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인다.지하철에서 찍은 사진을 새댁에게 전송한다. 사진 속에서 아이가 손가락으로 V를 그려 보이고, 엄마는 공작새처럼 화사하게 웃고 있다. "메르시 마마"라고 답장이 온다. 신혜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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