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코미디언을 위협하는 사회

입력 2019.06.27. 19:55 수정 2019.06.27. 19:55 댓글 0개

서슬퍼런 박정희 유신정권시절,‘웃으면 복이와요’라는 코미디프로가 인기였다. 1세대 코미디언 서영춘·배삼룡·구봉서 등이 자빠지고 엎어지는 과잉 연기로 웃음을 자아내곤 했다. 이들의 코미디 소재는 주로 거지나 도둑이었다. “저질스럽다”는 비난에 시달렸지만 정치 풍자는 꿈도 꾸기 힘들었다. 정치인, 기업인 등 이른바 좀 나가는 사람들을 소재로 끌어들였다가는 “천박하게 코미디 소재로 삼았다”고 경을 칠게 뻔해서 였다.

한번은 거지를 소재로 한 코미디 프로가 검열에 걸려들었다. 청와대 인사가 그 프로를 내 보낸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조국 근대화에 맞지않게 거지를 TV에 등장시키는 거야?”라고 한마디 하자 그날 이후 TV에서 거지가 사라져버렸다. 당시 코미디의 주요 소재였던 거지가 사라져 도둑만 외롭게 남았다는 ‘웃픈’ 전설이다.

요즘은 그 때와 사뭇 다르지만 코미디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코미디언보다 웃기는 사람들이 많기때문이다.

지난 26일 자유한국당 여성 당원대회에서 나온 퍼포먼스가 사람들을 즐겁게(?)했다. 퍼포먼스 도중 갑자기 뒤로 돌아 엉덩이 춤을 춘 여성 당원들의 속옷에 ‘한국당 승리’라고 써있었다. 이를 본 당 지도부 한 관계자는 “좀 더 연습해 우리 당을 대표하는 공연단으로 만들자”는 주문을 했다니 한편의 코미디로 손색이 없다.

이에 앞서 정헌율 익산 시장은 지난달 11일 원광대에서 열린 ‘다문화 가족운동회’에 참석, 다문화 가족을 “생물학적 잡종”이라고 부적절하게 표현해 적잖은 논란을 빚었다.

여성 당원의 엉덩이춤 퍼포먼스에 “좀 더 연습해 우리당 대표 공연단으로 만들자”는 한국당 지도부 관계자의 탁월한 유머 감각, 그리고 사람을 동물에 비견해 다문화 가족을 “잡종”으로 표현한 정 시장의 언어 감각. 사람들로 하여금 (헛)웃음을 금치못하게 하던 (쓴)웃음을 짓게하던 코미디언 해먹고 살기 힘들게 만드는 감각인듯 하다.

투병생활을 하던 서영춘이 문병 온 후배에게 “요즘 어떻게 사느냐?”고 묻자 후배는 “아이고! 죽지못해 삽니다”고 했다. 그러자 서영춘은 대뜸 “이놈아! 나는 살지못해서 죽는다”고 했단다.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던 토종 코미디언 답다. 나윤수 칼럼니스트 nys8044@hanmail.net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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