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기억

입력 2019.06.25. 18:27 수정 2019.06.25. 18:27 댓글 0개
최민석의 약수터 무등일보 사회부 부장

사람은 불쾌한 기억을 잊어버림으로써 자신을 지킨다고 한다. 뇌 활동도 생존의 방편이란 의미다.

69년 전 1950년 일어난 6·25전쟁을 겪은 이들의 기억도 그렇다. 역사는 이 전쟁을 ‘한국전쟁’이라 불렀다. 한가한 일요일 새벽 모두가 잠든 시각에 북한은 소련제 T-50 탱크를 앞세워 38선을 넘었다.

미국은 앞서 ‘애치슨 라인’이라 명명된 국무부 발표를 통해 극동방어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시키고 남한 주둔 병력을 철수시켰다. 전쟁을 부른 결정적 원인이었다.

역설적이게도 북한군의 주력무기였던 소련제 탱크는 2차대전 중 독소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소련이 총 200만명의 사상자를 낸 스탈린그라드전투에 동원했던 무기였다. 세계 전쟁 역사상 최악의 전장에 투입됐던 대량살상무기가 두만강과 38선을 넘어 또 다시 전쟁에 활용됐다.

세계가 미소 양 진영으로 분열했던 냉전시대 한반도는 최전선 대결장이었다. 연합군 승리로 일본 식민지에서 해방됐지만 한국은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로 분단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남과 북은 극렬한 좌우 이데올로기에 따른 극단의 대결 구도 속에서 만 3년 1개월 동안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렀다. 우리 역사상 최대 비극이었다. 36년여에 이르는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도 우리는 한겨레라는 끈끈한 정서적 유대와 단결로 어둠의 시대를 이겨냈다. 그러나 분단은 전쟁을 불렀고 한반도는 온 천지가 피로 물들었다.

한국전쟁은 군인과 민간인 사망자 등 총 568만명의 사상자를 냈다.국토는 잿더미가 됐고 국민들은 삶터를 잃었다. 1천만 이산가족이 고향을 등졌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오로지 총소리도 폭격도 혹은 전쟁을 겪었다는 기억 자체도 잊은 채 오로지 모든 눈과 귀를 생존에 집중했다. 모두가 기억을 숨긴 채 살아남는데만 몰두했다.

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으로 포성은 멈췄다. 전투는 멈췄어도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분단의 비극과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남북화해 무드 속에서도 여전히 양 진영은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

평화의 길은 멀고 험하다. 우리 모두가 한국전쟁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다.

최민석 사회부부장 cms20@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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