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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제 31년만에 폐지…수요자 중심 활동지원 확대

입력 2019.06.25. 11:00 댓글 0개
1~6등급 대신 중증(1~3급)·경증(4~6급) 단순화
건보료 감면 등 23개 국가서비스 지원대상 확대
내년 생계급여 중증장애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개별 욕구·환경 고려한 '종합조사'로 서비스 지원

【세종=뉴시스】임재희 기자 = 저마다 여건이 다른 데도 장애등급 1~6급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획일적으로 차등 제공해 온 장애등급제가 도입 31년 만에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주요 서비스는 장애인 욕구와 환경 등을 고려한 종합조사를 통해 수요자 중심으로 제공된다. 활동지원 서비스 지원 시간을 늘리고 기존 수급자가 탈락하더라도 최소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보건복지부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종합조사 도입, 전달체계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수요자 중심 장애인 지원체계 구축' 주요 내용과 향후 정책방향을 25일 발표했다.

◇획일적 장애등급 31년만에 폐지…'중증''경증'으로만 등록

1988년 도입된 장애등급제는 15개 장애유형별로 의학적 심사에 따라 중증도를 구분하는 객관적 기준이다. 장애인에 대한 각종 복지제도와 지원이 이 기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의학적 판단이 복지서비스 제공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장애인 개개인의 욕구나 환경 등을 고려한 수요자 중심 지원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장애인들을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이에 정부는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국정과제로 채택하고 2017년 10월 민관협의체를 구성, 관계부처 공동 준비 과정을 거쳐 단계적 폐지를 추진했다. 여기에 지난해 12월 개정 장애인복지법 등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법적 근거가 마련돼 올해 7월부터 폐지 절차에 들어가게 됐다.

우선 1등급(최중증)에서 6등급(경증)으로 구분해 온 장애등급이 도입 31년 만에 사라진다.

다만 1~3급 중증 장애인이 우대혜택을 그대로 받을 수 있도록 장애정도에 따라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중증)'과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경증)'으로 구분하는 장애인 등록제도는 유지된다.

종전 1~3급은 중증, 4~6급은 경증으로 인정되므로 장애인 심사를 다시 받거나 장애인등록증(복지카드)을 새로 발급받을 필요는 없다. 새 등록증에는 장애인단체 의견을 수렴해 '중증'과 '경증'으로만 표기된다.

장애등급 폐지에 맞춰 내년에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생계급여부터 중증장애인에 대한 부양의무자 기준도 폐지된다. 소득이 없는데도 부양할 가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지원을 받지 못했던 '비수급 빈곤층' 같은 사각지대가 장애등급제 폐지로 다소 해소될 전망이다.

당장 등급을 기준으로 지원되던 141개 서비스 중 12개 부처 23개 서비스의 대상이 확대된다. 1·2급 장애인에게만 제공되는 서비스 범위가 3급으로 넓어지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1·2급에 한해서만 30% 보험료를 감면해주는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보험료 경감제도다. 교통약자의 이동지원을 위해 휠체어 탑승설비 등을 장착한 특별교통수단 법정대수도 현재 200명당 1대(3179대)에서 150명당 1대(4593대)로 45% 확충된다. 마찬가지로 건강보험 장애인보장구와 장애인 보조기기 품목도 점차 늘어난다.

지방자치단체 조례로 제공되는 장애인 서비스 902개 중 200여개 사업이 확대될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장애등급을 규정하고 있는 조례 1994개에 대한 정비 작업이 진행 중이다.

◇욕구·환경 고려 '종합조사표' 도입…활동지원 서비스 확대

복지서비스 대상자를 줄 세우기 하던 등급이 폐지됨에 따라 서비스는 '장애인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장애인 욕구·환경 등을 고려해 제공된다.

종합조사는 서비스 신청인의 일상생활 수행능력, 인지·행동특성, 사회활동, 가구특성, 주거특성 등 조사항목별로 문항별 점수를 국민연금공단이 현장조사를 통해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선 다음달엔 활동지원급여, 장애인 보조기기, 장애인 거주시설, 응급안전서비스 등 4개 분야에 종합조사가 도입되고 특별교통수단 등 장애인 이동지원 분야는 2020년, 장애인연금 등 소득 및 고용지원 분야는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특히 장애인 일상생활과 밀접한 활동지원 서비스는 종합조사 적용으로 최대 지원시간이 현행 인정조사상 441시간(일 14.7시간)에서 39시간 늘어난 480시간(일 16.0시간)으로 확대된다. 월평균 지원시간도 종전 120.56시간에서 127.70시간으로 늘어나 최중증 장애인 보호와 장애유형 간 형평성 있는 지원이 가능해질 것으로 복지부는 기대했다.

활동지원 서비스 이용 시 본인부담금은 최고금액이 현재 32만2900원에서 15만8900원으로 50% 이상(16만1450원) 줄어든다.
【세종=뉴시스】장애등급 폐지에 따른 활동지원 서비스 신청대상 및 지원시간 확대. (그래픽=보건복지부 제공)

서비스 양을 판가름할 연금공단의 평가매뉴얼과 세부기준은 장애유형별 특성이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세분화했다는 게 복지부 설명이다. 예를 들어 '옷 갈아입기' 항목 평가 시 시각장애인의 경우 옷의 청결상태, 색상과 무늬, 앞·뒤를 구별하기 어려워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 등을 고려해 평가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기존 활동지원 수급자가 2~3년간 갱신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일부 지원시간이 감소하거나 탈락할 수 있다는 점인데, 복지부는 다음 갱신조사 전까지 종전 활동지원시간을 그대로 인정해 지원수준의 급격한 감소를 막고 수급탈락 예상자에 대해선 특례급여를 인정해 최소 47시간은 보장하기로 했다.

활동지원 서비스 관련 다음달 첫 종합조사 대상은 갱신 기간이 도래한 8만1000여명 정도로 추산된다.

종합조사 이후에도 3개월 안에 '종합조사 고시 개정위원회'를 구성해 1년 안에 장애인단체 의견과 제도운영 점검 결과 등을 토대로 종합조사표를 개선하고 이를 3년마다 정례화한다.

복지부는 내년도 장애인 활동지원 예산으로 올해(1조35억원)보다 2000억원 가까이 늘어난 1조2000억원을 기획재정부에 요구한 상태다.

◇활동지원 서비스 등 수급 자동안내로 전달체계 강화

장애등급 폐지, 지원 확대와 함께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전달체계도 강화한다.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을 통해 장애유형, 장애정도, 연령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선별하고 등록 후에도 서비스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 직접 찾아 안내할 계획이다. 현재 장애인연금은 소득수준 등 변경 시 '행복e음'으로 수급자격을 자동 확인해 신청을 안내하는 '서비스 수급희망 이력관리'를 활용하고 있는데 이를 활동지원 서비스, 장애수당에도 확대키로 했다.

읍면동의 찾아가는 상담 대상을 독거 중증장애인, 중복 장애인 등 위기가구 장애인으로 확대하여 복지사각지대를 최소화한다. 이 때 장애인복지관, 발달장애인센터 등 지역사회 관련 기관의 전문인력이 동행하도록 해 장애유형별 이해나 전문성을 최대한 담보한 상태에서 충실한 상담이 이뤄지도록 개선한다.

시·군·구 기초자치단체에는 장애인 전담 민관협의체를 설치해 장애인 특화 사례관리를 강화한다. 협의체는 희망복지지원단(통합사례관리 전담조직), 장애인부서, 장애인복지관, 지역사회복지협의체 등 공공과 민간 장애인 관련 전문기관들이 모두 참여한다는 원칙하에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설치한다.

민관협력에 기반한 장애인 사례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장애인복지관 전문인력 확충도 함께 추진한다.

나아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를 기반으로 일상생활지원, 이동지원, 소득고용지원, 건강관리 등 장애인의 지역사회 자립을 위해 꼭 필요한 서비스를 단계적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활동지원 서비스는 주간활동 등 서비스 종류를 다양화할 필요성이 높은 것으로 복지부는 판단했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상당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장애인 비율이 14.4%(보건사회연구원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달하는 반면 65세 미만 장애인 137만명 중 이용률이 5.8%(8만명)에 불과하다.

활동지원 등 4개 서비스는 주민등록상 주소지 읍·면사무소 및 동주민센터를 방문하거나 우편, 팩스, 대국민 복지포털 '복지로(www.bokjiro.go.kr)'에서 신청하면 된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수요자 중심의 장애인 지원체계로의 전환은 장애계의 오랜 요구사항을 수용해 31년 만에 이뤄지는 것으로 장애인 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장애인의 욕구·환경을 고려하는 수요자 중심으로 대전환하는 출발점"이라며 "정책 당사자인 장애인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의견수렴과 소통에 더욱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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