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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헝가리 오케스트라의 위로, 한국 가곡 '기다리는 마음'

입력 2019.06.25. 10:48 댓글 0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추모곡 '기다리는 마음' 연주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일출봉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봉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기다려도 기다려도 님 오지 않고 빨래소리 물레소리에. 귀를 기울이네.”

컴컴한 마음 동굴 속에 갇힌 슬픔이 잠시나마 음악 앞에 경건하게 무릎을 꿇게 만드는 순간. 24일 오후 8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 단원들이 한국 가곡 ‘기다리는 마음’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헝가리 출신 지휘자 이반 피셰르(68)의 지휘로 위로의 진심을 한데 모은 BFO 단원들이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 추모곡은 경건했다.

5월29일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한국인 관광객 등 33명을 태운 '허블레아니'는 크루즈선 '바이킹 시긴'에 들이받혀 침몰됐다. 24일 현재 기준 생존자는 7명, 사망자는 23명이다. 실종자 3명 가운데 1명은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

비탄과 안타까움으로 뒤범벅이 된 미로에서 음악은 말로는 건넬 수 없는 그 무엇을 해내려고 했고, 해냈다. 공연기획사 빈체로 관계자는 “한국 가곡 ‘기다리는 마음’은 이반 피세르가 고심해서 선택했다”고 전했다.

앞서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내한공연에서 추모를 예고했던 피셰르는 공연 시작 전 “우리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왔다. 최근 참담한 사고가 있었던 곳이다. 이 사고로 인해 많은 한국인이 희생됐다”고 말했다.

추모 발언하는 이반 피셰르

“아주 비극적인 사고였다. 우리는 유족들에게 거대한 슬픔을 안긴 이 사고에 대해 아주 큰 슬픔을 느낀다. 헝가리 국민과 부다페스트 시민들, 단원들과 나는 온 마음을 다해 유족의 슬픔과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했다.

야노시 아데르 헝가리 대통령도 공연 프로그램북의 글을 통해 애도를 표했다.

롯데콘서트홀 관계자는 “추모글을 오케스트라가 싣자고 요청했다”면서 “이반 피셰르가 추모 멘트를 즉석에서 통역을 해달라고 청했다. 비교적 쉬운 영어이긴 하지만 관객 모두 다 잘 알아듣기를 바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피셰르와 BFO는 1부에서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피아니스트 조성진(25)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 2부에서 베토벤 피아노 교향곡 7번 등을 연주했다.

피셰르, BFO, 조성진은 25일 서울 예술의전당, 26일 부산문화회관, 27일 대구콘서트하우스, 28일 대전예술의전당 무대에도 오른다. 프로그램은 다르지만 매번 ‘기다리는 마음’을 불러, 한국인과 헝가리 유람선 침몰 사고에 대한 아픔은 계속 나눈다.

【제주=뉴시스】강재남 기자 = 24일 오후 제주항 제7부두에서 세월호 참사 100일 백건우의 영혼을 위한 소나타 추모공연이 열린 가운데 피아니스트 백건우씨가 추모연주를 하고 있다. 2014.07.24. hynikos@newsis.com

음악은 사고로 인한 희생자와 유족들 그리고 이 슬픔에 공감하는 이들에게 말로 전할 수 없는 위로를 대신 해오려 노력해왔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은 2014년 7월24일 강원 평창에서 열린 제11회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연주된 러시아 작곡가 안톤 아렌스키의 피아노 삼중주 D 단조 '비애(Elegia)'가 대표적이다.

아렌스키가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작곡을 공부하던 당시 원장인 첼리스트 칼 다비도프의 죽음을 기리며 만들었던 곡. 첼리스트 정명화(75)·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71) 자매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56)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곡으로 연주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3)도 같은날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올렸다. 제주항에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베토벤이 아이가 먼저 세상을 떠나 슬퍼하는 어머니를 위해 연주한 곡인 베토벤 비창 소나타 작품 13번 2악장 등을 연주했다.

2016년 11월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데이비드 진먼(83)이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들려준 폴란드 작곡가 구레츠키의 교향곡 3번 ‘슬픔의 노래’ 역시 웅크려있던 먹먹함의 갈퀴가 마음을 짓이기는 듯했다.

콜드플레이 콘서트 중 노란리본

더블베이스의 저음에서 시작해 첼로, 바이올린으로 점점 음이 쌓이는 여정은 고난의 길이자 위로의 위대한 항해였다. 구레츠키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안타까운 혼을 위해 쓴 곡은, 죽은 이의 부정을 씻어주는 일종의 씻김굿이자 레퀴엠으로 명명할 만했다.

교향곡이지만 소프라노가 부르는 노래가 깃든 세 악장은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비가(悲歌), 아우슈비츠에 갇힌 유대인 소녀의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한 기도문이다.

진먼은 한국 청중에게 위로의 지휘자로 기억된다.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직후 내한한 톤할레 오케스트라를 이끈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해 바흐의 ‘에어(Air)’를 들려주기도 했다.

대중음악도 위로의 힘은 크다. 세월호 3주기인 2017년 4월16일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가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5만 관객의 손목에 채워진 LED 발광 팔찌인 ‘자일로 밴드’의 노란 불빛과 제목만으로도 현 시국에 위로가 되는 ‘옐로’를 부르는 도중 스크린에 노란 리본을 선보이고 보컬 크리스 마틴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10초간 묵념을 제안했다.

여전히 끝나지 않는 상실감과 아픔에 음악의 꾸준한 위로는 음악이 단지 주파수, 음의 길이 등으로 구성된 물리적인 것을 뛰어넘는 영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걸 입증하고 있다. 백건우는 “음악이라는 것은 강한 언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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