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칼럼> 노 시인의 아릿한 그리움

입력 2019.06.24. 17:09 수정 2019.06.24. 17:09 댓글 0개
조덕진의 어떤 스케치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칠순이 훌쩍 넘은 김기리 시인이 사람살이의 애틋함을 소환한다.

밥 한 그릇 권하는 시인의 다정이 여러 상념을 불러일으켰다. 그렇지 않아도 대구 근대골목의 근대박물관을 보고 마음이 아릿하던 즈음이었다. 근대박물관은 일제 강점기 일제 식산은행을 문화재로 지정 운영하고 있어 금남로 구 조흥은행 건물이 절절히 생각났더랬다. 조흥은행 철거에 가슴아파하던 시인의 꿈결처럼 날아온 안부.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조흥은행 이야기를 전하며 눈가에 눈물이 어리던 모습 선하다.

부끄럽지만 시인을 만나기 전까지 조흥은행이 헐린 사실도 몰랐다. 문학상 수상차 만났던 시인은 한담 중에 ‘조흥은행 건물이 헐렸다. 문화도시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며 현장을 직접 안내했다.

조흥은행은 일제 강점기인 1920년대 광주 유지들이 지역민을 위해 건립한 유서깊은 문화유산이다. 건축물은 물론이고 건축에 어린 지역 민족자본의 정신과 혼을 그 무엇으로 값을 매길 수 있겠는가. 허나 자본에게는 무의미했다. 조흥은행 후신인 신한은행은 자산관리 차원에서 민간에 매각했다. 영혼없는 동구청의 철거허가, 일고의 주저함도 없는 자본의 철거. 흔적까지 지워졌다. 정말 놀라운건 한 역사가, 우리 삶의 한 얼굴이 그렇게 파괴되는 현실이 지역사회에서 논란거리도 안됐다는 사실이다. 지역 선대들의 절절한 혼은 그렇게 무력하고 영혼없는 후손들에 의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문화예술도시 맞나. 인권도시라는 이름도 부끄럽다. 생물학적 생명 뿐 아니라 그곳에 깃든 마음과 영혼의 그림자까지 껴 안을 때라야 진정한 인권도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시인은 한국 근대 영화사를 간직한 광주극장의 숨은 주인이다. 광주극장 뒤편 영화의 집은 그녀가 새댁시절부터 살았던, 그녀의 살림집이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민족교육 등 민족문제에 헌신해온 유은 최선진 선생의 맏 며느리다. 알려졌다시피 광주극장도 일제의 조선인 차별에 항의해 유은선생이 시민들을 위해 설립한 문화공간이다. 금싸라기 땅에 자리한 광주극장이 돈 안되는 오래된 극장을 유지하는 배경이다.

극장에 대한 시인의 애정은 각별하다. 영화의 집에서 시민들이 다양한 문화행사를 하는 것을 보고 뿌듯해 한다. 시민들이 찾아줘서 고맙다는 말도 전한다.

근현대사를 시민들과 함께 해온 광주극장은 나이만큼 낡았다. 사무실은 빗물이 새고 퀴퀴한 내음은 동무다. 재정여건상 보존을 위한 리모델링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다만 광주시민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간직된, 유은 선생의 유지가 살아있는 극장은 지역민의 문화자산으로 지켜갈 생각이란다.

현대인들은 오늘만 살 것처럼 앞으로만 내달린다. 어제의 나와 그 이전의 내가 오늘의 나라는 사실은 간과된다. 그렇게 내달리다 길을 잃고 유령처럼 오늘을 부유한다. 그 유령들 틈바구니서 사람의 얼굴을 한 이들이 마음, 가치 등을 걸러낸다.

최근 광주시가 국토부 건축자산 가치발굴 공모사업에 선정돼 지역 건축물들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가능하게됐다. 한옥 등 건축자산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건축자산 현황과 가치를 발굴해 기록 하게 된 것이다. 그런 연후라면 제 2의 조흥은행 사태는 막아질까. 그래야한다, 수치는 한번으로 족하다.

아트플러스 편집장 겸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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