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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금난새 "오케스트라는 서비스, 청중 대하는 태도가 중요"

입력 2019.06.20. 11:29 댓글 0개
클래식 마에스트로의 대명사
내년이면 국내 데뷔 40주년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금난새 지휘자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19. chocrystal@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지휘자 금난새(72)는 ‘클래식음악 대중화의 대부’다. 대한민국 지휘자의 상징과도 같은 금난새를 어려서 접하고, 성장해서도 일상에 흐르는 클래식음악을 통해 그와 재회하는 남녀노소가 많기도 하다.

어느덧 내년이면 국내 데뷔 40주년이다. 1977년 한국인 최초로 ‘카라얀 지휘 콩쿠르’에서 입상한 그는 1980년 귀국, KBS교향악단(옛 국립교향악단)을 지휘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클래식음악은 특정층만 향유하는 고급문화가 아닌, 평범하고 힘든 사람들의 것임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12년간 이끈 국가 지원의 KBS교향악단 대신, 자신을 필요로 한다는 이유 만으로 지역 악단인 수원시향 상임지휘자로 옮겼다. 주변에서는 ‘대기업을 그만두고 중소기업으로 간다’며 놀라워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금난새 지휘자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19. chocrystal@newsis.com

서울대 작곡과와 베를린음대에서 지휘를 공부한 금난새는 도시마다 고르게 문화가 분포돼 있는 독일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한국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실천한 40년 세월이다.

KBS교향악단에 있는 동안 한해도 거르지 않고 상반기와 하반기 한번씩 지역 공연을 했다. 제대로 된 홀을 갖추지 못한 중소도시에서는 영화관에서 연주하기도 했다. KBS교향악단을 마다한 채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수원시향을 택한 것, 과연 금난새다웠다. 금난새의 성가 덕분에 수원시향은 삼성에게서 후원금 20억원도 받을 수 있었다.

금난새의 실험은 멈추지 않았다. 세금에 의존하기 싫다며 제도권 밖에서 민간 오케스트라인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옛 유라시안 필하모닉)를 창단, 기업의 기부를 이끌어내는 발판을 마련했다. 음악과 경영을 접목한 ‘벤처 오케스트라’ 시스템을 고안한만큼 ‘음악 CEO’를 자처한다.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과 함께 지역 오케스트라 활성화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성남시 총예술감독 겸 성남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도 맡고 있다. 그가 지휘하는 정기연주회는 모두 매진이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 받는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 차원이 아니에요. 청중이 찾아오는 오케스트라가 좋은 오케스트라죠. 연주한다는 것은 서비스업이에요. 청중을 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특히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오케스트라의 경우, 우리의 재능을 연주로 돌려드려야 합니다.”

금난새는 뛰어난 클래식 번역가이기도 하다. 어렵게 느껴지는 클래식 음악을 청중의 눈높이에 맞춰 들려준다.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많은 대중을 위한 음악회를 자주 여는 이유다.

금난새는 이솝우화 ‘여우와 두루미’를 인용했다.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거예요. 상대가 준비는 안 돼 있는데 자기 위주로 포커싱을 하면 안 됩니다”고 강조했다.

청중의 선호도를 보면, 금난새가 얼마나 대중과 가까운 지휘자인지 알 수 있다. 매해 100회 이상, 10년 이상을 지휘해 왔다. 80% 이상이 초청 연주다. 수요가 없으면 불가능한 기록이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금난새 지휘자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19. chocrystal@newsis.com

티켓예매사이트 인터파크의 ‘2019 제14회 골든티켓 어워즈’ 클래식·무용·전통예술 부문 ‘아티스트상’도 받았다. 2018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상연된 공연을 대상으로 티켓 판매량, 판매 랭킹 점수를 집계해 수상자를 선정했다. 결국 청중이 주는 상인데, 금난새는 2016년부터 3년 연속 이 상을 품에 안았다.

청중에게 받은 사랑을, 그 이상으로 돌려준다. 최근 성남시향 단원들과 십시일반 모은 성금 1000여만원을 강원 산불 피해 주민들을 위해 기부했다. 단발성도 아니다. 2000년 강원 산불 피해 때도 세종문화회관에서 화재민을 돕는 기부콘서트를 열고, 수익금을 연주자들과 함께 기부했다.

청소년들에 대한 헌신도 재능기부 이상이다. 2013년부터 청소년·청년 오케스트라 교육과 문화 조성에 힘을 싣기 위해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을 겸하고 있다. 그해는 서울예고 개교 60주년이었다. 금난새는 이 학교 음악과 11회 동문이기도 하다.

교장직을 제의 받았을 때는 연주가 많아 어렵다고 고사했다. 자서전 ‘모든 가능성을 지휘하라’(2015)에도 이런 내용이 잘 나와 있다. 이사장이 서울예고를 맡아달라고 하자 “저는 지금 벌여 놓은 일이 많아서 서울예고 교장을 맡고 싶어도 맡을 여유가 없습니다. 제안은 감사하지만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거절했다. 당시에도 1년에 130회가 넘는 연주를 했으니, 매일 학교에 출근해야 한다면 교장 일을 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이사장은 절실했다. “일을 그만두고 교장을 맡아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지휘자로서 할 일은 하고 나머지 시간에 우리 예고를 맡아주십시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1년에 3일 만 나오셔도 됩니다. 입학식, 졸업식, 개교기념일 3일 만 나오셔도 저는 뭐라하지 않겠습니다. ··· 지금 우리에겐 매일 출근하는 교장보다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는 교장이 필요합니다.”(‘모든 가능성을 지휘하라’ 10쪽)

‘예술가가 되고 싶은 청소년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라는 소명의식도 굳건한 금난새는 결국 어렵게 교장 직을 수락했다.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와 농어촌 희망청소년 오케스트라에도 오랫동안 공을 들였던 그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금난새 지휘자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19. chocrystal@newsis.com

이런 금난새가 학교 출근을 게을리 했을 리는 없다. 약속된 연주를 소화하고 횟수를 조정해가며 틈이 날 때마다 학교에 들러 변화를 시도했다. 학교 행정에 능한 교감 덕분에 교내 일처리가 수월해지자, 외부에 학교를 알리는 데 공을 들였다.

무엇보다 신경을 쓴 부분은 ‘고립형 천재’가 아닌 ‘융합형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다. 앙상블, 즉 다른 분야와 조화하고 타인을 배려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예술가들은 사회와 어떻게 호흡을 할 것인가가 중요해요. 제가 악기 하나를 전공한 것이 아닌 지휘를 공부하다 보니 개인 플레이보다 오케스트라 플레잉이 중요하다는 걸 강조했습니다.”

학생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자유를 줬음에도 단체 연습에 기꺼이 참여했다. 춤곡을 연주할 때 춤을 추듯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는 금난새를 보고 오보에를 불던 남학생이 “귀여워요”라며 웃기도 했다. 무례할 수 있는 말에 기분 나쁠 법도 하건만 금난새는 더 크게 웃었다. 권위를 앞세우기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학생과 음악을 토론하는 것이지, 지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명령을 한다고 연주가 우러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금난새는 서울예고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연봉을 학교에 기부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다. 베를린에서 지휘를 배우는 6년 동안 한 번도 레슨비를 낸 적이 없었던 기억과 감사함 때문이다. “당시 제가 진 (마음의) 빚을 갚고 싶은 뜻이 크다”며 미소지었다.

서울예고는 세계로 뻗어나가는 학교다. 한·일 관계가 정치적으로 냉랭한 가운데서도 지난해 도쿄음악대학과 교류 연주회 ‘피스뮤직페스티벌’을 열었다. 서로의 학교를 오가며 연주했다.

2017년에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명문 콜번스쿨에서 연주하고, 마스터클래스에도 참여했다. 이 학교 학생이 서울예고로 와 연주하기도 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영국 버밍엄음악학교 등과 교류가 예정돼 있다.

금난새는 “음악을 통해 사회, 세계와 호흡을 하는 것이 중요해요. 서울예고가 인터내셔널학교가 아님에도, 세계와 교류를 한다는 것이 교장으로서 뿌듯합니다”라고 한다. “연주뿐 아니라 학생의 모든 가능성을 지휘하는 것이 오케스트라 교육의 중요한 점입니다.”

【서울=뉴시스】조수정 기자 = 금난새 지휘자가 18일 오전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9.06.19. chocrystal@newsis.com

금난새는 세계 곳곳에서 연주했다. 기억에 남는 곳으로는 울릉도를 꼽는다. 2007년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함께 정통 클래식음악을 들려주는 ‘울릉도 음악회’를 계획, 성사시켰다. 섬마을 아이들에게 교향악을 선물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단원들의 배멀미가 문제였다. 김성일 전 공군 참모총장이 문화소외지역에서 공연한다는 대의에 공감, 공군이 보유한 30인승 헬리콥터 3대를 띄워주면서 난관은 해결됐다.

육지에서 울릉도로 갈 때 안개가 자욱해 어쩔 수 없이 배를 이용했지만, 되돌아올 때 헬기가 유용했다. 섬마을에서 잔치가 벌어진 것은 당연했다. 주민 대부분이 처음 듣는 클래식 선율을 낯설어할 것 같았지만, ‘클래식음악 전도사’ 금난새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음악은 청중의 귀에 척척 감길 수밖에 없었다. 금난새는 “음악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며 즐거워했다.

국고 지원 없이 2016년까지 12년간 펼쳐온 ‘제주 뮤직아일페스티벌’,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뉴욕에서 수준 높은 실내악 음악을 들려준 ‘맨해튼 체임버 뮤직페스티벌’ 등도 금난새가 음악의 다양한 가능성을 실험하고 확인한 축전들이다.

“독립적인 것을 좋아해요. 특정 유산을 물려받기보다는 제 힘으로 성장하고 싶어요.”

데뷔 40주년을 코앞에 둔 노장은 여전히 20대의 언어로 말했다. 손에 꼭 쥐고 있는 지휘봉이 용맹한 기사의 창처럼 번쩍였다. 무엇이든 뚫고 새롭게 나아갈 기세가 벼락처럼 배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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