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한창작소

나는 오늘 적극적으로 과거가 된다.

입력 2019.06.20. 09:50 댓글 0개

2019년이 주는 두 번째 연휴였다. 연휴 동안 만날 사람도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었다. 약간의 두통과 목의 결림으로 아침을 시작했다. 출근하기 위해 늘 일어나던 그 시간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일부러 알람을 맞추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시간을 기억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일어나자마자 담배를 물고 원룸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4월이 지나고 5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졌다. 미세먼지는 줄었지만 대신 꽃가루가 날렸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길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연휴의 아침은 한산했다. 전남대로 등교하는 학생들도 보이지 않았고 출근 하지 않은 직장인들의 차들이 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담배를 피운 기분인데 아직 반절도 태우지 않았다. 문득 오늘이 길게 느껴졌다.

다들 딱히 어디로 가고 싶지 않았나보다.

반절 남은 담배를 꺼버리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대충 벗어 놓은 옷더미가 보였다. 머리카락이 바닥에서 자라나기라도 한 것처럼 군데군데 떨어져있었다. 연휴가 끝나기 전에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딱히 할 게 없었다. 폰으로 유튜브를 보다가 명치어림 쯤에 핸드폰을 내려두고 방안을 둘러봤다.

지겨웠다. 책장에 꽂힌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tv, 컴퓨터, 플레이스테이션이 보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곰인형을 뒤에서 않고 있는 토끼인형이 보였다. 이 인형 옆에 어렴풋이 책이 보였다. 내가 여기에 책을 뒀었나 싶어 어떤 책인지 보러 다가갔다. 현대시작법. 내 전공서적이었다. 이걸 왜 여기에 놔뒀지? 기억의 끄트머리를 잡으려다 애초에 목적은 잃어버리고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나의 시선

그러니까. 친구들이 있었다. 2009년에 우리는 대학에 입학했다. 슬프게도 ‘입학했다’라는 문장 뒤로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즐거웠던 것 같은데. 추억에 녹이 쓸어 친구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대략 6년의 시간에 기름칠이 필요해 보였다. 어쩌면 밖으로 나갈 구실을 그럴 듯하게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필 어제 집에서 걸려온 전화 내용 중 “연휴인데 너는 오늘도 집에 있냐?”는 말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무 이유 없이 만날 사람이 없었다. 과거의 친구들에게 “지금 만나러 가도 돼?”라고 물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니까 어쩌면, 과거의 장소에서 감정적 교류를 나누던 순간들을 떠올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급할 이유는 없었다. 느긋하게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렸다. 날이 더운 감이 있어 가벼운 옷을 입었다. 사은품으로 받은 에델바이스 맥주 에코백에 포켓와이파이와 담배, 지갑, 이어폰을 챙겨 넣었다. 평소와 똑같은 구성이었지만 왠지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었다. 마지막으로 라이터를 챙겨 넣고 거리로 나섰다. 막상 밖으로 나오자 어디부터 가야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원룸 건물 1층은 술집인데 가게의 컨셉(재즈의 분위기와 일본식의 메뉴) 때문인지 그냥 술집사장의 배려인지 원룸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등받이가 뒤쪽으로 꽤나 기운 나무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재떨이가 있었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했다.

의외로 무언가 생각하기 좋은 자리다.

기억을 처음부터 더듬었다. 그리고 나온 결론은 광주대였다. 우리들의 대부분의 시간이 깃들어있는 장소는 두말 할 것도 없이 캠퍼스였다. 담배를 필터 부근까지 태우고 재떨이에 비벼끈 뒤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나는 수완03번 버스에 올라 광주대로 향했다. 학교로 향하는 40여분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이어폰을 꽂았다.

어떤 노래를 들을까 고민하다가 브로콜리 너마저의 「2009년 우리들」을 틀었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해가 2009년 있었다. 속으로 약간 웃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노래 제목이 떠오른 것이 너무 작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들으며, 버스에서 내린 뒤에 둘러 볼 곳들 생각했다. 여행의 시작이었다.

금세 출입문이 닫히고 버스는 떠나갔다. 4년 만에 돌아온 거리가 나를 반겼다. 내려선 버스정류장의 바로 앞에 있는 마트도 익숙했고 학교로 올라가는 거리도 익숙했다. 나의 모교는 규모가 작은 대학교였다. 요즘 말로 하면 지잡대였다. 대학 주변의 상권이라고 해봤자 학교로 올라가는 몇 백 미터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공간이 우리 인생이 가장 생기 있던 곳이었다.

정류장은 그대로였다.
옛 정문. 참고로 첨탑 부분은 진리의 등불을 형상화 한 것이다.

슬근슬근 걸어 교정에 들어섰다. 학교는 기억과는 조금 다르게 바뀌어 있었다. 정문이 새로 생겼고 분수와 동상이 생겼다. 다른 것 보다 분수와 동상이 있던 자리는 우리들이 자주 족구를 하던 자리였다. 이제는 전설처럼 전해져 갈지도 모른다. ‘선배들이 저기에서 족구를 하곤 했었지.’ 아니, 지금 학교의 대부분이 그 시절을 모른다는게 합리적인 추론일 것이다.

등록금이 샘솟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1
등록금이 샘솟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 2

나는 발걸음을 재촉해 버스에서 생각했던 동선을 따라 걸었다. 가장 먼저 갈 곳은 단과대학 건물 뒤편에 있던 등나무 벤치였다. 친구들과의 추억들 중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었다. 1학년이던 시절. 입학하고 나서 학기가 중반을 향해 갈 무렵.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어쩌다 보니 약속하게 된 만남이었다. ‘토요일 점심 무렵에 등나무 벤치에서 만나자. 과티와 과잠을 입고. 먹을 것도 싸와서 피크닉 하자.’ 아련하게 그때의 광경들이 떠올랐다. 나는 벤치에 앉았다. 그 때 있던 친구들이 아무도 없었다. 분명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 사진들은 어디에 있을까 싶어 생각을 해보았다.

스마트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떠올린 것은 싸이월드 미니홈피였다. 친구들중에는 열심히 사진을 찍어 업로드 하던 친구가 있었다. 싸이월드가 아직까지 남아 있을까? 하며 검색을 해보았다. 사라진 줄 알았던 싸이월드는 아직 운영중이였다. 아이디와 비밀 번호를 입력해 본다. 로그인이 되지 않았다.

그 시절의 것들이 내 머릿속에서 잊혀졌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2009년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SNS의 중심이었다. 10년이라는 시간이 기억을 삼킨 것이다. 아이디 찾기와 비밀번호 찾기를 통해 겨우 로그인에 성공했다. 우선 내 미니홈피부터 살펴봤다. 분명 ‘퍼가기’를 통해 내 미니홈피에도 사진을 업로드 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날의 사진들이 내 미니홈피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사진 속 엣된 얼굴들이 웃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진을 보며 마치 그 날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어렴풋이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고 내가 뭐라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한 적한 교사 뒤편이 시끌벅적한 하다 이내 조용해졌다. 등나무 벤치에는 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게도 추억으로 남았을 등나무 벤치

그 날의 우리들을 남겨두고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아마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내는 기숙사로 향했다. 내가 잠자고, 선후배들과 어울리던 곳을 둘러볼 참이었다. 나는 대학의 절반을 기숙사에서 보냈다. 기숙사는 4인실이 기본이었고 운 좋게 같은 과 사람들과 방을 쓰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숙사는 술 취한 청춘들이 돌아오는 정거장 같은 느낌이었다. 밤이 되면 술 마시러 나가거나 술에 취해 들어오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렇지. 기숙사에 마시거나를 빼먹었다. 

대체 우리가 술에 집착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다 기숙사에 도착했다. 건물 외견은 그대로였으나 기숙사 앞 길목에 있던  동상 몇 개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의미를 추측하기 힘든 크고 빨간 하이힐이 있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랬지만 학교에 배치된 조형물들은 너무 뜬금없었다. 여튼 기숙사로 들어갈 수는 없기 때문에 밖에서 잠시 기숙사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층마다. 창문마다. 추억의 서랍 같은 느낌이었다. 누군가 창을 열어준다면 기억들이 왈칵 튀어나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기숙사 밥이 참 맛 없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도 돈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었었다.

기숙사 전경
크고 빨간 하이힐

정문으로 내려가는 다른 길목을 따라 이제는 학교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 시절의 추억은 두 가지로 나뉘었다. 학교와 학교 앞. 연고도 없는 광주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딱히 학교 반경을 벗어날 이유가 없기도 했다. 학교 밖에서 내가 자주 간 곳은 술집과 PC방 그리고 오락실이었다. 학교로 들어오는 길에는 추억의 뒷모습을 따라 걷느라 아직 그대로인지 사라졌는지 확인하지 않았다.

우선 가장 가까운 곳은 오락실이었다. 학교 앞의 유일한 오락실의 이름은 피터팬 게임랜드였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뭔가 상징처럼 느껴졌다. 피터팬처럼 재미를 추구하던 나이가 20대 초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시절이 계속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씁쓸하게도 하기 싫은 것을 할 수 밖에 없는 순간이 내게도 와 버렸다. 막연하게 무언가 될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현재의 나는 막연한 무언가가 되었다. 

오락실의 시설은 시간이 지나도 바뀐 것이 없다. 마치 피터팬처럼

오락실은 원래 있던 곳에서 이전하여 다른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예전보다 규모가 작아졌다. 아니. 내가 느끼기에는 초라해 졌다. 오락실에서는 선후배 그리고 친구들과 철권을 하거나 동전 노래방에서 노래를 불렀다. 기실 오락실은 혼자 왔던 경우가 많았다. 동전 노래방에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감정에 취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온 김에 1000원을 넣고 노래 3곡을 불렀다. 그 때 많이 부르던 노래가 뭐였더라? 하며 곡명을 둘러보다 3곡을 연달아 예약했다. 버즈의 my love, 리쌍의 someday, 뮤즈의 time is runing out을 불렀다.

20대 초반의 나는 밴드 사운드에 심취해 있었다. 기억하기로 당시의 밴드음악들은 얼터너티브 계열이 많았다. 콜드플레이, 킨, 뮤즈를 필두로 밴드 사운드를 악착같이 찾아 들었다. 생각해 보면 ‘대안적인’, ‘대안의’라는 뜻을 가진 얼터너티브 장르가 시대의 청춘들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그 방향은 ‘새로운 길’ 혹은 ‘개척해나갈 길’일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오락실을 나와 그 아래쪽으로 더 걸어갔다. 나와 친구들이 자주 갔던, 아니. 거의 살다시피 했던 PC방을 찾기 위해서였다. 건물을 올려보았다. PC방은 이미 망해서 없어져 있었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프리스타일이라는 술집이었다. 선배가 이곳에서 알바를 했기에 서비스 하나라도 더 얻어먹을까 해서 자주 갔었다. 하지만 반년 쯤 있다가 술집이 망하고는 PC방이 들어섰다. 이름은 편한자리 PC방. 이름 덕분인지 PC방은 이곳에만 출입했다.

나와 친구들은 게임을 좋아했다. 감히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했다고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 지금와서 후회하냐고 물어보면 나는 ‘어느 정도는 후회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어렸을 때 나는 게임이라는 재미밖에 모르고 살았다. 세상에는 분명 재미난 것들이 많다. 다만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것을 지금에서야 알았고 그렇기 때문에 후회한다. 그러나 디아블로 3 랭킹 아시아 72위는 내 인생에 몇 없는 자랑꺼리다.

편한자리 PC방이 있던 건물
이상하게 계속 술집만 들어서는 그때 그 술집

다음으로는 자주 가던 술집을 찾았다. 술집은 PC방 보다 조금 더 아래쪽에 있었다. 예전에 내가 다니던 술집은 주인이 바뀌며 상호도 바뀌어 있었다. 20대 초반. 대학을 다니던 우리는 술에 미쳐있었다. 술이 없으면 말문을 트기 힘들었고 술이 없으면 세상이 지겨웠다. 게임과는 다르게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상호가 바뀌어 버린 술집을 바라보며 원래 술집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떠올리려 했다. 뭐였더라? 분명 네 글자였던 것 같은데. 아무리 떠올리려 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날의 분위기만 내 머릿속에 어렴풋이 남아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어떻게 웃었는지. 우리가 어떻게 속마음을 털어놓았는지. 발그레한 얼굴로 네가 좋다고 말하던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과음으로 인해 필름이 끊긴 것처럼. 다만 기억나는 것은 우리가 자주 먹던 술의 비율이었다. 맥주 3000에 소주 1병. 돈이 없던 우리는 취하기 위해 술을 섞어 마셨다. 지금 생각하면 술을 너무 무식하게 먹은 감도 없지 않다. 그래도 그게 좋았었다. 그 새벽. 술에 취해 세상이 비틀 거린다며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나의 세상은 술에 취하지 않았어도 비틀거린다. 삶을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과 불안이 온 종일 시각을 흔들어 댄다.

# 이건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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