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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인 인도법 보류에도 들끓는 홍콩…행정장관 사퇴 '기로'

입력 2019.06.17. 17:28 댓글 0개
중국 정부는 비판에도 캐리 람 행정장관 감싸기
체면 세워주며 내보낼 이유 찾고 있다는 관측도
【홍콩=AP/뉴시스】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지난 15일(현지시간) 정부청사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람 장관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밝혔다. 2019.06.15

【서울=뉴시스】이재우 기자 =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의 범죄인 인도법 개정 무기한 연기 선언에도 시위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중국 정부가 람 행정장관을 내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시위대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 철회와 강경 진압 사과는 물론 람 장관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17일 AP통신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람 장관은 지난 2017년 홍콩 정부수반인 행정장관에 당선됐을 때부터 '중국 정부의 대리인'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왔다.

2014년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일어난 우산시위를 강경 진압해 중국 정부의 신임을 얻은 그는 선거기간 줄곧 각종 여론조사에서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다른 후보에게 뒤졌지만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당선됐다. 홍콩 기본법에 따르면 행정장관은 시민이 아닌 친중파가 다수인 선거인단 1200명의 간선제 선거를 거쳐 선출된다.

우산시위 지도자인 조슈아 웡 데모시스토당 비서장은 당시 "선거가 아닌 선발이었다"며 "홍콩 시민들이 아니라 시진핑이 선택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람 장관이 취임 이후 주택과 교육, 의료 등에 초점을 두겠다고 했지만 홍콩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의중에 맞춘 정책을 펼쳐왔다. 특히 중국 본토로 범죄인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야당과 시민사회의 반발에도 밀어붙여왔다. 2047년까지 자치를 인정받은 홍콩은 불투명한 사법제도와 일국양제 훼손 우려 등으로 중국과 범죄인 인도 협약을 맺지 않고 있다.

람 장관은 지난 9일과 12일 각각 100만명과 수십만명이 참여한 반대시위에도 법 개정 의사를 굽히지 않았고 반대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뒤 물대포와 최루탄, 고무탄 등을 동원해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중국 정부도 '폭동'이라는 람 장관에게 힘을 실었다.

단 시위대 반발이 지속되고 미국 의회가 홍콩에 대한 기존 특별대우를 매년 재평가하는 법안을 제출하고 대만이 법 개정의 명분이 된 살인범 인도를 거부하는 등 국내외 압력이 커지자 지난 15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개정안 심의를 보류하겠다고 백기를 들었다. 하지만 람 장관은 이날도 법안 철회 요구를 거부하고 강경 진압에 대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람 장관은 이 자리에서 "그들은 내 판단을 이해하고 있으며 나를 지지한다"며 중국 정부의 여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했지만 다른 해석이 나온다. 람 장관의 지지기반인 친중파와 재계는 지난 12일 개정안 심의를 연기하고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등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홍콩=AP/뉴시스】 홍콩 시민들이 16일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를 벌이다 사망한 남성을 추모하며 꽃을 놓고 있다. 이 남성은 전날 고층건물에서 시위를 벌이다 떨어져 사망했다. 2019.06.17

홍콩 정치 평론가인 윌리 람은 AP에 중국 정부가 람 장관을 체면을 잃지 않고 내보낼 이유를 찾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 정부가 국내외 비판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고 람 장관을 감싸고 있지만 그를 일종의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다고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의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고 있고 홍콩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람 장관을 홍콩 시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제물로 내주고, 후임자를 찾으려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퉁치화(董建華) 전 행정장관도 지난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에 실패한 뒤 자진 사퇴한 바 있다. 홍콩 당국은 지난 2003년 국가안전을 저해하는 위험인물에 대해 최장 30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는 국가보안법 제정을 시도했다가 50만명이 넘는 홍콩 시민이 반대 시위에 나서면서 백기를 들었다. 퉁 장관은 친중파가 다수를 차지한 입법회 구도 등을 믿고 국가보안법을 밀어붙였지만 결국 시민의 저항에 밀려 심의 보류를 선언했고 2년 뒤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 사퇴했다.

실제로 류샤오밍(劉曉明) 주영 중국대사는 지난 12일 BBC와 인터뷰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을 강행한 것은 전적으로 람 장관의 생각이라며, 배후에 중국 정부가 있는 설에 선을 그었다. 람 장관이 중국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조속히 추진하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는데도 람 장관이 일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람 장관이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고 범죄인 인도법 개정을 추진했을 것이라는 세간의 시선을 부인하는 발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그동안 홍콩의 상황을 면밀히 감시해왔으며, 람 장관은 지난 주말 홍콩을 담당· 관리하는 한정(韓正)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과 조율 끝에 결국 법안 심의 보류를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홍콩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SCMP에 중국 정부의 체면을 고려해 '보류'라는 표현을 썼을 뿐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은 사실상 폐기됐다고 전했다.

SCMP는 중국 정부의 불편한 심기도 전했다. SCMP는 람 장관이 백기를 든 15일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66번째 생일이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중국 정부에 과시하고 싶었던 람 장관이 시 주석에게 좋지 않은 선물을 안겼다고 보도했다.

익명의 친중국 성향 입법회 의원은 람 장관이 지난 15일 기자회견에서 무례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으면 16일 시위 참가율은 줄어들었을 것이라면서 람 장관이 뒤늦은 사과라는 정치적 판단 미숙을 드러냈다고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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