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일보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아버지, 아들 곁으로

입력 2019.06.16. 18:02 수정 2019.06.16. 19:29 댓글 0개
윤석동 전 5·18유족회장 별세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한 윤상원 열사의 아버지 윤석동(사진)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6일 오전 9시 51분 93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윤씨는 5·18유족회장을 맡아 5·18진상규명을 위해 헌신해 왔다.

7남매 중 장남이던 상원씨는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진압작전에 맞서 최후까지 항전하다 숨졌다.

상원씨는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전남대 정치외교학과를 거쳐 주택은행에 입사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기대를 하시는데 한번쯤은 보여드려야 불효가 아니다”던 상원씨는 7개월만에 사표를 쓰고 광주로 돌아왔고 윤씨는 그런 아들에게 “뭣할라고 그러냐”고 역정을 냈었다.

아들이 품었던 생각을 5·18을 거치면서 알게 된 윤씨는 슬픔을 딛고 아들의 죽음의 역사적 의미를 점차 이해해 갔다.

그리고 아들의 유지를 잇듯 5·18의 주범 전두환의 서울 연희동 자택 앞을 찾아가 농성을 하는 등 5·18 진상규명에 투신했다.

윤씨는 17살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를 통해 평생 기록을 남겼다.

일기에는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도 담겼고 5·18 관련 각종 신문 기사도 첨부됐다.

윤상원 열사가 초등학교때부터 일기를 쓴 것 역시 아버지의 영향이었다.

윤씨는 93년 아들의 제삿날에 “상원이 제삿날이다. 이토록 허망할까? 산 자들은 무엇을 하여 왔는가, 광주 문제가 진상규명되고 역사에 바로 반영될 때 빛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전씨가 97년 사면 복권됐을 때에는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 대통합에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하지만 전 씨가 지난 3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고인은 “나쁜 놈은 나쁜 놈대로 벌을 받아 죄를 안 짓고 살아야지”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윤 씨는 논농사와 감나무 재배, 축산·양봉을 하며 7남매를 가르쳤다. 먼저 간 아들이 생각날 때면 혼자 무등산에 올라 광주를 바라보곤 했다.

신장투석 등으로 수년 동안 지병을 앓았던 고인은 지난해 5월 휠체어를 타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먼저 떠난 아들의 비석을 애틋하게 쓰다듬던 고인은 “인자 곧 죽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아들 비석을 만져보고 싶어 왔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지난 15일 손글씨로 “내일 간다”고 적은 뒤, 자녀들에게 “고생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유족은 배우자 김인숙 씨, 아들 웅원(대원건업)·태원(㈜한양 전무)씨, 딸 정희·경희·덕희(봉주초 교사)·승희씨, 사위 전남구·이기홍·나창영(목포대)·송인엽(대구광역시청)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 브이아이피(VIP)장례식장 301호, 발인은 18일 오전 9시다.(062-521-4444)서충섭기자 zorba85@sr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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